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07.01 07:56
고객의 숨은 니즈 포착서 창의적 아이디어까지
대상·SPC 상품화 기간 단축…실패율도 낮춰
롯데웰푸드·농심 AI 기반 ‘스마트 팩토리’
단체급식 수요 예측 통해 식자재 폐기율 뚝
인력 재배치·中企 ‘AI 양극화’ 해소책 과제
인공지능(AI)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비자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식품의 맛을 설계하고, 생산량을 결정하며, 품질을 검사하고 있다. 이미 식품 개발, 생산, 유통 전반에 깊숙이 관여하며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한 것이다.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시장을 선점하려는 식품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AI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과거 식품 개발이 연구원의 '감'과 경험에 의존했다면, 이제 AI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도구를 넘어 이를 바탕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파트너'이자, 고객의 숨은 니즈까지 포착하는 '똑똑한 귀'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대상은 자체 구축한 AI 시스템으로 글로벌 레시피, 소비자 리뷰, 소셜미디어 버즈 등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신규 소스 및 HMR 제품의 콘셉트를 발굴하고 있다. AI가 ‘고단백’ ‘저탄수화물’ ‘이국적인 맛’ 등 유의미한 키워드와 라이징 트렌드를 추출하면 도출된 트렌드를 바탕으로 ‘고단백 비건 라구 소스’ ‘병아리콩을 활용한 지중해풍 샐러드 밀키트’ 등 구체적인 제품 콘셉트와 핵심 원재료 조합을 제안한다. 이후 AI가 제안한 콘셉트의 시장 수용도와 성공 확률을 기존 데이터와 비교 분석해 R&D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된다. 이 프로세스를 통해 개발 기간은 획기적으로 단축되고, 초기 아이디어 단계의 실패율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SPC 배스킨라빈스는 구글과 손잡고 구글의 최신 AI 모델 ‘제미나이(Gemini)’를 활용해 신제품 ‘트로피컬 썸머 플레이’를 출시하며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이 제품은 배스킨라빈스 연구원들이 ‘제미나이’에 구글플레이 로고의 4가지 색상에 어울리는 원료를 질의응답하는 과정을 반복해 탄생했다. AI가 망고, 오렌지, 사과, 패션후르츠 등 과일 조합을 제안했고, 배스킨라빈스는 이를 기반으로 세계 최초의 제미나이 협업 아이스크림을 구현해냈다.
이는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체계적인 기술 경영의 일환이다. 배스킨라빈스는 이미 자체적인 ‘AI NPD(신제품 개발) 시스템’을 운영하며 지난 3월 첫 AI 개발 제품인 ‘오렌지 얼그레이’를 선보인 바 있다. 허희수 SPC그룹 부사장은 “배스킨라빈스에서 시작해 삼립식품, 파리바게뜨까지 AI를 포함한 푸드테크를 확대하겠다”고 밝혀 AI 주도권 경쟁이 그룹 전체로 확산될 것을 예고하기도.
샘표는 AI를 고객과의 소통 창구에 전면 도입했다. 샘표는 ㈜레드소프트와 'AI 기반 전사 통합 VOC(고객의 소리) 시스템‘을 구축해 AI가 고객과의 대화 맥락을 파악해 상담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AI가 고객상담의 핵심 키워드를 자동으로 추출해 주제별로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분석된 고객의 니즈를 연구소, 마케팅, 영업 등 모든 관련 부서에 공유한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신제품 개발부터 마케팅 전략 수립까지 폭넓게 활용된다.
식품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폐기율’도 AI를 만나 결정적인 해법을 찾고 있다. 특히 유통기한이 짧은 신선식품과 간편식 분야에서 AI 기반 수요예측은 기업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게임 체인저’로 활약 중이다.
현대그린푸드는 단체급식 사업장에 AI 수요예측 시스템 ‘AI 피플카운팅(AI People Counting)’ 서비스를 도입해 극적인 효과를 보고 있다. 과거 식수 데이터는 물론, 날씨와 요일, 주변 행사까지 학습한 AI가 다음 날의 식수 인원을 정확히 예측한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식자재 발주량을 최적화한 결과 식자재 폐기율을 평균 30% 이상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버려지는 비용이 고스란히 이익으로 전환된 셈이다.
CJ프레시웨이 역시 AI로 공급망을 혁신했다. AI는 각 거래처의 과거 주문 패턴과 상권 특성을 분석해 고객이 자주 구매하는 상품과 연관성이 높은 상품을 추천하거나 특정 상품을 주기적으로 구매하는 고객에게 해당 상품 구매 시기 도래 시 대체 가능한 유사 상품을 추천하는 구체적인 제안을 건넨다. 영업사원의 경험에 의존하던 방식을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하면서 고객사의 결품률은 낮추고 자사의 재고 회전율은 높이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또 삼성웰스토리는 식판을 AI로 스캔해 음식물 잔반의 종류와 양을 분석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식품 공장들은 AI를 만나 ‘스마트 팩토리’로 진화하면서 생산 효율과 품질 안정성이 극대화되고 있다. 특히 AI 비전 기술과 공정 최적화는 사람이 놓치기 쉬운 변수까지 제어하며 식품 안전과 생산성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
롯데웰푸드의 과자 생산 라인에서는 AI 비전 센서가 24시간 눈을 빛내고 있다. 0.1초 만에 과자의 모양, 색상, 이물질 혼입 여부를 판독해 내는 AI의 정확도는 98%를 넘어선다. 육안 검사로는 불가능했던 속도와 정확도로 불량률을 낮추고, 검사 인력은 다른 고부가가치 업무에 재배치하는 효과를 거뒀다.
농심은 구미 스마트 팩토리에 AI 기반의 생산 최적화 시스템을 도입해 라면 제조 공정의 효율을 극대화했다. 농심은 AI를 활용해 원료의 배합부터 증숙, 유탕, 냉각, 포장까지 전 과정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각 공정별 최적의 운영 조건을 도출하고, 설비의 미세한 이상 징후까지 사전에 감지해 생산 안정성을 높였다. 이는 단순히 불량을 잡아내는 것을 넘어 수율을 높이고 에너지 사용량까지 최적화하는 한 단계 진화된 스마트 팩토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조용하지만 거대한 변화의 물결 위에서 기업들의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에 업계 관계자들은 AI 자동화로 단순 반복 업무가 사라지는 만큼 데이터 분석, AI 모델 관리 등 새로운 직무에 기존 인력을 적응시킬 체계적인 재교육과 인력 재배치가 시급하며, 강력한 보안 시스템 구축과 함께 막대한 투자 비용 문제로 AI 도입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의 ‘AI 양극화’를 해소할 정책적 지원과 상생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AI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소비자의 입맛부터 공장의 기계까지,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데이터로 분석하고 제어하는 ‘AI 주권’을 확보하는 기업만이 미래 식품 산업의 진정한 승자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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