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뉴스

포스트 BRICs ‘터키’가 뜬다

곡산 2008. 2. 19. 10:49
포스트 BRICs ‘터키’가 뜬다
왜 터키인가?…유럽·CIS·중동 아우르는 관문

이스탄불의 상징 블루모스크
그리스, 로마 시대의 중심 무대였던 곳.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 오스만제국이 무려 32개국을 통치하며 다시 전 세계를 호령했던 땅. 이처럼 수천 년 동안 세계사의 주역으로 활동했던 나라 터키. 제국의 멸망과 함께 광대한 영토를 이리저리 뺏기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있던 터키가 다시 용트림을 시작했다. 96년과 2001년 두 차례 외환위기가 발생한 후 IMF 구제금융 체제로 들어가면서 극도로 혼란했던 경제가 정치 안정과 함께 자리를 잡고, 한발 더 나아가 2005년부터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터키 경제 잠재성을 알아본 글로벌 자금이 줄줄이 몰려들고 있는 덕분이다.

2002년 이후 매년 58%대 성장세를 구현하면서 VISTA(잠깐용어 참조) 5개국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는 터키 경제를 심층 분석해본다.

중국, 프랑스 음식과 더불어 세계 3대 음식이라는 터키 음식을 맛보기 위해 찾아간 ‘마비 발락’ 식당. 골든혼 건너편으로 성소피아성당과 블루모스크가 자리한 구시가지는 물론 저 멀리로 아시아 지역까지 한눈에 조망이 가능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도시,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로지르는 보스포러스대교를 건너 2분 만에 유럽과 아시아를 왔다갔다할 수 있는 곳, 이스탄불에 와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역사학자 토인비가 ‘인류 문명이 살아있는 거대한 옥외박물관’이라고 극찬했던 터키 이스탄불. 그러나 환한 대낮에 마주하니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던 야경과는 사뭇 풍경이 다르다. 이스탄불은 요즘 곳곳에서 땅이 파헤쳐지는 몸살을 앓고 있다. 아파트는 물론 오피스텔 빌딩이 여기저기 들어서는 중. 외국인 투자자금과 외국 기업들이 줄줄이 몰려들고 있는 때문이다.

‘이스탄불을 지배하는 자, 전 세계를 지배한다’라는 문구가 있었던가. 실제로 터키는 독일 편을 들었던 세계 1차대전 이후 국력이 급속도로 쇠퇴할 때까지 전통적인 강국이었다.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동로마제국은 1453년까지 유지됐다. 이후 오스만제국이 들어서면서 다시 세계를 다스렸다.  

이제 터키가 그러한 제국의 신화를 다시 쓰려 하고 있다. 터키 경제의 잠재성을 인정하고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는 외국 자본을 기반으로 해서다. 터키를 근거로 유럽은 물론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를 손에 넣겠다는 일념으로 외국 자본과 외국 기업들이 물밀듯이 들어온다. 지난 2002년 11억달러에 불과했던 외국인투자자금이 2006년 200억달러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올라섰다. 2007년에는 무려 25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외국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경제가 활기를 띠는 것에 가장 민감한 것은 바로 유통 업체들이다. 지난해에만 이스탄불 시내에 무려 5개 이상의 대형 백화점이 들어섰다. 그중 제바히르백화점은 유럽 내 2위 규모를 자랑한다. 올 들어서 만도 일렉트로월드, 미디어마크트, 다티, 베스트바이 등 유럽계와 미국계 유통 업체들이 줄줄이 들어왔거나 들어온다. 

이 같은 터키행 행렬에 한국 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근 1~2년 사이에 CJ제일제당, KT&G, KCC, 대양금속 등이 공장을 설립했다. 효성이 중국을 제외하고 전 세계에 처음으로 설립하는 스판덱스공장은 이스탄불 인근 지역에서 2월 1일 문을 연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지사에서 현지법인 체제로 전환했는가 하면 LG전자는 오는 4월 법인 전환을 앞두고 전 직원이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이처럼 외국 자본과 기업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터키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다. 조만간 월세 재계약을 맺어야 한다는 김용성 현대차 터키법인 부장은 “월 2000달러였는데 이번엔 2400달러를 달라더라”고 전했다. 그도 괜찮은 수준. 일시에 3000달러로 올린 집주인도 수두룩하다는 설명이다.

현 시점에서 전 세계가 터키를 주목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1.지정학적 위치  

‘향후 25년 내 세계는 유럽과 아시아라는 두 개의 파워로 정리될 것’이라는 게 수많은 전문가들 주장이다. 터키는 그 두 세력을 모두 아우르는 전 세계 단 하나의 국가다. 국토의 3.6%만이 유럽 땅이지만 스스로는 유럽국가라 여기는 곳, 유럽인은 물론 전 세계인들도 유럽국가로 인정해주는 곳, 동시에 국토의 96.4%를 차지하는 아시아, 그중에서도 중앙아시아와 중동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곳. ‘유럽과 아시아의 시대’를 앞두고 터키가 절로 부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은 터키를 바라보는 국내 기업들 시각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스탄불 인근 체르케스코이에 연산 1만5000톤 규모의 스판덱스공장을 건설 중인 효성은 터키 공장에서 생산할 스판덱스를 들고 전 유럽을 누빌 계획이다. 터키를 유럽의 생산기지로 본다는 의미다. 반면 아르첼릭사와 함께 LG아르첼릭을 설립해 터키 에어컨시장을 휩쓸고 있는 LG전자는 터키를 중동, 아프리카 파트로 구분한다. 터키에서 얻은 이름을 바탕으로 중동, 아프리카 시장도 장악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사실 터키의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을 제외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모든 ‘~스탄’ 국가들이 예전 터키의 땅이었다.

