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 신화’ 윤석금회장-전문경영인 조화…
그룹 고속 성장 이끌어
《‘나는 나의 능력을 믿으며, 어떠한 어려움이나 고난도 이겨낼 수 있고, 항상 자랑스러운 나를 만들 것이며….’(윤석금 회장의 ‘나의 신조’)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세일즈맨들 사이에서 신화적인 존재다. 별다른 밑천이 없었던 윤 회장은 세계 곳곳에 판매망을 갖고 있는 유명 백과사전 영업에 뛰어들었다. 1년 만에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 영업사원 중 가장 뛰어난 실적을 올렸으며 10년도 안 돼 임원에 오를 정도로 ‘판매의 귀재(鬼才)’였다. 그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1980년 자본금 7000만 원으로 서울 중구 남대문로 대우빌딩 12층에 작은 사무실을 얻어 웅진출판의 전신(前身)인 헤임인터내셔널을 차렸다. 강의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와 교재를 팔던 이 출판사는 28년 뒤 계열사 15개를 거느린 매출 4조6000억 원의 중견 그룹으로 성장했다.》
○ ‘28세 청년’이 된 웅진그룹
웅진이 이처럼 성장한 비결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절묘한 타이밍’이다.
1980년 과외금지 조치가 내려졌을 때 윤 회장은 ‘과외가 금지됐으니 집에서 공부할 수 있는 학습 테이프를 만들면 어떨까’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고교 학습참고서의 대명사였던 헤임고교학습이다. 내용에는 자신 있었지만 초기 판매가 부진하자 윤 회장은 일간지에 전면 컬러광고를 내기도 했다. 전면 컬러광고는 단가가 비싸 당시에는 대기업 아니면 꿈도 못 꿀 형편이었다. 모험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이었다.
출판사업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윤 회장은 웅진식품과 웅진코웨이를 설립하며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잘나가던 웅진그룹도 외환위기를 비켜갈 수 없었다. 하지만 윤 회장은 극도로 위축된 당시의 소비심리를 겨냥해 고가(高價)의 정수기를 싼값에 빌려 쓰는 ‘렌털’ 아이디어로 제2의 도약을 꾀할 수 있었다.
웅진은 2000년대 들어서는 그룹의 모태(母胎)인 도서출판 및 교육사업과 관련된 소규모 인수합병(M&A)으로 내실을 다져갔다. 웅진코웨이, 웅진씽크빅 등 현금 흐름이 좋은 기업이 많은 웅진그룹은 풍부한 자금 동원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극동건설을 인수한 데 이어 올해 초 웅진케미칼(옛 새한)까지 품에 안았다. 재계에서는 ‘웅진의 다음 먹잇감은 어디냐’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
웅진그룹은 극동건설과 새한을 인수한 것이 단지 그룹의 외형을 키우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그룹의 신(新)성장동력인 ‘친환경 미래 에너지’ 사업을 위한 포트폴리오 구축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웅진케미칼과 웅진코웨이가 생산하는 정수기, 공기청정기용 필터를 응용해 해수(海水) 담수화 사업으로 연결시키고, 웅진에너지와 극동건설, 웅진폴리실리콘을 통해 태양광 발전소 사업에 승부수를 던지겠다는 것이다. 28세 청년이 된 웅진의 선택이다.
‘환경’이란 화두를 택한 웅진그룹은 국내 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최고환경정책책임자(CGO·Chief Green Officer)란 직책을 만들었다. 1992년 당시 환경처 차관을 지낸 이진 웅진그룹 부회장이 CGO로 그룹 내 환경경영시스템을 구축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박용선 웅진해피올 부회장은 1981년부터 윤석금 회장과 동고동락하며 웅진을 키운 인물이다. 박 부회장은 정수기 등 소형 생활가전은 ‘한번 팔고나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많던 1998년 자사(自社) 제품을 정기적으로 관리해주는 ‘코디’ 서비스를 도입한 아이디어맨이다.
김준희 웅진씽크빅 사장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 유신 반대시위를 주도한 ‘운동권’ 출신이다. 시위 전력 때문에 취업을 못하고 있던 김 사장을 윤 회장이 직접 스카우트했다. 1984년부터 웅진의 도서출판 및 교육사업 분야에 몸담고 있다.
