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식품은 호흡을 하는가? 답은 '호흡하는 식품도 있고 호흡하지 않는 식품도 있다'이다. 그러면 어떤 식품은 호흡을 하고, 어떤 식품은 호흡하지 않을까. 세포가 살아있는 식품은 호흡을 하지만 세포가 죽은 식품은 호흡하지 않는다. 세포가 살아있는 식품이란 자연에서 얻은 신선한 상태의 식품을 말한다.
반면에 가공식품을 만들기 위해 신선한 식품에 열을 가하는 등 물리·화학적인 충격을 주면 식품의 세포가 파괴되어 더 이상 호흡하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면 세포가 살아있는 싱싱한 사과는 호흡을 하지만 열을 가해 세포가 죽은 사과잼은 호흡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싱싱한 고구마는 호흡을 하지만 군고구마는 호흡하지 못한다.
세포의 상태에 따라 식품의 호흡 여부가 결정된다면 결국 세포가 식품의 호흡에 관여한다는 말이다. 동물과 식물의 세포 안에는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라는 기관이 있다. 하나의 세포 안에 수십 개에서 수천 개까지 들어 있는 이 기관은 호흡을 수행하면서 에너지를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사람도 코와 허파로 숨을 쉬지만 호흡에 의해 체내에 유입된 산소를 최종 소모해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곳이 미토콘드리아다. 그래서 미토콘드리아는 생체의 '에너지 생산공장' 또는 '발전소'라 불린다.
식품을 호흡 여부에 따라 분류하는 이유가 있다. 식품의 호흡은 식품의 노화와 저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호흡과 마찬가지로 식품도 호흡과정에 산소를 흡수하여 열량을 산화시켜 열 이산화탄소 그리고 물을 방출한다. 이처럼 호흡은 식품의 신선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과의 호흡을 예로 신선도와 호흡과의 관계를 몇 가지로 설명해 보자. 첫째 호흡은 사과의 영양소 파괴를 촉진시킨다. 사과를 나무에서 따도 사과 세포가 살아있기 때문에 계속 호흡을 한다. 그러면 사과 내부의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등 열량소가 미토콘드리아 내에서 산화되어 물과 열로 바뀐다. 사과의 영양성분이 줄어든다는 말이다. 호흡의 또 다른 문제는 사과를 빨리 시들게 한다는 것이다. 호흡에 의해 사과 내부에서 발생한 열은 결과적으로 사과를 가열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면 사과의 온도가 올라가서 사과의 수분이 증발된다. 수분이 줄어들면 사과가 시들어 품질이 급격히 나빠진다. 이처럼 호흡은 식품의 영양소와 신선도를 떨어뜨리고 저장성을 낮추는 주범이다.
그래서 식품을 신선한 상태로 오랫동안 저장하기 위해선 식품이 호흡을 못하게 해야 한다. 식품의 호흡을 억제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식품의 저장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식품을 냉장고에 넣는 등 온도를 낮추면 호흡속도는 감소한다. 또 다른 방법은 근본적으로 식품이 숨을 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식품이나 사람은 모두 산소가 있어야 숨을 쉰다. 식품 주위의 산소농도를 낮추면 식품은 질식 상태가 되어 호흡할 수 없게 된다. 식품의 호흡을 억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위의 두 방법을 혼합하여 저온에서 식품을 질식시키면 된다.
식품의 호흡을 억제해서 식품의 저장성을 높이려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그 중 많이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 '환경기체조절저장(Controlled atmosphere storage, CA 저장)'과 '환경기체조절포장(Modified atmosphere package, MAP)'이다. 이 두 방법의 공통점은 환경기체의 농도를 식품호흡억제에 가장 적합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이다.
CA저장은 1932년 영국에서 개발된 이래 기술적 발전을 거듭해 지금도 가장 우수한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방법은 식품을 대형으로 저장할 때 활용한다. 밀폐형 창고에 식품을 넣은 후 기계적으로 저장고의 산소 농도를 낮추고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이는 저장 기술이다. 처음에 CA저장은 과일과 채소 저장에 주로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육류 어류는 물론 화훼류의 저장에도 활용되고 있다.
MAP는 포장을 이용하여 식품의 호흡을 억제하는 기술이다. 식품을 플라스틱 필름으로 포장하면 식품은 포장 내부의 산소를 소모하여 이산화탄소를 방출한다. 결과적으로 포장 내의 산소농도는 낮아지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높아진다. 자신의 호흡에 의해서 방출된 이산화탄소 때문에 스스로 호흡이 억제되어 저장성이 높아진다. 마트에 가면 콩나물 고추 사과 배 등 대부분의 신선 식품이 플라스틱 필름에 포장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MAP 기술을 활용한 것이다.
MAP 기술은 가정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신선한 식품을 랩에 싸거나 플라스틱 필름에 담아서 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바로 MAP이다. 사과를 냉장고에 바로 넣는 것 보다 플라스틱 필름에 포장하여 넣어두면 저장기간이 3배 이상 길어진다. 사과의 호흡이 억제되었기 때문이다.
동의과학대 입학홍보처장·식품과학계열 교수
강준수 교수의 식품이야기 <43> 호흡하는 식품과 그 저장기술 사과, 랩에 싸서 냉장고 보관하면 3배 이상 오래가 산소 줄고 이산화탄소 늘어 과일의 호흡 억제되기 때문 저온·질식보관 저장에 유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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