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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 찾아 삼천리

곡산 2009. 1. 24. 23:49

빵집 찾아 삼천리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한겨레 남종영 기자
» 횡성군 안흥면사무소 앞 찐빵집에서 내놓은 안흥찐빵.
주말 오후 영화를 본 뒤, 빵집에서 도넛을 시키고 미팅을 했습니다. 점심시간 수위 아저씨를 피해 교문을 넘어 학교 앞 분식점에서 라면과 꿀빵을 먹었습니다. 추운 날 길을 가다 배고프면 주저 없이 들어가 음식을 시켜 놓고 보리차를 홀짝였죠.

김밥천국과 김가네 등 ‘김씨 일가’들이 분식점을 점령하고 찐빵과 도넛, 라면으로 이뤄진 차림표도 돈가스와 카레라이스로 진화했지만, 요즈음도 눈을 오므리고 살펴보면 숨은 빵집과 분식점들이 많습니다.

» 통영 오미사꿀빵의 정원석 할아버지. 세탁소 옆 분식점에서 출발해 40년 가까이 학생들의 친구가 되었다(왼쪽사진). 할머니들이 장사를 그만 둬 사라졌다가 부활한 안동 버버리찰떡(오른쪽사진).
» 오미사꿀빵집 입구.
» 아이들이 분식점 바깥에서 빵을 바라보고 있다.

〈esc〉가 설날을 앞두고 숨은 빵집 찾기에 나섰습니다. 사흘 동안 1300킬로미터를 달린 빵집 전국일주 강행군! 둘러본 빵집 일곱 곳 대부분 학교 앞이나 골목 분식점이 모태가 된 곳입니다. 어떤 곳들은 유명세를 타고 인터넷 블로그에 단골로 등장하는 일품 맛집이 됐지만, 아직도 후미진 골목에 옴팡지게 붙어 매직으로 쓴 메뉴판으로 손님을 받는 곳도 있었습니다. 맛이 아니라 풍경을 팔았을까요? 사라진 풍경이라고 여겼건만 아직도 그곳에는 아주머니들이 난로 앞에서 옹기종기 앉아 포크로 빵을 찍어 먹고 있더군요. 훈김이 피어오르는 찐빵 앞에서 기억을 먹는 건지 찐빵을 먹는 건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분식점에서 시작해 명품 빵에 이른 경주 황남빵.
» 여직 옛날 분식점의 정취를 간직한 진주 수복빵집의 찐빵.
» 세계 최대 찐빵마을로 성장한 안흥찐빵마을에서 빵을 빚는 할머니들.

이번 설에는 하루 일찍 고향에 내려가 보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기억 속의 빵집이나 분식점을 찾아가 보는 거예요. 어쩌면 스뎅(스테인리스) 주전자로 보리차를 따라주던 아주머니가 여태 그곳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 정아분식의 ‘정아’ 홍정순씨(가운데)와 아들과 남편이 생강도넛을 들고 모였다.


정아~ 매콤달콤 그 맛에 샤워하고 싶어라~

고향 떠난 왕년의 고교얄개들이 아저씨 돼 찾아오는 풍기 정도너츠

영주시 풍기읍에서 나고 자란 황홍현(38)씨는 “어릴 때부터 정아분식 생강도넛을 먹고 자랐다”고 말했다. 영주시에 사는 이금희(45)씨는 “지금도 풍기온천에 다녀올 적마다 도넛을 사온다”고 말했다. 풍기 사람들은 풍기 오거리에 있는 ‘풍기 정도너츠’를 옛 이름 ‘정아분식’이라 부른다. 풍기 정도너츠는 얼굴이 고운 아주머니 홍정순(58)씨 가족이 운영한다. 생강도넛 아줌마 홍정순씨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손님이 끊이질 않네요. 처음 도넛을 만든 게 언제인가요?

“강원도 태백에서 아저씨를 만나 결혼했어요. 내가 19살이었고, 아저씨는 26살이었어요. 아저씨가 탄광에 갈 적에 호떡을 구웠죠. 공장 도넛을 받아 팔다가 나도 한번 도넛을 만들어봤죠. 이렇게 저렇게 만들다가 지금의 생강도넛을 만든 거예요.”

정오도 안 돼 다 팔려나간 도넛

-처음 풍기에서 분식점을 연 게 아니군요.

