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기자
- 승인 2026.03.16 07:54
업계 “물가 안정화 공감 불구 내리기 어려워”
밀가루 원가 비중 낮고 팜유·물류비 상승 부담
중동 정세 불안 속 정부 통제 수위 높아져 곤혹

식품업계가 ‘진퇴양난’에 놓였다. 정부의 가격 압박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이다.
최근 중동 사태로 유류비와 물류비 상승까지 더해지며 가격을 인상해야 할 상황인데, 오히려 가격을 인하할 처지에 직면한 것이다.
우선 타깃은 국민 소비가 높은 ‘라면’이다. 이달 초 농식품부는 라면업계와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하 기조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품 주원료인 설탕 16.5%, 밀가루 7.9%, 전분당 16.7% 수준의 가격 인하가 이뤄진 만큼 해당 원료를 사용하는 업체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다.
실제 제당·제분·전분당 가격 인하 이후 베이커리 업체가 빵·케이크 가격을 인하했고, 일부 외식업체는 공정위와 가격 인상 사전 고지 협약에 서명하는 행사까지 열었다.
상황 자체가 식품업계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결국 라면업계도 백기를 들었다. 라면 4개 업체는 평균 4.6~14.6% 인하하기로 결정했고, 이에 앞서 농식품부가 간담회를 개최한 식용유 업계도 6개 업체가 평균 3~6% 인하하기로 했다.
식품업계의 이번 결정에 농식품부는 어려운 경영 여건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부담 완화를 위해 가격 인하에 동참해 준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정부도 식품 원재료 수급 관리, 할당관세 등 지원, 애로사항 해소 등을 통해 가공식품 물가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이 식품업계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가격이 인하된 제당·제분·전분당의 경우 음료와 제과, 아이스크림, 소스 등 가공식품 전반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업계는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정부 눈치를 보느라 누적된 원가 상승분을 반영도 못했는데, 가격까지 낮추라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중동 전쟁으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에 육박했고,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다. 환율이 오르면 그동안 수입했던 원료의 가격이 오르고, 유가가 오르면 물류비, 냉동·냉장 설비, 포장재까지 가격이 일제히 상승한다. 환율과 유가가 동시에 오른다는 것은 식품 원가 구조가 악화하는 것인데, 일부 원료 가격이 인하됐으니 식품 가격도 내려야 한다는 논리는 산업 전반적인 구조를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원료·환율·물류비·인건비·전기세 상승 등 모든 제반비용의 상승했음에도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동참해 업계에서는 가격 인상을 자제해 왔다.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곳은 차선책으로 가격을 올리는 대신 용량을 줄이는 방식을 택했지만 이마저도 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 ‘꼼수 인상’ 등으로 몰아 업체를 부도덕한 기업으로 매도했다”며 “정부는 가격 문제에 있어 업계의 ‘자율’을 보장한다면서 실상은 ‘통제’를 통해 옥죄고 있다. 지금은 가격 인상이 절실한 상황인데도 가격을 인하하거나 최소한 유지라도 해야 하는 분위기다.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라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작년 식품업계 실적을 보면 2~3곳을 제외하고는 영업이익이 하락했다. 대부분 적자를 본 것이다. 그리고 가공식품이 전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8% 수준으로 크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는 식품업계 매출만 판단하며, 많이 벌었으니 가격 현상 유지도 아닌 가격을 낮춰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식품업계를 사지에 내모는 격”이라고 질타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부의 물가 안정 압박 수위를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공정위가 ‘가격 재결정 명령’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20년 만이다. 가격 재결정 명령은 담합 등을 통해 부당하게 올린 가격을 기업이 스스로 낮추거나 적정 수준으로 다시 정하도록 강제하는 고강도 시정조치다. 지난 2006년 제분업체들은 담합과 관련해 가격 재결정 시정조치를 받아 평균 5%의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이번에도 공정위는 밀가루·설탕·전분당 주요 제조사의 가격 담합 의혹을 다룬 심사보고서에 가격 재결정 명령을 포함했다. 가격 재결정 명령이 현실화된다면 추가적인 가격 인하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식품업계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또 공정위는 담합 과징금 하한선을 관련 매출의 0.5%에서 10%로 높이는 내용 등을 담은 ‘과징금 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하고, 라면·과자·빵·아이스크림 등 가공식품의 출고가·소비자가·단위가격 등을 집중 모니터링해 담합 등 불공정거래행위가 우려되는 경우 엄중히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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