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 창업 트렌드] (1) 가성비로 승부하라-“가격 인상은 자폭”…객단가 높여 수익 내야 고가 전략 쓰던 대형 커피·팥빙수전문점, 저가 커피·주스에 밀려 고전 | |
기사입력 2017.01.09 14:27:40 | 최종수정 2017.01.09 15:07:12 |
불황이 지속되면서 자영업자들 어깨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영업 현황 분석’에 따르면, 자영업자 2명 중 1명 이상(51.8%)은 연매출이 4600만원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매출 1200만원 미만도 21.2%에 달한다. 물론 세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자영업자들이 소득을 축소 신고하는 관행은 감안해야 한다. 그럼에도 최근 자영업 경기는 눈에 띄게 안 좋은 게 사실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2014년을 기점으로 소비자들의 지갑이 굳게 닫히기 시작했다고 본다. 2%대 저성장과 세월호·메르스 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1인 가구 증가도 외식업계에는 악재에 가깝다. 가족(3~4인) 단위의 외식 대신 배달, 포장, 편의점 도시락 등의 간편식이 인기를 얻으며 식당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줄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저성장, 1인 가구 증가 등의 메가트렌드는 지속될 전망인 만큼, 불황기에 알맞은 창업 전략이 필요하다.
2014년부터 가성비 트렌드가 심화되면서 1000~2000원대 중저가 커피나 주스 브랜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은 ‘이디야’(위)와 ‘쥬씨’ 매장. <매경DB> | ||
▶저가 커피·주스로 업계 재편
▷잊을만 하면 떠오르는 ‘쥬씨 같은 사람’
프랜차이즈의 점포 수 변천을 보면 소비 트렌드 변화가 읽힌다. 커피, 디저트, 패스트푸드 등 주요 외식 업종에선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운 브랜드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추세다.
먼저 커피전문점 시장을 보자. 2010년께만 해도 ‘창업 1순위’는 단연 대형 커피전문점이었다. 2010년에만 425개 점포를 늘린 카페베네를 필두로 엔제리너스, 할리스, 파스쿠찌, 투썸플레이스 등이 2010년대 초반을 풍미했다. 창업 비용이 5억원을 훌쩍 넘고, 아메리카노 가격이 4000원대인데도 창업 대기자와 고객이 줄을 섰다. 이들 브랜드가 2010~2013년에 순증한 점포 수를 더하면 2500여개에 육박한다. ‘바퀴베네(바퀴벌레가 번식하듯 빠르게 늘어난다는 뜻)’ ‘카페베네 같은 사람(어딜 가도 눈에 띄는 카페베네처럼 헤어졌지만 잊을 만하면 계속 생각나는 사람)’이란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그러나 2014년을 기점으로 대형 커피전문점의 인기는 급격히 시든다. 2000원대 아메리카노를 앞세운 중저가 커피전문점이 각광받았기 때문이다.
이디야가 대표적인 예다. 이디야는 2010~2013년 동안 평균 160개 점포를 늘렸을 뿐이다. 그런데 2014년 들어 376개나 순증하며 급성장한다. 2014~2016년 3년간 이디야의 순증한 점포 수는 약 1000개에 달한다. 2015년에는 한술 더 떠 1000원대 초저가 커피전문점의 시대가 열렸다. 빽다방이 2015년에만 400여개의 점포를 늘렸다. 반면 대형 커피전문점은 침체일로였다. 카페베네와 엔제리너스는 2016년에 점포가 순감하거나 정체됐다. 특히 2010~2013년에 출점이 많았던 이들은 점포 임대차 계약과 가맹 계약 기간 3~5년이 끝나는 시기와 맞물리며 2017~2018년에도 줄폐점이 이어질 것이란 게 업계 관측이다.
디저트 시장도 가성비로 웃고 울었다. 1000원대 저가 주스를 내세운 쥬씨, 쥬스식스는 지난해에만 점포가 800개, 200개가량 순증하며 급성장했다. 이제는 카페베네 대신 ‘쥬씨 같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유탄을 맞은 건 4000~5000원대 생과일주스를 팔던 커피전문점과 주스전문점, 그리고 기본 메뉴가 1만원 안팎에 달하는 팥빙수전문점이다.
