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1.05 07:56
‘사랑의 우유’ 등 시행 10% 안 돼 제도 확장을
유업계 급식·군납 소비 줄어 대안으로 부상
예산 늘리고 이원화된 집행 부처간 협력 필요
대한민국이 전례 없는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가운데 ‘노인 우유 급식’이 노인 복지 증진과 위기에 처한 낙농산업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영유아 및 학령인구 감소로 기존 우유 소비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급증하는 노년층이 새로운 소비 주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노년기는 신체 기능 저하와 식욕 감퇴 등으로 인해 단백질, 칼슘 등 필수 영양소 섭취가 부족하기 쉬운 시기다. 특히 65세 이상에서 단백질·칼슘 섭취 부족으로 근감소·골다공증·낙상 위험이 커지면서, 노년층에 매일 우유 1잔을 제공하는 것이 현실적인 예방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노인 우유 급식은 건강 증진을 넘어 ‘사회 안전망’으로서의 가치도 주목받고 있다. 현재 노인 우유 급식은 중앙정부의 전국 단위 ‘공식 급식’보다는 지자체 복지사업과 민간·기업 후원 형태의 우유·유제품 지원, 안부 확인 서비스로 운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복지서비스로 ‘사랑의 우유’ ‘혼자 사는 어르신 건강음료 지원’ 같은 사업이 운영되며, 기초생활수급·차상위·저소득 홀몸 어르신에게 우유·음료를 정기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의 ‘어르신 우유배달’ 사업, 전북의 ‘노인 우유 급식 지원 조례’ 등이 대표 사례로, 독거노인 및 취약계층에 매주 일정량의 우유가 공급된다.
하지만 전국 시행률은 10%도 채 되지 않아 제도적 확장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일본, 호주, 영국 등이 국가 차원에서 노인 우유 및 유제품 무료 지원 사업을 꾸준히 운영하며, 노인 영양 관리 기준까지 만들어 제도를 정착시켜왔다.
민간 차원의 노력도 활발하다. 사단법인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은 2003년 100가구에서 시작해 현재 전국 69~71개 지자체, 약 6000여 독거노인 가구에 우유를 배달하는 대표 비영리 공익사업이다. 배달된 우유가 문 앞에 쌓여 있을 경우 배달원이 즉시 관공서나 가족에게 알림으로써 고독사를 예방하는 등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우유안부’ 캠페인은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낙농업계와 유업계 입장에서 노인 우유 급식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내년으로 예정된 FTA 관세 철폐로 수입산 유제품과의 무한 경쟁이 예고된 상황에서, 낙농 기반 위축을 막기 위해서는 학교 급식을 대체할 새로운 대규모 소비처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학교 우유 급식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군납 실적 또한 반토막이 났다. 한국유가공협회 관계자는 “학교와 군 급식 물량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며 낙농가와 유업계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여성 노인의 골다공증 예방과 노년층의 단백질 공급을 위해 우유가 필수적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공감하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필요성에 발맞춰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노인 우유 급식 제도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최근 낙농업계는 전국의 경로당에 우유 급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며, 농림축산식품부 또한 이러한 제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보건복지부가 추진 중인 ‘경로당 주 5일 급식’ 확대 정책에 우유 급식을 결합하는 방안이 가장 효율적인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구체적인 소요 예산도 충분히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 2025년 학교 우유 급식 일반 단가인 개당 530원을 기준으로 전국 5만 8000여 개 경로당(평균 20명 이용)에 주 1회 우유를 제공할 경우, 연간 약 320억 원(530원×20명×5만8000개소×52주≈319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올해 학교 우유 급식 예산이 삭감되는 등 학교 급식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어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경로당 우유 급식 예상 소요액은 작년 학교우유급식사업 예산(2025년 기준 약 656억 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예산 효율성 측면에서도 설득력이 높다는 평가다.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노인 우유 급식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확대, 확실한 예산 편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전국적 표준 급식 프로그램 마련, 고령자에게 맞춤형 우유 선택권 확대, 신청·수거·관리 프로세스 효율화 등도 요구된다. 노인복지기관·지역사회와 낙농업계가 협업해 배달·상담 서비스, 건강 모니터링 등을 병행하면 실질적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아울러 지역사회 자원봉사와 연계하면 노인 고립 문제 해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예산과 주무 부처의 이원화 문제다. 유가공협회 관계자는 “학교 우유 급식은 농식품부 예산으로 진행되지만, 노인 복지관이나 경로당 급식은 행정안전부나 보건복지부 소관이라 예산 편성과 집행 주체를 조율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최근 농식품부와의 회의에서도 이러한 문제를 논의하며 시범 사업 등의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지원 사업이나 예산안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라며 “우유자조금 등을 활용해 복지관과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범부처 차원의 협력과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한국 성인의 상당수가 겪고 있는 ‘유당불내증(우유 소화 장애)’도 걸림돌로 지적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당을 제거한 ‘락토프리 우유’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비록 일반 우유보다 단가가 높지만, 노인들의 소화 흡수를 돕고 섭취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고려 사항이다.
결국 노인 우유 급식은 단순한 먹거리 지원을 넘어 초고령사회 노인들의 건강과 고립 문제를 해결하고, 붕괴 위기의 낙농산업을 지탱하는 ‘상생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예산 편성, 지자체의 행정적 지원, 그리고 낙농업계의 맞춤형 제품 개발 노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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