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기자
- 승인 2022.01.24 07:45
제품·포장재 등 연내 일괄 소진은 현실 모르는 행정
안전기한 설정 시험·인쇄 설비 교체에 1년으론 부족
식품산업협회, 업계 애로 모아 식약처에 전달키로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식품 소비기한 표시 제도 유예기간을 두고 식약처와 업계간 이견이 충돌하고 있다.
식약처는 재작년부터 소비기한 표시제도의 시행을 미리 공표하고 올해부터 시행 예정인 제도를 1년 유예한 만큼 더 이상의 유예는 없다는 방침이지만 업계는 최소한의 포장재 소진 기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소비기한 제도 도입 취지는 갈수록 증가하는 식품 폐기물 감축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연간 발생하는 식품 폐기량은 548만톤에 달한다. 처리비용만 1조 원이 넘는다.
소비기한으로 변경 시 판매 기간은 기존 유통기한 대비 1.5배가량 증가한다. 식품안전정보원에 따르면 소비기한 표시제 변경 시 현재 식품 폐기량의 5분의 2 정도가 줄어 소비자와 식품업계는 연간 각각 8860억 원, 260억 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환경에 민감한 선진국의 경우 이미 소비기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는 소비기한 표시제 사용을 권고하고 있고 유럽, 캐나다 등에서는 소비기한이 시행되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에서도 제도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유예 적용 불가 방침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업계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 표시제도 변경이다. 소비기한 표시를 시행한다고 단순히 유통기한에서 날짜만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동판 등 인쇄 설비, 라벨, 생산라인 등이 바뀌는 부분이다. 때문에 기존 표시법 개정 시 식약처에서도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갑작스러운 표시제도 전환 시 다소비 식품의 경우에는 손실이 크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은 식품은 상당량을 폐기해야 할 수도 있다. 그 비용만 수억 원에 달할 것”이라며 “환경 문제를 위해 시행하는 제도가 오히려 환경을 훼손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내년 1월 1일부터 신규 생산되는 품목은 소비기한 표시를 하되, 기존 제품도 어느 정도는 소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유통기한에서 소비기한으로 표시 변경 시 식품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 안전문제다. 품목마다 안전 기한이 달라 유통기한 안전 설정 테스트를 거쳐 안전한 수준에서 소비기한을 늘려야 하는데, 유예기간이 없다면 테스트 기간이 부족해 소비자와의 안전문제로 인한 마찰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소비기한 표시제도로 가는 것은 분명히 맞지만 업계가 새로운 정책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토끼 사냥을 할 때도 보통 퇴로를 만들어 놓고 한다. 유예 기간이 없다는 것은 포장재 등 부자재를 올해 안으로 모두 소진한 후 내년 1월 1일부터 변경된 소비기한을 적용하라는 것인데, 업계 현실을 전혀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식약처 관계자는 “당초 시행키로 한 소비기한 제도를 1년 유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에 와서 또 유예기간을 달라는 것은 억지라고 볼 수밖에 없다”면서도 “일단 업계 의견을 최대한 수렴하고 각 협·단체 및 전문가들과의 논의를 거쳐 업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의견은 식품산업협회가 주축이 돼 수렴하는 중이며, 논의가 모아지는대로 식약처에 전달할 예정이다. 협회 관계자는 “식품은 품목마다 품질유지기한이 달라 내년 1월 1일부터 적용할 수 있는 품목이 있고, 시간이 좀 더 필요한 품목도 있다. 이러한 업계 애로사항 및 의견을 적극 수렴해 식약처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협회는 자체적으로 권장소비기한 추진단을 구성해 권장소비기한 설정을 위한 연구에 참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제도의 시장 조기 안착을 위한 선제적 노력은 물론 업계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방안을 제시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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