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물건을 팔수록 빚만 늘어나는 그런 영업사원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주로 음료나 제과, 제약 회사의 영업사원 얘깁니다.
일할수록 회사에 빚만 지는 이상한 영업 관행을 김준범 기자가 현장 추적으로 고발합니다.
<리포트>
음료회사 영업사원 김정헌 씨.
상품 물량이나 가격을 협상하고, 거래처까지 배송하는 일이 주업무입니다.
당연히 물건을 많이 팔수록, 별도로 지급되는 판매 수당 역시 늘게 됩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거래 물량은 꾸준히 늘었는데 회사에 6천만 원 넘는 빚만 졌습니다.
장부상으로만 물건을 파는 가상판매, 속칭 '가판'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정헌(음료회사 영업사원) : "만약 3백만 원을 팔아야 되면, 아무리 팔아도 안 되는 날이 있잖아요. 백50밖에 못 팔았어요. 그럼 나머지 백50은 가공으로 판매를 잡아야 되요."
가상 판매된 제품을 기한 내에 처리하지 못하면, 그 부족금은 영업사원 몫입니다.
손해보는 줄 알면서도 계속하는 건 회사가 정한 판매 목표량을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정헌(음료회사 영업사원) : "회사에서 정해준 목표량이 있는데, 그 목표량을 못 채우게 되면 회사에서 압박이 들어와요. 퇴근을 시키지를 않아요. 욕하면서."
제약 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상 판매로도 모자라 제 값보다 20~30% 싸게 파는 이른바 '덤핑판매'도 흔한 일입니다.
<인터뷰> 박00(제약업체 영업사원) : "도매상에서 나가는 가격이 직거래하는 가격보다 싸니까, 담당자 입장에선 맞춰줄 수 밖에 없는거죠." (손해를 보고 팔 수밖에 없다?) "그렇죠."
'가판'에 '덤핑'까지 계속하면서 박 씨는 6년 만에 1억 원 넘는 빚을 떠안게 됐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덤핑'이나 '가판'은 영업 사원들이 알아서 한 일이고, 영업 사원들이 부담을 느끼는 판매 목표량에 대해서도 일종의 권고일 뿐이라는 입장입니다.
KBS가 입수한 한 제약회사의 내부 문서는 다릅니다.
부족금을 의미하는 '단가 차액'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더니, '단가 차액'을 감수하고 영업을 계속하는 직원들의 수고를 위로하기까지 합니다.
다른 업체의 공문엔 매일 월별 목표량의 6% 달성하라, 그렇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둘 생각을 하라, 반협박조의 지시사항으로 가득합니다. 이렇게 덤핑 판매를 회사가 지시했거나 최소한 묵인했다는 정황이 뚜렷한데도, 해당 업체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이에 대한 해명을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다 지난 일이라며, 취재에 거칠게 항의하기까지 합니다.
회사의 빚 독촉을 거부하면, 곧장 소송을 각오해야 합니다.
하지만 소송 기간만 최소 2년이 넘는데다 집과 월급에 대한 가압류가 뒤따르기 때문에, 끝까지 버티는 영업 사원은 드뭅니다.
<인터뷰> 김용수(노무 전문 변호사) : "회사에서 모르는 게 아닙니다. 가판 물량이나 시장 유통 가격을 지점에서 조사해서 전부 영업부나 본사에 보고가 됩니다.다 알면서도 영업 사원한테 책임을 묻는 거죠."
영업사원과 회사 사이의 법정 다툼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백50건이 넘습니다.
현장추적, 김준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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