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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그룹 전면에 등장한 '가신 경영'

곡산 2016. 3. 8. 08:25

CJ그룹 전면에 등장한 '가신 경영'

      입력 : 2016.02.23 07:40   

조세포탈과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2월 징역 2년 7개월·벌금 252억원(서울고법 파기환송심)의 실형을 선고받은 CJ그룹 이재현(56) 회장. 2013년 7월 구속된 이후 이 회장은 신장이식수술 등 건강문제를 이유로 구치소와 교도소 대신 2년 반 가까이 서울대병원 특실에 머물고 있다. 이로 인해 CJ그룹은 2년 반 가까이 이 회장 가족과 최측근들을 통해 그룹이 운영되고 있다. 외형상 비상경영 체제다.

CJ본사 사옥 앞에서 한 직원이 전화를 받고 있는 모습. /김지호 객원기자

비상경영 체제라고는 하지만 이재현 회장의 의중이 여전히 경영에 반영되고 있다는 시각이 크다. CJ그룹은 이 회장의 구속 이후에도 그리 나쁘지 않은 실적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그룹의 주력인 식품과 콘텐츠·엔터테인먼트 계열사들이 나쁘지 않은 실적을 내고 있다.

CJ제일제당으로 대표되는 식품사업은 CJ그룹은 물론 삼성그룹의 모태답게 안정적이다. CJ제일제당은 이재현 회장이 구속되기 직전인 2012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6155억원과 3107억원이나 됐지만 이 회장이 구속된 2013년 오너리스크가 부각되며 영업이익은 3455억원, 당기순이익은 711억원으로 추락했다. 이 회장의 범죄가 기업 이미지와 실적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2014년에는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5799억원과 1379억원으로 다시 증가했다. 2015년에는 8200억원대 영업이익과 2800억원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CJ그룹의 또 다른 주력인 CJ E&M 상황 역시 CJ제일제당과 똑같다. 이 회장 구속 직전인 2012년 389억원을 기록했던 영업이익이 2013년에는 79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CJ E&M은 식품기업이던 CJ그룹이 방송·콘텐츠 기업으로 변신하며 전면에 내세운 기업이기 때문에 오너 리스크의 충격이 특히 컸다. 하지만 2014년부터 회복됐다. 1조 2320억원대의 매출을 유지하며 몸집을 키웠다. 2015년에는 대규모 성과급 지급 등 1회성 인건비 증가로 기대만큼 실적이 높아지진 않았다. 하지만 tvN 등을 통해 지상파까지 위협할 만큼 방송사업이 성장하며 630억원대 영업이익과 1530억원대 당기순이익이 전망되고 있다.

이재현 CJ 회장(왼쪽부터), 이미경 CJ 부회장, 허민회 CJ제일제당 경영지원총괄 부사장. /조선일보 DB·진중언 기자·김진

주력社, ‘이 회장 충격’에서 탈출

두 주력 계열사를 중심으로 CJ는 최소한 외형상 2년여 만에 이재현 회장의 ‘조세포탈과 횡령·배임’ 충격에서 벗어난 모습이다. CJ 계열사들이 오너 리스크를 빠르게 탈출할 수 있었던 건 주력 사업의 ‘과점시장 체제’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에서 밀가루·설탕 같은 식량 식품의 제조·유통은 대표적 과점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CJ제일제당의 영향력은 오래전부터 독보적이었다. 콘텐츠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복수방송 채널사업자(MPP)로서 이 시장 시청 점유율이 21.5%로, 시장 사업자 중 1위다. 영화시장 역시 롯데·쇼박스와 함께 국내 3대 영화 배급·제작사가 시장을 좌우하는 강력한 과점시장이다. 이 시장에서 CJ의 2015년 배급사별 점유율은 22.9%(한국 영화만 집계 시 40.5%)에 이른다. 단연 1위다. 즉 CJ의 주력시장인 식량·식품과 콘텐츠 시장이 모두 공고한 과점체제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 충격을 최소화시키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해준 셈이다.

