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형 전문위원
- 승인 2025.08.19 07:44
규제 충족…소비자 혼동 막고 우리말 명칭 내세워
‘Mandu’ 단독상표 등록 안 해…한국 업체 사용 가능
떡볶이 변형 ‘요뽁기’ 발음 장벽 낮추고 등록 가능성 높아
‘Buldak’ 매운 라면 이미지…라면 시장 세그먼트 점령
새로운 제품군 형성 전 전체 지칭하는 명칭 선점 기법

CJ의 비비고 만두가 미국 냉동식품 시장 1위를 차지했다는 뉴스는 이제 익숙하다. 하지만 언론이 놓치는 중요한 지점이 있다. 왜 하필 'Mandu'라는 한국어 단어를 미국 식품 라벨 정면에 당당히 쓸 수 있었을까. 이는 단순한 마케팅의 승리가 아니라, 미국 식품 명칭 규제에 대한 정교한 이해와 '네이밍 선점 전략'이 맞물린 결과다.
미국 식품표시법(21 CFR Part 101)은 모든 식품에 정체성 명칭(Statement of Identity)을 요구한다. 이 명칭은 세 가지 형태 중 하나여야 한다. 첫째, 연방 표준 명칭(Standard of Identity)으로 '마요네즈'처럼 21 CFR §169.140에서 성분 비율까지 규정하는 경우다. 둘째, 업계에서 통용되는 일반 명칭(common or usual name)으로 'potato chips'처럼 표준은 없지만 소비자가 보편적으로 인식하는 명칭이다. 셋째, 위 두 가지가 없을 때 사용하는 설명형 명칭(descriptive name)으로, 제품의 특성을 정확히 묘사해야 한다.
'만두'는 미국에 표준 명칭이 없다. 가장 유사한 'dumpling'이 있지만, 미국인이 떠올리는 덤플링은 주로 수프에 들어가는 밀가루 반죽 덩어리나 애플 덤플링 같은 디저트를 의미한다. 한국식 만두와는 속재료, 형태, 조리법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 바로 이 틈이 외국어 명칭 사용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다만 21 CFR §101.15(c)는 외국어 명칭을 사용할 경우 반드시 영어 설명을 병기하도록 규정한다. 그래서 'Bibigo Mandu' 아래에는 'Korean Style Dumplings'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Korean Dumplings'가 아닌 'Korean Style Dumplings'라고 표기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기존 덤플링과는 다른 스타일임을 명확히 하여, 소비자 혼동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는 동시에 규제 당국의 이의제기 여지를 최소화한 전략적 선택이다. 이는 규제를 완벽히 충족하는 구조로, 소비자 혼동을 방지하면서도 한국어 명칭을 전면에 내세울 수 있게 해준다.
상표법 관점에서 CJ의 접근법은 더욱 정교하다. 현재 미국특허상표청에 등록된 'BIBIGO MANDU'는 결합상표로 등록되어 있지만, 'MANDU' 단독 상표는 등록하지 않았다. 만약 'MANDU' 단독 상표를 등록했다면 다른 한국 업체들의 사용을 제한할 수 있겠지만, 동시에 'mandu'라는 용어 자체의 일반명칭화를 방해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상표법에서는 등록상표가 일반 명칭이 되면 상표권이 소멸하는 일반명칭화(genericide) 원칙이 있다. '아스피린', '에스컬레이터' 등이 대표적 사례다.
네이밍 선점 전략은 새로운 제품군이 형성되기 전에 그 이름을 시장에 심어, 시간이 지나 해당 단어가 제품군 전체를 지칭하도록 만드는 고도의 브랜딩 기법이다. 국내에는 이미 검증된 사례들이 있다. '미원'은 한 기업의 MSG 조미료였지만, 한때 모든 조미료의 대명사가 됐다. '콜라'는 코카콜라의 줄임말이었지만, 오늘날 펩시도 콜라라 부른다. '초코파이'는 오리온만의 이름이었으나, 지금은 다양한 제조사의 유사 제품이 초코파이로 팔린다. 법적으로는 상표 독점이 어려워져도, 소비자 인식 속 '원조' 이미지는 시장 지배력의 핵심 자산으로 남는다.
미국 시장에서 이 전략은 특히 가치가 크다. 새로운 음식 카테고리를 만드는 선도 브랜드가 용어를 선점하면, 후발 경쟁사들도 그 용어를 따라 쓰게 되고, 소비자는 무의식적으로 그 단어와 원조 브랜드를 연결한다.
'요뽁기'는 또 다른 유형의 성공 사례다. '떡볶이'라는 단어 대신 귀여운 변형어를 만들어 상표 등록 가능성을 높였고, 발음 장벽을 낮췄다. 미국 FDA 규정상 'tteokbokki'라는 표준 명칭이 없으니, 'Yopokki – Korean Spicy Rice Cake'처럼 쓰면 된다. 떡볶이가 미국에서 대중화되기 전에 용어를 브랜드화해 시장의 언어를 선점한 셈이다.
'불닭볶음면'은 또 다른 접근법을 보여준다. '불닭'(매운 닭)과 '볶음면'(볶은 라면)을 합쳐 제품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이름이지만, 삼양이 해외에서 '매운 라면=Buldak'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동남아, 미국,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Fire Noodle'보다 'Buldak'이라는 한국어가 더 강렬하게 각인돼 있다. 이미 형성된 라면 시장에서 '매운' 세그먼트를 점령한 사례다. 다만 '불닭'은 설명적 성격이 강해 시간이 지나면 일반명칭화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Samyang Buldak'처럼 결합 브랜드 형태로 유지하는 것이 상표 보호 측면에서 유리하다.
세 가지 사례를 비교하면, 만두와 요뽁기는 시장 형성 전·초기에 진입해 용어 자체를 새로 심는 전략이고, 불닭볶음면은 이미 존재하는 카테고리에서 특정 세그먼트를 점령한 전략이다. 공통점은 규제 틀 안에서 외국어 명칭을 소비자 인식에 고착시키고, 그 단어를 해당 제품군의 상징으로 만드는 데 있다.
이 전략은 다른 한식에도 충분히 적용 가능하다. 떡볶이, 짜장면, 김밥처럼 미국 표준 명칭이 없는 경우, 외국어 명칭을 브랜드와 결합해 시장에 진입하고, 문화 마케팅을 통해 인식을 고착시키면 된다. 핵심은 초기에 '외국어 명칭+설명형 영어' 조합으로 규제를 충족시키면서, 지속적인 마케팅을 통해 해당 명칭을 브랜드 이미지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초기에는 규제를 준수하기 위해 영어 설명을 병기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소비자 인식 속에서 외국어 명칭 자체가 카테고리 이름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 시장에서 네이밍 선점 전략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다. 초기에 네이밍과 라벨링을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수십 년간의 시장 지배력을 좌우한다. 이를 위해서는 규제 준수와 시장 확장을 동시에 고려하는 정교한 전략이 필요하다. 언어를 설계하고, 문화 코드 속에 우리 음식 이름을 각인시키는 일이다. 소비자가 그 단어를 쓰는 순간, 이미 그 브랜드를 떠올리게 된다.
Mandu, Yopokki, Buldak 모두 다른 길을 걸었지만, 목적지는 같다. 시장의 언어를 선점한 자가, 시장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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