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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체, "싸게 납품하라" 요구에 허리휘죠

곡산 2008. 1. 16. 08:23
제조업체, "싸게 납품하라" 요구에 허리휘죠
할인점 PL상품 인기 치솟는데 제조업체는 왜 울상
英 테스코 매출의 50%차지 질 떨어지면 소비자도 손해

◆NIE(신문활용교육) / NIE 맞춤노트◆

즉석밥, 화장지, 우유까지. 대형마트에는 각 마트 이름이 달린 제품이 있다.

대형마트에서 상품을 생산하는 자체 공장을 보유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터라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기 충분한 소재다. 대형마트 브랜드를 달고 나오는 상품, PL은 과연 무엇일까?

Q. 대형마트 이름이 써 있는 제품은 직접 만드나?

A. 대형마트 이름이 써 있는 상품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고 자체브랜드(PLㆍPrivate Label)를 붙일 뿐 실제 생산은 다른 기업에서 한다. 대체로 업계 2~3위 유명 제조업체가 제조한 뒤 대형마트 이름을 붙여 판다.

Q. 대형마트 이름을 붙여서 팔면 좋은 점은 무엇인가?

A. 대형마트 처지에서는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물건을 공급할 수 있다. 실제 국내 대표적인 한 대형마트는 가격혁명의 1단계로 PL전략을 발표하기도 했다.

PL이란 자체브랜드 상품이라는 뜻으로, 즉석밥이나 휴지처럼 대형마트 이름을 붙인 업계 2~3위 회사 제품이지만 제조회사 브랜드(NBㆍNational Brand) 제품보다 최대 47%까지 가격을 낮춘다는 전략이다.

실제 이마트에 따르면 PL 신제품을 내놓은 첫날인 지난해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이마트 직영점포 86개점에서 대표적인 PL제품 8개 판매량을 집계해 같은 수준의 NB제품과 비교한 결과 라면과 커피믹스를 제외한 6개 품목에서 PL제품 판매량이 더 많았다.

예를 들면 즉석밥인 `이마트 왕후의 밥`(210g 4개, 2780원)은 모두 1만1819개가 팔린 반면 업계 1위 제품인 CJ의 `햇반`(210g 3개, 3650원)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769개에 그쳤고, `이마트 콜라`(1.5ℓ, 790원)도 1만6792병이 판매돼 7826병이 팔린 `코카콜라`(1.8ℓ, 1630원) 판매량을 크게 뛰어넘었다.

이와 같이 PL상품 판매가 많아지면 대형마트가 원하는 상품을 주문하고 가격까지 조정할 수 있어 더 많은 소비자 발길을 대형마트로 이끄는 효과를 발휘한다.

협력업체 처지에서는 판매처가 정해져 있으므로 힘들게 팔 곳을 찾으러 다닐 필요 없이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다. 상품을 알리기 위한 광고비, 판촉행사비 등 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다.

소비자 처지에서는 저렴한 상품이 많아지고 선택할 상품 종류가 다양해지므로 당연히 여러 가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임윤희 영서중 교사
Q. 대표적인 PL상품은 뭐가 있을까? 외국에서는 어떨까?

A. 이마트는 △이마트 왕후의 밥 △이마트 맛으로 승부하는 라면 △이마트 봉평샘물 △이마트 모카믹스 △이마트 한스푼 등이 있고, 롯데마트는 와이즐렉이란 이름 아래 △와이즐렉 마음들인 재래김 △와이즐렉 마음들인 삼겹살 등 신선식품 △와이즐렉 유기농 등 다양한 상품이 있다. PL상품은 이미 외국에서는 보편화돼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마트인 월마트는 매출 중 40%, 영국 테스코는 50%가 넘고, 미국 전체 소매시장에서 팔리는 물건 5개 중 하나는 PL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Q. PL상품 판매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점은?

A. 전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선 제품 연구개발비와 상품 시장 개척을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서 힘들게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한 제조업체로서는 뒤쫓던 2~3위 업체가 대형마트와 손잡고 저가상품으로 추격해 오면 가격경쟁에서 밀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브랜드력이 없는 업체들은 더더욱 대형마트에서 살아남기가 힘들어질 수 있다. 결국 대형마트 처분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되어 대형마트 중심의 권력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소비자 처지에서는 우선 저렴한 상품을 살 수 있어 좋지만 업체들 간 가격경쟁으로 다수 업체가 사라지면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소비자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잃어버릴 수 있고,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는 가운데 질 낮은 상품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Q. PL상품 판매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점을 줄이고 대형마트, 제조업체,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없을까?

A. 대형마트는 경쟁업체 상품과 무조건 가격으로 경쟁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찾을 수밖에 없는 차별된 상품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여 소비자에게 다가가야 한다. 소비자들 기호는 다양해져서 무조건 싼 제품보다 하나를 구매해도 가치가 있는 제품을 찾는다. 또한 지나치게 가격만 낮추려는 과정에서 제조업자에게 전적으로 부담을 전가하거나 중소 유통업체에 지나친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소비자들 또한 무조건 저렴하기만 한 물건을 찾을 것이 아니라 상품 질에 따라 가격이 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자기 상황에 맞는 합리적인 소비로 생산자의 건전한 생산 의욕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 생산원가의 수 십 배나 되는 이윤을 챙기는 터무니없는 가격은 견제해야겠으나 상품 개발에 공을 들인 기업 노력에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려는 자세는 필요하다.

[정리 = 김대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