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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dustry 제 920호 (2013년 07월 15일)
[비즈니스 포커스] 식품 업계 숨은 강자 오뚜기의 ‘이기는 습관’
뛰어난 지배력 구축…포트폴리오‘ 짱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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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뚜기는 식품 업계의 숨은 강자다. 당장 규모면에서 CJ제일제당·대상에 이은 3위다. 그 뒤를 동원F&B와 롯데삼강이 따르고 있다. ‘빅5’ 식품 기업 중 순수 식품 기업은 오뚜기뿐이다. CJ제일제당은 CJ그룹, 대상은 대상그룹, 동원F&B는 동원그룹, 롯데삼강은 롯데그룹의 계열사다. 한마디로 백그라운드가 막강하다.
더구나 식품 업계는 정글이나 다름없다. 광고나 판촉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인수·합병(M&A)도 잦다. 이름깨나 알려진 중소 식품 업체들은 대부분이 식품 대기업들에 M&A됐다. 이렇게 험한 시장에서 오뚜기는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국내외 대기업들의 공세를 물리치고 부동의 아성을 쌓았다. 카레·레토르트(Retort Food: 내열 용기에 밀봉한 조리 가공 식품을 고압솥에 넣고 가열·살균해 장기간 보존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케첩·참기름 등에서는 철옹성을 구축했다. 뒤늦게 뛰어든 라면 시장에서도 삼양식품을 밀어내고 2위까지 치고 올랐다.
경영 실적도 나무랄 데가 없다. 지난해 1조 6526억 원의 매출과 957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올해는 1조7620억 원의 매출과 1064억 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IBK투자증권 추정). 그래서일까. “오뚜기는 경쟁에 강하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퍼져 있다.
비즈니스 시장은 냉혹하다. 영원한 승자는 없다. 치열한 경쟁에서 순위 바꿈은 다반사다. 시장 환경도 급변한다. 따라서 경쟁에 강한 DNA를 갖고 있는 기업은 이런저런 환경 변화를 탓하지 않는다. 어떤 환경, 어떤 기업과도 맞서 싸우는데 주저하지 않을 뿐더러 결국 승리한다. 한마디로 ‘이기는 습관’을 아는 것이다. 오뚜기가 그렇다.
이기는 습관① 선점의 기술
오뚜기의 첫 번째 ‘이기는 습관’은 선점이다. 선점은 생산과 시장을 먼저 지배해 이익을 독차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뚜기는 1969년 국내 최초로 카레를 선보였다. 1971년에는 토마토케첩, 다음 해에는 마요네즈를 처음 출시했다. 모두 독점적 지배력을 자랑한다. AC닐슨에 따르면 오뚜기는 카레 82.2%, 레토르트(3분 요리) 75.1%, 케첩 87.3%, 마요네즈 84.7%, 죽 67%, 짜장 67%, 당면 73.3%, 조미 식초 70.6%, 후추 69.6% 등 의 품목에서 확고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오뚜기가 여러 분야에서의 선점에 따른 독점이 가능했던 것은 경쟁 기업보다 먼저 시장에 뛰어들었고 한눈을 팔지 않고 집중했기 때문이다.
독점에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자랑하다 보니 그 어떤 기업이 도전장을 던져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1980년대 케첩과 마요네즈 부문 글로벌 식품 기업인 CPC·하인즈사가 한국에 진출했지만 오뚜기에 막혀 철수했다. 국내 식품 1위 기업인 CJ제일제당도 역부족이었다. 2009년 레토르트 식품 시장에 진출한 CJ제일제당은 당해 연도 시장점유율 30% 목표를 세웠다. 카레 외에도 덮밥·즉석국·죽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십 종의 제품을 내놓았지만 4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시장점유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중소 식품 기업이 성공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시장 규모가 작아 대기업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 경쟁 기업들이 대부분 영세한 중소기업들인 분야에서 집중력 있게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 이른바 니치마켓 공략이다. 움트리의 고추냉이라든가 한라식품의 한라참치액, 수암의 묵 등이 대표적이다.
다른 하나는 압도적인 1위로 시장을 확실히 선점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순히 자금력과 브랜드력이 장점인 대기업도 어찌할 수 없다. 오뚜기는 후자다. 오뚜기는 시장을 선점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 규모도 쉽게 밀리지 않을 만큼 키운 것이 주효했다.