여기에 2010년대 붐을 일으킨 한류 역시 CJ그룹 주력 사업 실적 성장에 상당히 기여했다. 발 빠른 지분 투자와 적극적 인수합병(M&A)을 통해 바이오·헬스케어산업과 콘텐츠산업 등 신규 사업영역에 뛰어든 것 역시 오너 리스크에 따른 영업력 약화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분석된다. 최근 CJ그룹 주력 계열사들의 성장성을 평가할 때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CJ의 주력 기업들과 임직원, 주주들은 이 상황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재현 회장 개인에게는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재판부에 “총수의 부재로 기업이 어렵다”는 식의 읍소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의 친누나 이미경(57) 부회장과 외삼촌 손경식(76) CJ 공동회장 등 오너 일가와 이채욱(70) 부회장·허민회(56) 대표 등 경영인이 더해진 집단경영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단지 외형상 구조라는 시각이 크다. 실제로는 여전히 이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 등 오너 일가의 의중이 그룹 운영과 인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이 회장 일가의 이 같은 CJ그룹 운영은 강력한 ‘가신 그룹’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은 CJ그룹이 삼성에서 분리될 때부터 최측근으로 구성된 가신들을 통해 그룹을 운영해 왔다. 그룹의 사업 확장과 구조 변화는 물론 비자금 관리와 가족 간 지분 및 경영권 이전 작업 역시 최측근 가신 경영인들을 통해 진행해 왔다.

2013년 7월 이재현 회장이 구속된 날의 CJ 남대문 본사. /오종찬 기자

집단경영 체제 속 노희영 사태 터져

이재현 회장 구속 이후 CJ그룹은 표면적으로 외조카를 대신해 손경식 공동회장이 수장 역할을 했고, 이미경 부회장이 방송·콘텐츠사업을 지휘했다. 여기에 CJ제일제당 김철하 대표와 이채욱 부회장, 이관훈 전 CJ 사장으로 구성된 소위 ‘5인위원회’가 그룹 운영 전면에 등장했다. 하지만 이 5인위원회는 사실상 그룹 운영을 주도하지 못했다. 오히려 2014년 이후 이재현·이미경 오너 남매의 최측근 인사가 집단 경영체제 뒤에 포진해 계열사 운영에 관여했다는 시각이 있다. 특히 이들 최측근 인사들은 이 회장 자녀인 오너 4세대로의 지분 이전 작업에 관여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측근들의 돌출 행위와 ‘범죄’가 불거지며 CJ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YG푸드 대표로 있는 노희영(53)씨가 대표적이다. 노씨는 이미경 부회장의 측근이었다. 노씨는 기업 경영 능력보다는 이미지 메이킹과 처세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수의 외식 브랜드를 론칭시키며 프랜차이즈와 식품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런 노씨가 이 회장 구속 이후, 이미경 부회장과의 친분을 배경으로 CJ그룹에 갑자기 등장했다. 하지만 체계화된 조직과 기업 경험이 부족하고, 경영·관리 능력이 없다는 점이 빠르게 드러났다. 돌출행동이 많아졌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여기에 ‘세금포탈’까지 저지르며 CJ그룹의 이미지에 타격을 가했다. 취재 중 접한 이들은 “이 회장 부재 상태에서 노희영씨 사례는 CJ 오너가의 측근 경영 실패 사례”라며 “외형상 노씨가 CJ를 사퇴한 것으로 처리됐지만, 실상 가뜩이나 비리에 민감한 이씨 오너가와 최고경영자의 격노로 퇴출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노희영 사태’ 이후 CJ에서 이미경 부회장의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건강 문제 등도 겹치며 역할이 이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대신 최근에는 이재현 회장의 최측근 인사가 다시 부상하며, 그룹과 계열사 운영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CJ그룹 실세로 통하는 CJ제일제당 허민회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이 대표적이다.

