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 승인 2025.12.22 07:56
저가 멸균우유 식탁 점령 위기감…‘빅3’ 전열 정비
서울우유 ‘프리미엄’으로 승부…디저트로 확장
매일유업, 제품 다각화…건강·영양으로 전선 넓혀
남양유업, 선택과 집중…수익성 중심 내실 다져
구조적 가격 열세…생산비 절감·정부 지원 절실
2026년 대한민국 우유 시장의 빗장이 풀린다. 미국산 우유에 대한 관세가 0%로 완전히 철폐되고, 유럽산 우유 관세 역시 단계적으로 사라진다. 리터당 1000원대 초반의 저가 수입 멸균우유가 안방 식탁을 점령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국내 유업체 ‘빅3(서울우유·매일유업·남양유업)’가 각기 다른 생존 방정식을 내놓으며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이들의 전략은 △품질 정면승부(서울우유) △사업 다각화(매일유업) △수익성 중심 체질개선(남양유업)으로 요약된다.

업계 1위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우유의 본질’에 집중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유통기한이 긴 대신 신선함이 떨어지는 수입 멸균우유의 약점을 파고들어 국산 우유만이 가질 수 있는 압도적인 ‘신선도’와 ‘품질’을 무기로 내세웠다. 협동조합 특성상 국산 원유 소비를 방어해야 하는 서울우유는 수입산 저가 공세에 ‘프리미엄’이라는 견고한 장벽을 쳐 대응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A2+ 우유’가 있다. 서울우유가 국산 우유 소비 증진을 위해 지난 5년간 약 80억 원을 과감히 투자해 내놓은 이 제품은 출시 1년 6개월여 만에 누적 판매량 8250만 개를 돌파하며 시장 판도를 흔들었다. 체세포수 1등급·세균수 1A등급이라는 최상급 원유 스펙에 세균과 미생물을 한 번 더 제거하는 ‘EFL 공법’까지 적용해 “수입산은 흉내 낼 수 없는 신선함”을 구현했다는 평가다. 서울우유는 최근 멸균 제품을 추가한 데 이어 시니어 전용 제품 등으로 라인업을 세분화해 ‘A2 우유 대중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우유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양주 신공장에 스마트 생산 시스템을 도입해 제조 과정을 혁신했다. 착유부터 생산, 배송까지 이어지는 ‘콜드체인 시스템’을 더욱 강화해 목장의 신선함을 식탁까지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의지다.
단순한 품질 경쟁을 넘어 ‘가치소비’와 ‘디저트’ 시장으로 전선도 넓혔다. 최근 출시한 ‘저탄소인증우유’는 온실가스 배출을 10% 이상 감축한 목장의 원유만을 사용해 친환경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했다. 또한 영국 왕실 전용으로 불리는 고품질 ‘저지우유(Jersey Milk)’를 83%나 함유한 ‘저지밀크푸딩’을 선보이는 등 프리미엄 디저트 시장까지 공략하며 수입산 저가 공세에 맞서 견고한 장벽을 쌓고 있다.
매일유업은 위기의 흰 우유 시장에서 한 발 물러나 더 넓은 ‘건강·영양(Wellness)’ 시장으로 전선을 확대했다. 출산율 저하로 우유 주 소비층인 영유아가 급감하자 성인과 노년층, 그리고 특수 체질 소비자로 눈을 돌려 새로운 성장판을 열었다.
핵심 무기는 ‘다각화’다. 매일유업은 유당불내증 소비자를 위한 ‘소화가 잘되는 우유’로 락토프리 시장을 선점한 데 이어, 성인 영양식 브랜드 ‘셀렉스’를 론칭해 단백질 시장의 절대 강자로 자리 잡았다. 단순한 우유 회사가 아니라 ‘전 생애주기 영양을 책임지는 헬스케어 기업’으로 정체성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최근에는 ‘식물성 음료’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아몬드브리즈’ ‘어메이징 오트’ 등을 통해 비건 트렌드와 환경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2030 젊은 층까지 흡수했다. 이러한 포트폴리오 확장은 우유 원유 의존도를 낮춰 관세 철폐로 인한 흰 우유 시장의 타격을 최소화하는 완충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주인이 한앤컴퍼니로 바뀐 남양유업은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과거의 외형 성장 경쟁에서 벗어나, 수익성 중심의 내실 다지기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남양유업의 전략은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수익성이 낮은 품목은 과감히 구조조정하고, 이익률이 높은 가공유와 고기능성 음료에 마케팅 역량을 쏟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단백질 음료 ‘테이크핏’이다. 이 제품은 후발주자임에도 편의점 매출 1위를 기록하며 남양유업의 새로운 캐시카우로 부상했다. 또한 스테디셀러인 ‘초코에몽’을 필두로 가공유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알짜 사업인 디저트 브랜드 ‘백미당’을 별도 법인으로 분리한 것은 경영 효율화의 상징적인 조치다. 독자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동시에 매각 가능성까지 열어두며 유연성을 확보했다. 이와 함께 대대적인 비용 절감을 단행한 남양유업은 최근 5년 만에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무리한 점유율 방어보다는 확실한 수익원을 확보해 다가올 위기에 버틸 기초체력을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개별 기업의 생존 전략 못지않게 국내 낙농 산업 기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유업계 관계자는 “2026년 관세 철폐는 단순히 특정 기업의 매출 감소 문제를 넘어 국내 낙농 산업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는 생존의 문제”라며 우려를 표했다.
이어 그는 “서울우유의 품질 고급화나 매일·남양의 사업 다각화는 기업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책이지만 구조적인 가격 경쟁력 열세를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며 “수입산 멸균유가 대체할 수 없는 ‘신선한 국산 원유’의 가치를 소비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돕고, 식량 안보 차원에서 국산 원유 자급률을 방어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생산비 절감 대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원유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개선을 이미 시행 중이라는 입장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3년부터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해 생산비뿐만 아니라 시장의 수급 상황까지 고려해 가격을 결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생산비만 따졌으나 이제는 생산비가 올라도 원유 사용량이 줄어들면 가격 인하가 가능한 구조로 개편해 시장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해명이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도 거세다. 제도는 개선됐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가격에 수요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음용유용 원유 사용량은 2022년(-1.6%)부터 2023년(-2.1%), 2024년(-3.1%)에 이어 올해(-3.0%)까지 매년 줄었음에도 원유값은 11년간 거의 매년 올랐다. 현행 구조상 가격 인하가 적용되려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소비 감소가 발생해야 해 사실상 생산비 연동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한국의 우유 가격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으로 시장 원리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미국·일본과 달리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2026년 우유 전쟁의 서막이 올랐다. 가성비를 앞세운 수입산의 파상공세 속에서 국산 우유의 설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서울우유의 ‘품질’, 매일유업의 ‘혁신’, 남양유업의 ‘효율’ 중 어떤 생존 전략이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최후의 승자가 될지 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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