이기는 습관② 강력한 포트폴리오
삼성전자가 강한 이유를 꼽으라면 강력한 포트폴리오를 들 수 있다. 휴대전화·반도체·디스플레이·가전 등의 각 부문이 모두 세계 정상급이다. 반도체가 어려우면 휴대전화가, 휴대전화가 어려우면 가전이 구멍을 채워준다. 오뚜기도 식품 업계에서 포트폴리오가 가장 잘 구축된 기업으로 통한다. 오뚜기의 부문별 매출 현황을 보면 지난 1분기 기준 ▷카레 및 레토르트 13.78% ▷마요네즈 및 케첩 소스 20.11% ▷참기름 및 식용유지 15.86% ▷라면 및 당면 28.47% ▷밥 및 참치 10.81% ▷기타 10.97% 등이다.
오뚜기가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것은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사업 다각화 역량은 변화가 극심한 현대 경영 환경에서 갖춰야 하는 필수 과제다. 오뚜기는 일찌감치 조미 식품만으로는 성장의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해 왔다. 라면 사업이 대표적이다. 1987년 12월 라면 업체인 청보식품을 인수했다. 라면 시장 진출 초기 경쟁 업체인 농심·삼양식품 등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 고급 면과 새로운 가격대의 라면을 개발하는 전략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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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닐슨에 따르면 올 4월 국내 라면시장에서 오뚜기는 시장점유율 14.7%로, 10.9%에 그친 삼양을 제쳤다. 오뚜기의 약진에 대해 업계에서는 대표 제품군인 진라면의 판매가 꾸준한 가운데 틈새 공략형으로 선보인 컵누들 등이 많이 팔린 결과라고 해석한다. 두 제품 모두 농심 등 경쟁사 제품 가운데서는 비슷한 제품을 찾기 힘든 특화 상품으로 꼽힌다. 이들 제품들은 입소문을 타고 큰 인기를 모으면서 라면 시장에서 하나의 카테고리로 안착했다. 경쟁이 극심한 시장에 뛰어들되 자기만의 색깔을 고수한 것이 사업 다각화에 성공한 비결로 보인다.
이기는 습관③ 기본에 충실
품질은 기본 중 기본이다.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은 마케팅이나 영업력은 무의미하다. 그런 면에서 오뚜기는 품질에 대한 자존심이 센 기업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회사 창립 이후 최근까지 외국 상표 도입을 지양하고 순수 국내 상표로만 제품을 만들어 왔지만 선진 외국 기술을 도입하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단적인 예로 ‘오뚜기 골드 마요네즈’는 기존 병 용기 대신 에발(EVAL) 수지를 사용한 튜브 용기를 개발해 쉽게 깨지는 병 용기의 단점을 없애고 편리성을 높였다. 최근에는 과립형 기술을 개발, 오뚜기 카레 전 제품에 적용해 물에 더 잘 녹고 맛있어진 과립형 카레로 품질을 개선했다.
식품 기업의 품질 종착점은 안전이다. 아무리 뛰어난 제품을 내놓아도 위해 물질이 발견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따라서 식품 기업은 완벽한 안전망을 갖춰야 한다. 오뚜기의 식품안전센터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기준은 물론 미국 식품의약국(FDA), 일본 후생성 등 세계 각국의 기관들과 소비자단체들이 내세우는 기준 및 정보까지 빠짐없이 수집하고 확인할 정도로 깐깐한 곳으로 소문나 있다. 또 이 기관은 한국공인시험기관인정기구(KOLAS)의 인정 기관이기도 하다.
굳이 오뚜기의 리스크를 꼽으라면 경영권 승계다. 일반적으로 창업주에 이어 2세, 3세로 경영권이 이어지면서 기업의 철학이나 문화가 흔들리며 위기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2010년 3월 함태호 명예회장의 장남 함영준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 받았다. 함 회장은 사업 다각화에 조심스레 나서고 있다. 2010년 삼화한양식품 인수를 발판으로 차기 사업을 시작했고 2012년 초 ‘네이처바이’라는 건강기능식품 브랜드도 론칭했다. 이어 홍삼 시장에서 진출해 ‘네이처 바이 진생업’이라는 서브 브랜드를 선보였다. 하지만 함 회장 또한 창업주와 마찬가지로 무리한 신사업 진출을 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2010년 CJ제일제당과 대상 등의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를 잘 이겨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비정규직이 전혀 없고 협력 업체와의 동반자적 관계 구축에도 힘을 쏟았다는 호평이 적지 않다. 주력인 레토르트 제품의 사업성이 향후 밝다는 점도 호재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 증가, 여성의 사회적 진출 활성화 등으로 레토르트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윤호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414만 가구로 추정되는 1인 가구가 2035년 762만 가구까지 늘어날 것”이라며 “오뚜기는 레토르트 시장의 수혜를 가장 많이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남동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는데 남동풍이 불어주는 격이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