○ 제2의 도약을 위한 외부영입 CEO들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은 삼성전자 임원 출신으로 웅진코웨이의 해외사업 강화를 위해 2006년 영입됐다.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생활가전 사업에 오래 몸담은 터라 마케팅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는다. 올해 초부터 생활가전 회사인 웅진쿠첸 대표도 겸하고 있다.
유재면 웅진식품 대표는 1990년 웅진씽크빅(당시 웅진출판)에 입사해 그룹 기획조정실장, 웅진재팬 대표를 거쳐 2005년부터 웅진식품을 이끌고 있다. ‘음료의 패션화’를 주창하며 보수적인 식품업계에 혁신경영, 스피드경영을 도입해 화제가 됐다.
문무경 렉스필드CC 대표는 17년간 대우전자 기획통으로 근무하며 가전업계 돌풍을 몰고 왔던 ‘탱크주의’ 콘셉트를 만들어 낸 주인공이다. 2000년 웅진그룹으로 자리를 옮겨 웅진쿠첸 대표를 지냈다.
안인식 극동건설 사장은 1978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이래 30년 가까이 중동지역 플랜트 건설 한 길만 걸어왔다. 풍림산업 해외사업본부장, 현대엔지니어링 부사장 등을 거쳐 지난해 8월 극동건설의 새 사령탑으로 영입됐다.
박광업 웅진케미칼 사장은 새한의 모(母)기업인 제일합섬 신입사원으로 시작해 32년간 새한에 몸담아 왔다. 웅진으로 인수된 후에도 그룹 경영진으로부터 재신임을 받아 6년째 대표직을 맡고 있다.
유학도 웅진에너지 사장은 화학공학 박사 출신으로 재생에너지 전문기술기업인 미국 선파워사(社)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거쳐 지난해 1월부터 웅진에너지를 맡고 있다.
웅진폴리실리콘은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할 때 필요한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기업이다. 올해 7월 새롭게 출범한 웅진폴리실리콘 신임 대표로 영입된 백수택 부사장은 10년 넘게 폴리실리콘을 연구해 온 전문가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컨설턴트… 고시학원장… 이색경력 CEO ‘능력 만점’▼
웅진그룹에는 컨설턴트, 국제금융전문가, 고시학원장, 엔지니어 등 이색적인 경력을 가진 최고경영자(CEO)가 많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에게든지 일을 맡긴다는 것이 윤석금 회장의 지론이다.
김정식 웅진캐피탈 대표이사 전무는 미국 하버드대에서 국제금융학 박사학위를 받은 금융전문가. 김 대표는 1997년부터 2000년까지 골드만삭스 미 뉴욕 본사에서 유럽·아시아 투자총괄담당을 지냈다. 현재 대우증권과 함께 3000억 원 규모의 사모(私募)펀드(PEF)를 운용하며 자산운용사업 분야를 이끌고 있다.
도서유통 전문기업인 북센의 신광수 대표이사 상무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을 졸업한 컨설팅 전문가. 신 대표는 2006년 웅진씽크빅 경영지원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1년 만에 CEO로 발탁됐다. 올해 39세로 그룹 내 최연소 CEO다.
국내 공무원 수험 전문기업인 웅진패스원은 서영택 상무와 진기명 전무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진 대표는 웅진이 인수한 한교고시학원의 학원장 출신이다. 서 대표는 보스턴컨설팅그룹을 거쳐 2005년 웅진으로 자리를 옮겼다. 웅진씽크빅 경영기획실장, 신규사업추진팀장을 맡다가 지난해 초 웅진패스원 대표가 됐다.
전자공학 박사인 정철종 웅진에스티 대표이사 상무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마케팅그룹장과 대만 개인휴대정보기(PDA) 회사 부사장을 거쳐 올해 3월 웅진그룹에 영입됐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무선인터넷 플랫폼(위피·WIPI), 휴대인터넷 와이브로 등 다양한 기술표준을 소화하는 기업 맞춤형 솔루션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아서디리틀 컨설턴트 출신인 김동현 웅진홀딩스 기획조정실장(상무)은 2003년 웅진코웨이 전략기획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 실장은 태양광사업 진출과 웅진케미칼 설립의 밑그림을 그렸고, 게임단 웅진 스타즈 단장까지 함께 맡고 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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