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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종말? 고기 없는 육식의 시작…미래 인류의 단백질원 대체육

곡산 2020. 5. 20. 08:34

육식의 종말? 고기 없는 육식의 시작…미래 인류의 단백질원 대체육

콩과 밀 등 식물성 대체고기 급성장…세포배양육 상용화 앞둬
환경파괴와 자원낭비, 식량난 등 해결 기대
코로나 19로 인한 식량안보, 건강, 식품 안전 이슈에서 더 각광 전망
맛 향상·안전성 논란·축산업과 갈등 등 넘어야할 산도

  • 이호승,심희진,강민호 기자
  • 입력 : 2020.05.18 16:07:05 수정 : 2020.05.19 09:22:15


네덜란드 식물성 대체육 기업 ‘베지테리언 부처’의 창업자인 얍 코르테베흐. [사진제공 = 베지테리언 부처]

지난 2월 초 스탠포드 대학이 있는 미 팔로알토 `왈버거스` 매장.

여러 메뉴 가운데 식물성 패티(고기)로 만든 `임파서블 버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을 찾았다. 일반 쇠고기 버거 제품과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봤지만 둘 중 어느 것이 진짜 고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테이블 담당 서버인 니콜 씨는 "임파서블 버거는 스페셜티 메뉴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며 "채식주의자들 뿐 아니라 환경이나 건강을 중시하는 일반 소비자들도 종종 즐긴다"고 설명했다. 한달에 두세번 이곳에 들른다는 엘리사 씨는 "예전과 달리 식물성 고기 특유의 냄새가 안나 먹는데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사회·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육식의 종말(Beyond Beef)`에서 축산업이 가져오는 생태계·환경 파괴, 자원낭비와 비효율, 동물복지, 각종 성인병 등 건강문제 등이 심각해지면서 인류는 육식을 중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의 주장대로 `전통적` 육식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을지 모르지만, 한편에선 생명공학과 첨단 기술에 바탕한 `고기 없는` 새로운 육식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콩, 완두, 밀, 호박, 코코넛, 견과류 등 식물성 재료를 사용한 고기, 실험실에서 배양한 배양육 등이 실제 고기와 유사한 맛을 내는 단계까지 진입하면서 육류 시장을 장악해 가고 있다.

최근 코로나 19로 국가간, 국가내 이동이 제한되면서 식량안보가 이슈로 대두되고 있고, 건강과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도 커지면서 대체 단백질 기술은 더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내 대체육 소비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네덜란드 식물성 대체육 기업 ‘라이벌푸즈’의 식물성 생선. [사진제공 = 라이벌푸즈]

◆식물성 대체육이 대세=푸드테크의 다양한 영역 중 최근 가장 `핫`한 분야는 대체식품, 그중에서도 대체육이다. 소, 돼지, 닭 등 축산업에 기반한 동물성 단백질을 대체할 식품은 최근 푸드테크 기업들이 가장 치열한 기술개발 경쟁이 벌이고 있는 무대다.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식물성 고기다. 식물성 대체육 대표 스타트업인 미국 기업 `비욘드 미트`와 `임파서블 푸즈`는 이미 대규모 투자유치와 핵심 기술 개발에 이어 나스닥시장에 상장(비욘드 미트)하면서 시가총액만 수조원대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임파서블푸즈는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진짜 같은 식물성 돼지고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임파서블푸즈는 콩의 뿌리혹에서 식물성 유기철분 `힘(heme)`을 추출해 실제 고기의 피와 같은 육즙과 향, 맛을 그대로 구현해내는 핵심 기술을 개발해 냈다.

네슬레, 켈로그, 타이슨푸드, 카길 등 글로벌 식품제조기업과 맥도날드, 버거킹, 스타벅스 등 외식기업들도 대체육 투자를 앞다퉈 늘리거나 대체육 기업들과 손을 잡고 신제품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크리스 존슨 네슬레 부사장은 "지속가능성은 네슬레 비즈니스의 핵심"이라며 "지속 불가능한 동물성 단백질에서 식물성 단백질로 전환하기 위해 대체육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네덜란드 스타트업 기업 `라이벌 푸즈`는 콩과 밀, 해바라기씨 등을 활용해 `육·해·공`의 인공 고기를 모두 만들어낸다. 식물성 대체육 대부분이 햄버거 패티처럼 다진 고기 형태라면 이 회사의 제품은 실제 고기·생선 덩어리와 유사한 형태와 두께, 조직과 질감, 육즙 등이 특징이다. 버힛 데커 CEO는 "실제 요리재료와 흡사하기 때문에 유명 레스토랑 셰프 등과 협업해 다양한 요리 레시피를 개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하반기부턴 상업화에 본격 시동을 걸 계획이다.

현장에서 본 시제품은 커다른 물고기의 살코기를 덩어리째 잘라놓은 모양새였다. 조직과 결이 실제 생선과 비슷했으며, 맛이나 식감은 캔 참치와 흡사했다. 요리해서 내놓는다면 진짜 생선과 구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라이벌 푸즈의 기술력의 핵심은 `전단 세포 기술(Shear cell technology)`로 불리는 신기술이다. 전단열(강한 응력을 받았을 때 열의 형태로 변화하는 것)를 이용해 단백질을 특정한 방향으로 변형하고 정렬하는 기술로, 실제 육류·생선과 유사한 질감과 조직을 만들어낸다.