허 부사장은 1986년 제일제당에 들어와 경리팀에서 일했고, 이후 제일투자신탁과 CJ투자증권 자금담당과 CJ푸드빌의 대표를 맡았다. 2010년대 초만 해도 허 부사장은 CJ그룹과 이재현 회장 일가의 최측근으로 분류되진 않았지만 주력사인 CJ제일제당 등 CJ그룹의 국내외 자금운용 현황을 잘 파악하고 있던 인물로 알려졌다.

허 부사장이 CJ그룹 실세로 부상한 건 2013년이다. 이 회장 구속 이후 CJ가 대외적으로 내세운 5인위원회 구성과 함께 허 부사장도 본격 등장했다. 지주사인 CJ가 5인위원회 멤버이던 이관훈 CJ 사장 아래 ‘경영총괄’을 신설할 때 허 부사장이 발탁되며 존재감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CJ경영총괄은 이 회장 부재 상황에서 사실상 그룹을 관리하던 조직이다. 허 부사장은 이 조직에 발탁된 지 3개월 만에 경영총괄 산하 글로벌팀 팀장(부사장급)으로 올라섰다. 이재현 회장 승인 없이는 쉽지 않은 인사라는 게 중론이었다. 2014년 12월에는 CJ 이재현 회장 일가의 돈줄이자 오너 4세인 이선호·이경후씨로의 지분·경영권 승계 통로로 지목된 CJ올리브네트웍스의 총괄대표로 변신했다.

노희영씨. /이진한 기자

‘이 회장 구명설’ 실세 허민회 부사장

CJ올리브네트웍스는 2014년만 해도 지분이 31.88%이던 이재현 회장의 회사(최대주주는 지분 66.32%의 제일제당)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CJ 경영총괄을 맡고 있던 허 부사장이 CJ올리브네트웍스 총괄대표가 될 쯤, 이재현 회장 일가의 CJ올리브네트웍스의 지분과 재산 이전 작업이 시작됐다. 2014년 말, 서울대병원 특실에서 수감 중이던 이재현 회장이 아들 이선호(30)씨에게 지분 11.3%를 증여했다. 또 2015년 12월에도 아들 이선호씨와 딸 이경후(35)씨에게 각각 4.54%씩의 지분을 증여했다. 시장에서는 이재현 회장이 이선호씨에게 넘긴 CJ올리브네트웍스의 지분가치가 최소 6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작업 모두 사실상 허민회 부사장 체제에서 벌어졌다. 이로 인해 CJ 이재현 회장 일가의 지분·경영권 작업에 관여한 허 부사장의 역할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허 부사장이 실세로 부상한 후 그의 행보는 매우 과감했다. 2014년 8월에는 청와대 국정개입 논란설 등 문고리권력 의혹에 휩싸였던 정윤회(60)씨와 독도를 함께 가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행보가 ‘이재현 회장 구명설’ 같은 의혹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 같은 행보를 통해 허 부사장은 2013년 7월 이 회장 구속 이후,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이재현 회장과 그 가족들의 의사를 대신하는 최측근으로 자리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2월 허 부사장은 CJ그룹 모태이자 최대 계열사로, CJ그룹 주력사인 CJ제일제당의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이 됐다. 공교롭게도 2015년 12월 15일 이재현 회장이 서울고법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은 지 불과 8일 만에 단행한 인사다. 이재현 회장의 최측근이 그룹 최대 계열사의 자금과 경영을 총괄하는 위치에 배치된 것이다. 향후 CJ그룹의 ‘측근 경영’이 더 강화될 수 있다는 신호로도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CJ그룹은 건실한 기업이다.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주력기업인 CJ제일제당과 CJ E&M 등이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오너의 측근 인맥들이 수년째 CJ운영에 등장하며 의혹과 구설이 끊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탄탄한 기업이라는 이미지와 측근 경영 이미지가 공존하고 있는 게 CJ그룹의 현재 모습이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394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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