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 지방

'트랜스지방 과자' 보도서 '롯데'가 사라진 이유

곡산 2009. 4. 26. 20:13

'트랜스지방 과자' 보도서 '롯데'가 사라진 이유

[기자의눈] 롯데·식약청·보건환경연구원의 '진실게임'

김삼권 기자 quanny@jinbo.net / 2009년04월23일 17시16분

"롯데제과 등 15개 업체, 트랜스지방 '0'으로 표시해 기준 위반했다"
"5g만 넘지 않으면 된다. 조사 잘못됐다"
"롯데제과 말이 맞다"

롯데제과와 보건환경연구원이 '트랜스지방' 표시기준을 두고 22일 논란을 벌였다. 22일 오전 서울시는 시중에 유통 중인 과자 22%가 성인병을 일으키는 포화지방과 트랜스지방 함유량 표시기준을 위반했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이 대형마트 등에 유통되는 과자류 280개를 조사한 결과 62개 제품이 표시양보다 실제 트랜스지방 함유량이 많다는 발표였다.

그런데 정작 서울시 보도자료엔 위반 업체와 과자 이름이 없었다. 소비자들이 가장 궁금해 할 이 부분에 기자들 문의가 빗발치는 것은 당연지사. 그러자 서울시는 이날 오후 3시께 업체 및 과자 명단을 별도 자료로 만들어 배포했다.

자료에는 롯데제과, 크라운제과, 오리온 등 국내 유명제과업체와 수입업체 제품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롯데제과의 △제크 △하비스트오리지널 △엄마손파이 △롯데립파이, 오리온 △고소미호밀애, 크라운제과 △프리미엄뉴웰오곡쿠키 등 53개 제품이 포화지방 표시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유명제과업체 과자 22개 제품이 트랜스지방 함유량 표시기준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 중 롯데제과의 '롯데립파이', 비스코티하우스 '디아망쇼콜라' 등 15개 제품은 트랜스지방 함유량을 아예 '0'으로 표시해 문제가 됐다.

롯데제과 "트랜스지방 표시기준 위반 아니다" 발끈

명단을 제공받은 기자들은 뒤늦게 과자와 업체 이름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롯데제과가 이날 저녁 자사 이름이 거론된 기사에 대해 정정을 요구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강하게 항의했다.

내용인즉슨 트랜스지방 표시기준 위반으로 거론된 자사 제품들은 올해 4월30일 이전에 생산돼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다만 롯데제과 측은 포화지방 표시기준 위반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  롯데제과가 22일 오후 배포한 기사 정정 보도자료

2007년 12월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고시에 따르면 1회 제공량(과자류는 30g) 당 트랜스지방이 0.2g을 초과하지 않을 때에만 '0'으로 표시할 수 있다. 단 식약청은 올해 4월30일 까지는 종전 기준을 따르도록 유예기간을 뒀다. 종전 규정으로는 0.5g을 초과하지 않으면 '0'으로 표기할 수 있다.

롯데제과 홍보팀 관계자는 22일 저녁 '참세상'과 전화통화에서 "문제가 된 제품들은 4월30일 이전 제조한 제품이기 때문에 '0' 표시가 가능하다. 보건환경연구원 조사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롯데제과 해당 제품들은 트랜스지방 함유량이 0.2g을 초과하지만 종전 규정인 0.5g은 넘지 않으므로 표시기준 위반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면서 롯데제과 측은 "2009년 5월1일 생산분부터 트랜스지방 함량에 따라 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건환경연구원 "이제 와서 트집"... 식약청 "롯데, 표시기준 위반 아니다"

이 같은 롯데제과 측 주장에 조사를 진행한 보건환경연구원 기획검사팀 관계자는 이날 '참세상'과 전화통화에서 "이번 조사는 유통기한이 올해 4월30일 이후로 돼 제품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식약청 고시 유예기간은 제조일이 아니라 '유통기한'으로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2007년 12월 식약청 고시 시행 이후 생산된 제품 중 유통기한이 4월30일 이후인 제품들은 바뀐 '0.2g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미 롯데제과에 조사결과가 전달됐는데 업체명이 공개되자 이제 와서 유예기간을 거론하며 트집 잡고 있다"고 성토했다.

식약청은 이 같은 롯데제과와 보건환경연구원의 논란에 대해 "롯데제과의 주장이 맞다"고 롯데제과의 손을 들어줬다. 식약청 영양평가과 관계자는 23일 "(롯데제품의 경우) 유예기간이 있어 (4월30일 이전 생산품은) 0.5g만 넘지 않으면 '0'으로 표시해도 기준 위반이 아니다"고 말했다.

기자들로서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진 것. 때문에 22일 저녁부터 트랜스지방 과자 관련 기사에서 롯데제과가 언급된 부분은 대부분 수정됐다.

연구원 "식약청에 사전에 문의했다"... 식약청 "그런 적 없다'"

식약청은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트랜스지방 '0' 표시기준을 '0.2g 미만'이라고 밝혔다. 지난 달 3일 식약청은 조선일보의 '트랜스 지방 제로가 아니더라'(3월3일자) 보도에 대해 해명자료를 냈다. 당시 식약청은 "현행 식품 등의 표시기준에 따르면 제품 1회 제공량 당 트랜스지방이 0.2g 미만 들어있을 경우 '0'으로 표기할 수 있다"고 현행 기준이 '0.2g'임을 명시했다.

▲  지난 달 3일 식약청이 낸 해명자료

'경과조치'를 알고 있는 식약청이 '0.5g'이 아닌 '0.2g'으로 표시기준을 명시한 건 이해하기 힘들다. 롯데제과와 식약청의 현재 주장대로라면 당시(3월 3일) 생산된 과자류는 0.2g 기준을 따를 필요가 없다.

식약청 영양평가과 관계자는 "당시 조선일보 보도가 트랜스지방이 0.2g 미만 함유된 제품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해 '0.2g 포함은 0으로 표시할 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 낸 자료"라고 해명했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보건환경연구원 관계자는 "식약청에 (경과조치 규정 등 고시 내용을) 문의하며 조사를 진행했는데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롯데제과 측에서 항의가 있은 뒤 오히려 본청(서울시)에서 연구원 측에 사과문을 내라고 했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나 식약청 영양평가과와 식품안전정책과 등 관련 부서 담당자들은 "보건환경연구원으로부터 사전에 이번 조사와 관련한 문의나 공조 요청을 받은 적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