판철호 KIST 천연물인포매틱스연구센터장은 이 기술에 대해 "단백질을 고온으로 끈적이게 만든 뒤 한 방향으로 회전시켜 특정한 배열을 만들어주는 기술로, 식물성 단백질을 동물성 단백질처럼 느끼도록 식감을 조절해주는 신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술은 네덜란드 식품클러스터 `푸드밸리`의 중심이자 세계 농업대학 순위 1위인 바헤닝언 대학이 개발해 사업화로까지 이어진 사례다. 데커 대표 역시 2014년부터 바헤닝언 대학에서 이 기술을 연구해왔다.


네덜란드 대체육 기업 베지테리언 부처의 식물성 햄버거. [사진제공=베지테리언 부처]

네덜란드 스타트업 `베지테리언 부처`는 햄버거 패티, 치킨, 참치, 베이컨 등 `진짜 같은` 식물성 고기를 생산한다. 창업자인 얍 코르테베흐는 9대째 농사를 지어오던 집안 출신이다. 1998년 돼지열병으로 폐사한 돼지 수만 마리를 보고 충격을 받고 이후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타고난 `육식 애호가`였던지라 고기에 대한 갈망을 끊기가 힘들었다. `육식을 하지 않으면서 육식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고기를 만들자`는 결심이 2010년 베지테리언 부처 창업으로까지 이어졌다. 베지테리언 부처는 2018년 글로벌 식품·생활용품 기업인 유니레버에 인수돼 사세를 확장 중이며, 최근엔 버거킹과 협업해 `레벨 와퍼(Rebel Whopper)` 메뉴를 개발, 유럽 내 20여개국 2400개 매장에서 판매한다.

푸드밸리에 있는 스타트업 `오야`는 닭고기에 이어 최근엔 세계 최초로 완두콩을 원료로 한 립(돼지갈비)을 개발해냈고 역시 푸드밸리 멤버인 `노피시` 역시 식물성 생선을 개발해 스틱, 버거, 너겟 등을 내놓는다.

◆`실험실 고기`도 관심=세포배양육은 `클린 미트`라고도 불린다. 동물 학대나 환경 파괴 등의 부담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실험실에서 키워진 `실제 고기`다. 현재는 생산단가가 문제지만 기술 발전이 이뤄지며 가격이 내려가면 실제 고기는 물론 식물성 고기와도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13년 세계 최초로 세포배양육 개발에 성공한 네덜란드 기업 `모사미트`는 3~4년내 소규모로 시장에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가축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소 태아 혈청으로 증식해 햄버거 패티 형태의 고기로 배양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 고기보다 토지 사용은 99%, 물 사용은 96% 감소시킬 수 있어 환경 오염과 자원 낭비가 거의 없다는게 모사미트측 설명이다.

베키 칼더 플린 모사미트 운영 담당자는 "유전자 조작 없이 지방 세포는 줄이고 불포화 지방 함유는 늘리는 등 실제 고기보다 더 건강에 이로운 제품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스테이크처럼 현재 제품보다 더 크고 복잡한 3D 조직 구조 제품을 개발하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첫 개발 단계에서 세포배양육 버거 패티는 한 장에 25만유로(약 3억2300만원)에 달했지만 모사미트 측은 기술 혁신과 대량생산이 가능해지면 9유로(약 1만1600원)대에 판매가 가능해질 것으로 내다본다. 2030년 이후엔 개당 1유로(1293원), 궁극적으로는 일반 고기보다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기업 `멤피스 미트`는 2016년 세포배양육 미트볼을 개발했다. 네덜란드의 스타트업 `미터블`, 이스라엘의 스타트업 `알레프팜스`, `퓨처 미트` 등도 배양육을 개발 중이다.

◆앞으론 대체육을 더 많이 소비?= AT커니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까지 식물성 고기는 전체 육류 시장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할 전망이다. 보고서는 세포배양육이 상업화되면서 대체육 시장은 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40년까지 세포배양육과 식물성 대체육이 고기 소비량의 6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UBS 역시 2018년부터 2030년 사이 식물성 육류 시장은 46억달러에서 85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으며, 바클레이즈는 2029년에는 대체육이 전체 육류 시장의 10%(1400억달러)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해 대체육의 성장 전망에 의견을 같이 했다. 시장조사 업체 마케츠 앤드 마케츠 역시 현재 121억달러(약 14조8000억 원)에서 2025년에는 279억달러(약 34조2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대체육의 수요는 코로나19를 계기로 한층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안병익 한국푸드테크협회장은 "대체육은 채식주의자는 물론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를 타깃으로 한다"며 "국내에선 아직 시장이 크지 않지만 기술발전으로 맛이 더 향상되고 가격이 더 내려간다면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수요가 증가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 = 이호승(네덜란드·핀란드) 기자 / 심희진(미국) 기자 / 강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