“네. 풍기에 온 건 1980년이에요. 29살에 정아분식을 차렸죠. 테이블 여섯 개의 단출한 고교 분식점이었죠. 처음 메뉴는 떡만두국, 김치만두, 떡볶이, 김밥, 쫄면, 찐빵 등이었어요. 김치만두는 아마 국내 최초였을걸요? 솜씨가 좋았는지 손님들은 “아무거나 만들어도 맛있다”고 하더군요.”

-생강도넛도 직접 개발하신 건가요?

“아니에요. 그즈음 경북 북부와 강원도에서는 생강도넛을 만들어 먹었어요. 오히려 풍기에는 흔히 보이는 찹쌀도넛이 없더군요. 그래서 풍기로 와선 찹쌀도넛도 만들어 팔았죠. 초기에는 예닐곱 가지의 도넛을 빚었어요. 개업 당시 생강도넛 가격이 20원.”

» 생강도넛은 손으로 직접 빚는 수제 도넛이다.

풍기는 당시 ‘멍게도넛’이 평정하고 있었다. 도넛에 붙은 땅콩 고물이 멍게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강도넛을 멍게도넛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멍게도넛 집은 홍정순씨의 생강도넛이 출현하고 난 뒤 2년 만에 사라졌다. 생강도넛은 잘게 부순 생강을 설탕과 함께 뜨거운 불에 달구고 여기에 땅콩을 버무린 고물을 입혀 만든다.

-생강도넛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새벽 4시30분 분식점에 나오면 생강도넛부터 만들었어요. 낮에는 바쁘니 미리 만들어둔 거죠. 근데 낮 12시가 안 돼 다 팔려나갔어요. 그리 많이 만들진 않았거든요. 근데 일찍 떨어지니까 손님들이 아쉬워하며 생강도넛을 더 찾는 거예요. 그러다가 귀한 음식이 됐나 봐요. 호호호. 학교 매점과 시내 구멍가게에도 납품하고 아줌마 두 명이 리어카로 싣고 팔기도 했죠. 지난해까지는 도넛 말고도 떡볶이와 만두, 찐빵도 했어요. 떡볶이가 인기가 좋았죠. 지금 내가 떡볶이를 하면 풍기 시내가 뒤집어질걸요. 까르르.”

-정아분식은 고교생들의 아지트였겠네요?

“점심 저녁 시간에는 내가 하도 바쁘니까, 여고생들이 직접 떡볶이를 볶아 먹었어요. 테이블이 모자라 안방, 공부방도 내줬죠. 한번은 단골 얄개들이 안방에서 떡볶이를 먹고 나갔어요. 꼬깃꼬깃 접힌 돈을 양말에서 꺼내 주더군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안방 전기밥솥에 넣어 둔 하루치 매상을 다 가져가 버린 거예요. 정아분식이 그 녀석들의 아지트였죠. 지금은 같이 늙어가는 처지네요… 서울로 시집간 학생이 입덧한다고 택배로 부쳐달라고 하고, 군대 간 아들을 둔 엄마도 찾아오죠. 특히 여름휴가나 명절 때 고향에 온 왕년의 고교 얄개 손님들이 많아요.”

정아분식이 풍기를 넘어 전국으로 이름난 계기는 방송 보도 때문이었다. 2004년 문화방송 ‘투어 대한민국’에 생강도넛이 소개되자, 분식점 앞 도로는 자동차로 꽉 막혔다. 지구대 경관이 “빨리 이사가라”고 할 정도였다. 며칠 전 11번째 방송 촬영진이 다녀갔다.

» 예전에는 테이블과 의자에 고교생들이 꽉 들어찼으나, 생강도넛이 유명세를 타면서 판매 위주의 일품 맛집이 됐다.

아들은 가업 잇기 위해 식품가공학 전공

-아드님과 며느님도 직접 도넛을 빚으시네요.

“아들은 제대하고 계속 도와주고 있어요. 가업으로 이을 생각에 식품가공학을 전공했죠. 여기서 일한 지 11년째예요. 큰딸은 안동에 분점을 냈고, 지난 6일에는 대구 죽전에 프랜차이즈 1호점이 생겼죠. 지난해 ‘풍기 정도너츠’로 상호도 바꿨어요. 하지만 지금도 정아분식이라고 불려요.”

-그런데 왜 정아분식이라고 이름 지었죠?

“호호. 아저씨와 연애할 때 아저씨가 날 ‘정아’라고 불렀거든요. ‘정순’이라는 이름이 촌스럽다고.”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