설빙, 옥루몽은 한때 점포가 각각 500개, 70개에 육박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가격이 최대 10분의 1에 불과한 저가주스가 대체재로 떠오르며 가맹점 매출이 급감했다. 각 50여개씩 점포가 순감했고, 옥루몽은 아예 가맹본사가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빙수업계 비수기인 이번 겨울이 지나면 폐점 속도는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스무디킹, 망고식스도 가격 경쟁력에 밀려 고전 중이다. 점포를 2개 이상 운영하는 다점포 비중이 2014년에는 15.4%, 5.6%였으나 2015년에는 8.7%, 0%로 줄었고, 2016년에는 아예 자료 공개를 거부했다. 망고식스 관계자는 “저가주스로 트렌드가 바뀌면서 가맹점 매출이 급감했다. 원하는 점주에 한해 1000원대 저가주스를 파는 ‘망고식스미니’를 숍인숍 형태로 추가하며 대응하고 있다. 또 조만간 망고 전문 브랜드로 리뉴얼해 전문성을 강조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패스트푸드도 가성비 전쟁 중
▷버거킹 할인 공세에 롯데리아 역성장
패스트푸드도 사정은 비슷하다. 패스트푸드 업계 ‘빅3’인 롯데리아, 맥도날드, 버거킹은 그간 서로 다른 가격 전략으로 저마다의 시장을 구축해왔다. 롯데리아는 햄버거가 2000원대(단품 기준)로 가성비를, 버거킹은 5000원대로 고급화를 추구했다. 맥도날드는 그 가운데에서 ‘중용’의 선택지를 제공했다. 이렇게 시장이 다른 덕분에 업계에선 “같은 상권에서 세 브랜드가 바로 붙어서 영업을 해도 모두 장사가 된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2015년께부터 이런 공식이 깨졌다. 외식업계에도 가성비 열풍이 불어닥치자 상대적으로 고가 전략을 펼치던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각종 할인쿠폰을 뿌리며 가격 경쟁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버거킹은 햄버거 세트를 거의 반값에 팔기 시작했고, 파파이스도 통신사 VIP 고객에게 세트 메뉴를 월 2회 무료로 제공하며 저가 마케팅에 동참했다.
‘햄버거를 제값 주고 사 먹으면 바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경쟁이 심화되면서 타격을 입은 건 롯데리아다. 롯데리아는 2015년 국내 매출과 영업이익이 9061억원, 134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각각 2.7%, 67.8% 줄었다. 웰빙 열풍으로 패스트푸드 업계가 힘들었던 2006년 이후 처음 겪은 실적 감소다. 반면 버거킹코리아는 매출이 2013년 2123억원, 2014년 2526억원, 2015년 3000억원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매출은 가격×판매량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요즘 같은 불경기에 가격을 올리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다. 가성비 트렌드가 나타나면서 맥도날드와 버거킹도 가격을 동결하거나 낮추며 고급화 대신 박리다매 전략으로 선회했다”며 “이들이 롯데리아와 비슷한 가격에 팔자 가성비를 차별화 요소로 내세운 롯데리아의 강점이 사라졌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였던 셈”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수제버거도 가성비를 앞세워 제2전성기를 맞고 있다. 수제버거 시장은 2010년대 초반 크라제버거, 모스버거 등이 ‘고급 웰빙 햄버거’로 도전했지만 당시에는 재미를 못 봤다. 패스트푸드 빅3보다 2배가량 비싼 가격이 패인이었다. 하지만 맘스터치, 토니버거 등 2세대 수제버거는 3000원대 햄버거(단품 기준)를 들고나왔다. 일반 햄버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맘스터치는 최근 1000개점을 돌파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가성비 트렌드가 지속될 것으로 본다. 단 점주의 수익성 확보를 위해 객단가를 높이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강병오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 글로벌프랜차이즈학과장은 “가성비 트렌드는 2017년에도 계속되겠지만 양상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너도나도 저가 경쟁에 뛰어들면서 점주 수익률이 점점 하락하는 추세기 때문”이라며 “저가 아이템을 미끼로 고객을 모은 뒤 객단가를 높일 수 있는 서브 메뉴 개발이 절실하다. 가령 1000원대 저가 커피·주스는 함께 먹을 수 있는 디저트 메뉴로 객단가 인상을 시도해볼 만하다”고 강조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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