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 전문위원
- 승인 2025.08.05 07:43
상원 발의 ‘식품안전 독성방지법’ 엄격한 사항 설정
현재 사용 원료 전수 점검하고 전문가 검토 확보해야

● 변화하는 GRAS 규제와 대응 전략
"우리가 쓰는 이 원료, 미국에서 예전부터 쓰였던 거니까 괜찮겠지?" 지난 몇 년간 한국 식품기업들과 미국 진출을 논의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업이 체계적인 GRAS 검토 없이 "비슷한 원료가 목록에 있으니까"라는 판단으로 원료를 사용해 왔다. 지금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고 있다.
지난 3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장관이 FDA에 내린 "GRAS 자기승인 경로 제거 탐색" 지시는 이런 '관대했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2000년 이후 식품 시장에 진입한 화학물질의 98.7%가 기업 자체 검증에만 의존해 온 미국 식품안전 시스템에 근본적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많은 한국 기업이 GRAS를 ‘FDA 승인 목록’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만, 실상은 더 복잡하다. GRAS 제도는 1958년 소금이나 설탕처럼 전통적으로 안전한 물질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1997년부터 기업들의 자체 승인이 허용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현재는 식품회사가 스스로 "이 성분은 안전합니다"라고 선언하기만 하면 되고, FDA에 통지할 의무도 없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점이다.
2022년 데일리 하베스트의 타라가루 사건을 보자. 공개된 안전성 연구가 전혀 없던 타라가루가 자체 GRAS 승인으로 시장에 진입했고, 결국 소비자들의 간 손상을 일으켜 FDA가 소급하여 GRAS 지위를 철회했다. 우리가 "안전하겠지"라고 생각했던 시스템에 실제로는 허점이 있었던 것이다.
상원에서 발의한 '2025년 식품안전독성방지법'은 GRAS 분류에 엄격한 요구사항을 설정하고 있다. 더욱 주목할 점은 주정부들의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이다. 뉴욕주가 추진 중인 '식품안전 및 화학물질 공개법(S1239/A1556)'은 기업들이 자체 판단한 GRAS 물질을 사용할 때 뉴욕 농업시장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GRAS 판단 근거가 되는 과학적 증거, 사용 조건, 안전성 데이터 등이 포함되어야 하며, 이 모든 정보가 공개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에 올라간다. 영업비밀로 지정된 정보는 편집되지만, 안전성을 입증하는 핵심 데이터는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
펜실베이니아주도 HB1130을 통해 GRAS 물질 보고 의무화와 공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장 강한 규제 기준의 법칙'이다. 만약 뉴욕이나 펜실베이니아에서 이런 법안들이 통과되면, 해당 주를 제외하고 유통할 것이 아닌 이상 전국적으로 가장 엄격한 주의 기준에 맞춰야 한다.
실제 현장을 들여다보면 구체적인 문제들이 보인다. 국내에서 성공한 제품을 미국 시장에 그대로 출시하면서, 들어간 원료 하나하나의 GRAS 지위를 전혀 확인하지 않거나 원료 공급업체에 GRAS 근거를 요청해 본 적도 없는 기업들도 있었다. 미국 파트너사가 뒤늦게 "각 원료의 GRAS 문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을 때야 비로소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검토를 진행하다 보면 화학적 형태나 규격의 미묘한 차이 등 같은 화합물이라도 이성질체 형태가 다른 경우가 있다. 한국과 코덱스에서는 D형과 L형이 혼합된 DL형을 허용하는 특정 첨가물들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중 한 형태만 GRAS로 인정되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또한 동일한 원료라도 순도 기준, 제조 공정, 불순물 한계 등이 다를 수 있는데, "어차피 같은 성분이니까"라고 생각하고 이런 세부 사항들을 확인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필자의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단계별 대응 방안을 제시해 보겠다.
1단계는 현재 사용 원료 전수 점검이다. 먼저 자사가 미국에 수출하는 모든 원료를 제품별로 리스트업하고, 각각의 GRAS 근거가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 "예전부터 쓰였으니까"라는 근거가 아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GRAS 목록에 있는지, 아니면 어떤 기존 성분과 유사한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2단계는 동등성 분석 실시이다. 기존 GRAS 성분과 실질적으로 동등한지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자. 21 CFR 170.30 규정에 따르면, 기존 GRAS 성분과 "실질적으로 동등하다"라고 판단되면 별도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화학적 조성, 제조 공정, 물리적 특성, 안전성 프로필을 비교 분석하여 동등성을 평가할 수 있다.
3단계는 전문가 검토 확보이다. 법적으로 "자격을 갖춘 전문가들이 안전하다고 일반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작성하여야 한다.
4단계는 근거 문서 정리 및 보관이다. 현재는 FDA 제출 의무가 없지만, 향후 규제 변화나 고객사 요구에 대비해 근거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두자. 특히 뉴욕주 같은 곳에서 공개 요구가 있을 때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실제 컨설팅 현장에서 보면, 한 번 체계적으로 정리해 둔 기업들은 향후 5~10년간 다양한 규제 변화에 훨씬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반면 계속 "그때 가서 생각하자"라던 기업들은 규제 변화가 있을 때마다 당황하며 뒤늦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의 GRAS 규제 변화는 분명 부담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들이 '무방비 상태'였다면, 이제는 준비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사이에 격차가 생길 것이다. 문제는 많은 기업들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자사 제품에 들어간 원료들의 GRAS 지위를 어떻게 확인해야 하는지, 기존 GRAS 성분과의 동등성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전문가 검토는 누구에게 받아야 하는지 등 실무적인 질문들이 산적해 있다.
필자의 경험상 이런 규제 변화 시기에는 '정보 격차'가 곧 '경쟁력 격차'로 이어진다. 미리 준비한 기업들은 규제 변화를 오히려 시장 진입 장벽으로 활용하여 후발 경쟁사들을 차단하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 반면 뒤늦게 대응하는 기업들은 급하게 준비하느라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소모하게 된다.
지금이 바로 한국 식품기업들이 '선제적 준비'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골든타임이다. 변화를 기다리기보다는 미리 움직이는 기업들이 결국 새로운 규제 환경의 승자가 될 것이다. 준비는 지금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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