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급성장하는 일본 ‘방재 식품’ 시장의 또 다른 기대 포인트 ‘롤링 스톡’

곡산 2025. 9. 8. 07:28
급성장하는 일본 ‘방재 식품’ 시장의 또 다른 기대 포인트 ‘롤링 스톡’
  •  배경호 기자
  •  승인 2025.09.05 11:05

정부·지자체 예산 늘리고 3일~1주일분 비축 권장…국민 준비율 60%로 상승
유통기간 긴 생존형 보존식 구매서 ‘롤링 스톡’으로 전환
순환 비축…컵라면 등 자주 먹는 식품 구입·이용 후 보충

일반 가정·공공 기관·기업 수요 물량 1조4000억 엔 추정 맛있는 비상 식량 표방…한국식 우골 곰탕·해물죽 등 주목

지난 7월 일본에서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 공포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리고 7월 전후로 토카라 열도 지진, 홋카이도 지진, 캄차카반도 대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지난달 28일 분출한 신모에다케 화산 등 자연재해가 잇따르면서 난카이 대지진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최근 잦아지고 대형화되는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시 장기 보존이 가능한 방재 식품을 “최소 3일, 가능하면 1주일 정도 비축”할 것을 적극 권장하고 있으며, 비축 식량 조달 예산도 매년 확대되고 있다. 소비자들도 대규모 재해 경험 후 재난 대비 의식이 높아지면서 자체적으로 가정 비축을 늘리고 있다.

 

이처럼 매년 반복되는 자연재해는 일본의 방재 식품 수요를 구조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으며, 발생 빈도 증가와 함께 재해를 대비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가정 인식이 강화되면서 이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비축 방식도 기존 단순 저장에서 순환 비축을 의미하는 ‘롤링 스톡’이 강조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코트라 후쿠오카무역관이 인용한 후지 경제그룹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본 방재 식품 시장은 2015년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2024년 시장 규모는 261억 엔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약 21.4%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9년 전인 2015년 약 139억 엔보다 약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이다.

 

여기에는 2024년은 1월 발생한 노토반도 지진과 8월 미야자키현 히나타탄을 진원으로 하는 지진이 큰 계기가 됐다. 특히 히나타탄 지진은 난카이 대지진과의 연관성으로 인해 시민들의 대비 의식을 크게 높였으며, 이에 따라 방재 식품 수요도 급속히 증가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등 팬데믹의 영향도 방재 식품 성장의 주요 요인으로 점쳐지고 있다.

자료: 후지 경제그룹(2024년 기준)
 

이러한 의식 강화로 최근 방재 식품에 대한 판매와 대비 구조가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로 행정기관이나 기업에서 전문 상사를 통해 건식이나 보조식 등을 구매했지만 최근에는 재해, 감염병 등 여러 사회 불안 요인들이 대중의 준비 욕구를 불러일으켜 일반 가정의 온라인 구매가 급격히 증가하는 등 판매 구조와 소비자 가치관이 변했다.

 

이 같은 추세는 통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일본 내각부가 2023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약 50%에 그쳤던 가정의 방재 식품 준비율은 2022년에 약 60% 수준까지 높아졌다. 또한 기업 차원에서도 임직원용 식량을 비축하거나, 주민들을 위한 비상식량 비축량을 확대하는 추세다.

 

아울러 최근에는 비축 방식에도 변화를 보인다.

기존 방재 식품은 주로 유통기한이 긴 보존식, 즉 물을 부으면 밥이 되는 알파미나 건빵, 비스킷, 물 등 생존 위주의 식품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은 맛과 영양이 제한적일 뿐 아니라 평소에 잘 먹지 않다 보니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되는 양도 적지 않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최근에는 ‘롤링 스톡(Rolling Stock)’이라는 새로운 식품 비축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의 공식 가이드에 따르면, 롤링 스톡은 평소 자주 먹는 식품을 일정량 더 비축해 오래된 것부터 소비한 만큼 다시 보충하는 순환 비축 방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즉석밥이나 컵라면, 캔 가공식품 같은 일상 식품을 비축해 일상적으로 소비하면서도 항상 일정량 이상의 식품을 집에 보관하는 방식이다.

 

농림수산성 및 일본 내각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롤링 스톡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롤링 스톡은 상대적으로 긴 유통기한을 가진 전용 방재 식품만을 비축하는 기존 방식과 다르다. 자신이 선호하는 제품이나 근처 마트, 편의점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식품군을 활용한 재해 대비로, 자신의 식생활에 맞는 식품을 다양하게 확보할 수 있다. 또한 불필요한 식품 폐기를 줄이고, 재난 발생 시 익숙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감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롤링 스톡은 보존식을 활용한 기존의 재해 대비책보다 더 현실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경제적인 재난 대비 전략으로 평가받는다.

최근 일본 방재식품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비축 방식도 단순 비축에서 벗어나 일정량 이상 비축해 오래된 것부터 소비한 만큼 다시 보충하는 ‘롤링 스톡’이 강조되고 있다. 이에 즉석식품과 캔 가공식품 등도 대상이 될 수 있어 향후 수요 확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사진=라쿠텐 방재 식품)
 

일본정책투자은행(DBJ)과 일본경제연구소가 공동으로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롤링 스톡을 포함한 잠재적 연간 수요는 일반 가정(약 1조2000억 엔), 공공기관(약 1000억 엔), 기업(약 650억 엔)으로, 합산 시 약 1조4000억 엔 규모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현재 방재 식품 시장의 약 10배에 달하는 규모이다.

 

시민들의 인식 또한 변화하고 있다. 2024년 3월에는 농림중앙금고가 전국 20세 이상 3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롤링 스톡에 대한 인지 여부를 물은 결과는 "알고 있다"가 24.7%, "모른다"가 과반수 이상인 58%로 낮은 인지율을 보였다. 그러나 응답자의 69.1%가 “롤링 스톡을 하고 싶다"라고 답하며 인지율에 비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한편, KATI에 따르면 롤링 스톡이 강조되면서 최근 새롭게 부각되는 제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반찬으로 인지가 높은 ‘런천미트’다. 이 제품은 롤링 스톡으로서도 적합하며, 일상에서도 다양한 조리가 가능해 소비가 확대되고 있다. 또한 하쿠바쿠가 올해 출시한 한국풍 방재 식품 ‘우골 곰탕 WBR’과 ‘해물찌개 죽’도 눈에 띈다.

 

전반적으로 최근 일본의 방재 식품은 "맛있어서 평소에도 먹을 수 있는 비상식량"을 표방하며, 일상 식품과 방재 식품의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맛과 식감을 중심으로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환경적 요인과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높아진 재난 대비 인식이 맞물려 방재 식품 시장이 10년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후지경제그룹의 ‘2021년 일본 방재 식품의 마케팅 분석과 장래성 예측에 대한 조사’에서는 당시 시장의 약 70%를 기업과 기관이 차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기업과 기관의 의무 비축 등이 안정적인 수요를 형성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머지 30%를 차지한 일반 부문은 아직 규모는 작으나, 최근 재해와 감염병 등 사회 불안 요인이 일반 소비자들의 비축 습관과 대비 의식을 자극하고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개인 소비자의 선호는 단순 생존식에서 맛과 영양, 심리적 안정까지 고려한 프리미엄 방재 식품으로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일본 농림수산성이 제안하는 '롤링 스톡'이 있다. 방재 식품만이 아니라 평소 먹는 컵라면, 통조림, 즉석식품 등도 방재 식품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울러 롤링 스톡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인지하는 비율이 낮지만 실행 의향이 커지고 있어 미래 수요 확대 가능성은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