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표 맥주회사 "건강식품 기업으로 대전환"
주류시장 역성장 위기에
"건강으로 미래 창조한다"
헬스사이언스 부문에 총력
맥주 제조 과정에서 축적된
유산균·발효·미생물 기술
건강식품 만드는 핵심 기반

100년 넘게 맥주로 성장해 온 기린홀딩스가 건강·바이오 중심 기업으로 대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히 건강식품 사업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2035년 장기 비전으로 주류에 관한 얘기는 빼고, '몸과 마음의 건강으로 미래를 창조하는 그룹'을 제시했다.
기린홀딩스는 '기린 이치방 시보리' 맥주를 통해 우리에게도 친숙한 일본 대표 맥주 기업이다. 1907년 미쓰비시 계열로 창업해 1990년대까지는 일본 맥주시장 내 점유율이 50%를 넘는 압도적인 1위였다.
현재도 기린의 4가지 사업 영역인 주류·음료·의약·헬스사이언스 가운데 핵심 수익원은 여전히 주류 부문이다. 지난해 연결 매출 2조4334억엔(약 23조원) 가운데 주류 사업 비중이 44%인 1조753억엔(약 10조1700억원)에 달한다. 의약 부문과 헬스사이언스를 합친 매출은 7479억엔(약 7조750억원)에 그친다.
하지만 숫자를 뜯어보면 변화의 방향은 명확하다.
주류 사업 매출은 전년 대비 0.6% 감소했지만, 헬스사이언스 부문은 무려 43.4% 급증했다. 영업이익 측면에서도 2024년 109억엔(약 1030억원) 적자를 기록했던 헬스사이언스 부문이 지난해 111억엔(약 1050억원) 흑자로 반전했다.
기린은 올해 경영 계획에서도 헬스사이언스 부문에 강점을 뒀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전년 대비 2.2%, 17.5%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반면 주류 사업의 경우 매출은 0.8% 소폭 성장하지만, 영업이익은 2.5% 감소를 예상했다. 기린이 주류 사업을 줄이려는 가장 큰 이유는 시장 자체의 변화 때문이다.
미나카타 다케시 기린 사장은 중장기 전략 발표에서 "인구·문화·규제 변화가 동시에 겹치면서 주류시장은 구조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일본은 저출생·고령화로 음주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데다 젊은 세대일수록 술을 덜 마시는 것은 회사에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20·30대를 중심으로 술을 안 마시거나 줄이는 '소버 큐리어스' 문화 확산은 주류 판매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기린은 올해 맥주 판매는 3.2% 줄어들 것으로 보지만, 무알코올맥주는 38.5%나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쉽게 마시는 캔 칵테일 느낌의 즉석음용주류(RTD) 또한 6% 성장을 기대한다. 이에 따라 기린은 2002년 인수했던 유명 버번위스키 브랜드 '포 로지스'를 올해 초 세계 최대 와이너리인 미국 이&제이갤로에 1000억엔(약 9460억원)에 매각했다.
반면 기린은 1980년대 제약 분야로 시작한 헬스사이언스 분야를 인수·합병(M&A)을 통해 강화하고 있다. 2023년에는 호주 최대 건강식품회사인 블랙모어스를 18억8000만호주달러(약 2조1600억원)에 인수했다.
또 2024년에는 화장품·건강식품 제조사인 판클을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다. 기존에 지분 33%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주식공개매입(TOB) 방식을 통해 전량을 사들인 것이다. TOB 규모는 2100억엔(약 1조9000억원)에 달한다. 두 기업 인수에만 우리 돈으로 4조원 이상을 쓴 셈이다.
특히 기린은 화장품, 건강보조식품, 노화방지제품 등을 통해 중국, 동남아시아, 호주·뉴질랜드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건강 사업이 그룹의 성장축이 되면서 기린은 2035년까지 음료 부문도 헬스사이언스 영역으로 통합하기로 했다. 기린이 자체 개발한 '플라스마 유산균'을 활용한 기능성 음료 매출이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음료의 주력을 '건강'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기린의 자회사인 기린베버리즈의 건강음료 부문 매출은 2024년 379억엔(약 3600억원)에서 지난해 420억엔(약 3970억원)으로 10.9% 증가했다. 올해는 487억엔(약 4600억원)까지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기린이 건강 사업을 확장할 수 있었던 핵심 이유가 맥주라는 기반 때문이라는 점이다. 맥주는 기본적으로 효모가 당을 분해하면서 만드는 발효 산업이다. 이를 위해 기린은 효모 배양, 미생물 제어, 온도·산소 관리, 발효 최적화, 대량 배양 기술 등을 축적해왔다.
건강 기업으로의 변신 분위기에서 기린은 술 대신 음료를 앞세워 한국 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기린은 한국 시장을 단순히 일본 제품 소비처가 아니라 새로운 식음료 트렌드가 빠르게 형성되는 실험장으로 보고 있다. 커피 일변도였던 한국 음료 시장에서 최근 녹차나 밀크티 수요가 빠르게 늘자 '오후의 홍차'를 앞세워 다시 한번 틈새 공략에 나선 것이다.
1986년 출시된 오후의 홍차는 40년간 일본 티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아왔다. 기린은 단순한 제품 판매보다 브랜드 경험 자체를 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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