"원가보다 공급망"…식품업계, 경쟁 공식 바뀐다
AI·계약 재배로 리스크 대응
공급망 관리, 新경쟁력 부상

세계적 기후위기가 식품기업의 경영 전략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원료를 얼마나 저렴하게 확보하느냐가 핵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세계적 이상기후와 국제 원자재 시장 변동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원료를 확보하는 공급망 관리 역량이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
10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식품산업통계정보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른 원료 수급 불안이 식품산업의 주요 리스크로 떠올랐다.
폭염과 가뭄, 집중호우 등 기후 변화가 잦아지면서 농산물 생산량과 가격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국내 식품기업들은 과거 원가 절감 중심의 조달 전략에서 벗어나 ▲계약재배 확대 ▲조달선 다변화 ▲데이터 기반 수급 예측 등 공급망 안정화 전략 강화에 나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슈퍼 엘니뇨'의 확산 가능성 같은 세계적 이상기후와 전쟁 등 국제 정세 변화가 잦아지고 있다"며 "예전에는 얼마나 싸게, 얼마나 많이 원료를 확보하는 게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처럼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 상황에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갖춘 기업의 역량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식품기업들의 대응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기후 위기는 식량 생산 감소에 그치지 않고 원재료 조달, 운송, 냉장물류, 포장재 비용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단순히 시장에서 원료를 구매하는 것을 넘어 원료 확보 과정 전반을 관리하고 외부 변수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CJ제일제당은 빅데이터 기반 글로벌 곡물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하며 원재료 수급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는 등 공급망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곡물 시장의 가격과 수급 변화를 분석해 원료 조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또 주요 협력사를 대상으로 ESG 평가와 현장 실사를 실시하고, 지속가능 원재료 조달 정책을 통해 원료 공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경·사회적 위험 요인을 관리하고 있다.
공급망 전체를 관리 대상으로 삼아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롯데웰푸드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구매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회사는 AI 기반 수요 예측 시스템인 'AI 구매 어시스턴트'를 통해 날씨와 환율, 국제 시황 등 다양한 변수를 분석하고 원재료 가격 변동성을 예측한다.
특히 팜유 가격 예측 정확도는 90% 수준으로 알려졌다. 원료 가격 변화를 사전에 파악해 구매 전략을 조정하는 등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통해 공급망 리스크 관리 역량을 높이고 있다.

오뚜기는 국산 농산물 확보와 자체 공급망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회사는 스마트팜 등 미래 농식품 기술과 관련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지난해 농산물 계약재배량은 1만4348톤으로 쌀·찹쌀·양파·대파·생강 등으로 품목을 확대했다.
오는 2030년까지 전체 농산물 구매량의 20%를 계약재배로 확보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오뚜기밥 등 주요 제품에 사용되는 쌀 역시 계약재배 비중을 높이며 원료 공급 안정성을 강화하고 있으며, 계열사를 통한 수직형 스마트팜 운영으로 바질 등 원료를 직접 생산하는 등 원료 내재화에도 나서고 있다.
이처럼 식품업계가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해 위험을 조기에 파악하고, 계약재배와 스마트팜 등을 통해 안정적인 원료 확보 기반 구축에 나서는 것은 경쟁 기준이 원가 관리에서 공급망 관리로 이동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식품기업들의 공급 관리 변화가 업계의 단순한 비용 절감 전략을 넘어 기업의 생존 전략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기후위기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동시에 확대되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원료 확보 능력이 곧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촌기본사회연구 팀장은 "기후 대응은 더이상 기업의 사회공헌이나 환경 이미지 관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원가경쟁력을 유지하며, 현금흐름과 브랜드 신뢰를 지키기 위한 것이 핵심 경영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 인플레이션 시대에는 가장 싸게 사는 기업보다 위험을 가장 빨리 감지하고, 공급망을 분산하며, 생산자와 위험을 합리적으로 나누고, 데이터에 기반해 한발 먼저 움직이는 기업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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