부산외대 중앙아시아학과를 졸업하고 터키 여행사에서 근무 중인 김소영씨는 “중앙아시아어학과가 사실상 터키어학과라 보면 된다. 언어의 뿌리가 같아 터키어를 하면 중앙아시아 사람들과는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전한다. 한편 이를 두고 박은우 KOTRA 터키무역관장은 “터키는 중앙아시아의 맹주국으로 터키에서 유행하는 것은 6개월 내에 전 중앙아시아로 퍼진다. 이런 이유로 터키를 ‘중앙아시아의 남대문’이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중동에 대한 영향력은 터키가 칼리프 국가였다는 데서 알 수 있다. 터키의 술탄 셀림1세는 1517년 이집트를 침입해 당시 이집트를 다스리던 맘루크 왕조로부터 칼리프 직위와 계승권을 뺏어왔다. 칼리프는 이슬람교의 교황 같은 존재. 1924년 터키 근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장군이 칼리프제를 폐지할 때까지 400여년간 칼리프 국가였던 터키를 중동국가들이 무시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한편 이런 지정학적 요지라는 이점은 원유 시장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내포한다. 원유와 천연가스 등 중동, 중앙아시아의 풍부한 에너지자원이 유럽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터키를 거쳐야 한다. 현재 터키는 두 지역을 잇는 송유관 건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한국의 터키로부터의 수입액은 3억달러. 이 중 1억달러가 원유다. 터키에서는 원유가 생산되지 않는다. 터키에서 생산된 원유가 아닌, 터키를 거쳐 가는 원유를 수입했다는 설명이다. 

2.정치 안정에 기반 둔 경제 안정  

‘100달러를 환전했더니 2억리라를 주더라’ ‘식사 한 번 하고 받은 거스름돈이 배낭 한가득’이라는 식의 얘기가 바람결에 들려오던 시절이 있었다. 연 70~140%의 살인적인 물가상승률을 자랑하던 시절 얘기다.

그랬던 터키 물가상승률이 최근엔 10% 안쪽의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2004년 30년 만에 9.3%라는 한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달성했다. 2005년과 2006년에도 각각 7.7%, 9.6%를 기록하며 안정세를 유지했다. 2007년에는 8%대 물가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경제성장률은 25년째 평균 7%대를 유지해오고 있다. 2004년 8.9%, 2005년 7.4%, 2006년 6.1%로 중국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꽤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률이다.  

덕분에 96년, 2001년 등 5년 주기적으로 맞았던 외환위기에 대한 위기감도 2006년 이후로 깨끗이 씻겨져 나가고 있는 와중이다.  

터키 경제가 이처럼 안정될 수 있게 된 요인으로는 정치 안정이 최우선으로 꼽힌다. 2001년 11월에 집권한 현 정부 정의발전당은 집권 시부터 물가안정과 경제성장에 포커스를 맞추고 경제 우선 정책을 폈다. 그 결과 2002년부터 터키 경제는 급속도로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경제에서 큰 성과를 거둔 대가로 정의발전당은 2007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3.풍부한 내수 시장  

‘터키가 EU에 가입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인구 때문’이란 게 EU 내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터키 인구는 7500만명에 달한다. EU 국가 중 독일에 이어 두 번째다. EU는 인구에 따라 의결권을 갖게 돼있다. 터키가 EU에 가입하면 그만큼 발언권이 세질 것일 만큼, EU 국가들이 터키를 반기지 않는 게 당연해 보인다.  

7500만명 인구는 그러나 경제 측면에서는 터키에 상당한 호재다. 유럽의 생산기지로서 동유럽과 경쟁 중인 터키가 동유럽보다 낫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인구에서 나온다.

내수시장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기 때문에 유럽 생산기지인 동시에 내수시장을 공략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폴란드, 터키 등 3국을 놓고 생산기지를 저울질했다는 효성은 결국 터키를 낙점했다. “아무래도 시장이 가장 큰 터키에 공장을 세우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는 판단이었다”는 게 이천규 효성 터키 법인장 설명이다.  

그뿐인가. 터키 인구의 60%가 30대 미만이다. 향후 내수시장이 훨씬 더 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할 수 있다.

【 터키는 어떤 나라? 】

◆ 1인당 GDP 7000달러·세계 13위 경제대국

= 동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터키는 1차대전 때 독일 편에 섰다가 패배하면서 현재의 영토로 축소됐다. 터키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무스타파 케말 장군이 터키공화국을 수립한 1923년 10월 29일이 건국일이다.

52년 이슬람국가 최초로 나토에 가입하고 2005년부터 EU 가입 협상을 시작하는 등 여타 이슬람국가들과 달리 서구화에 성공했다.

전 국토 중 3.6%가 유럽에, 나머지 96.4%는 아시아에 속해 있어 유일하게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는 국가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은 인구 1500만명의 유럽 최대 도시다.

인구는 7500만명. 이 중 60%가 30대 이하 젊은층이다.

종족은 터키계 87%와 PKK(쿠르드노동자당)로 유명한 쿠르드계 8%, 아르메니아인, 유대인 등으로 구성돼있다. 2007년 1인당 국민소득은 6933달러. 2006년 기준 국내총생산은 4036억달러로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다.

【 인터뷰 / 셀림 쿠네랄프 터키 외교부 경제담당 차관보 】

◆ 동유럽보다 투자매력 풍부

= Q> POST BRICs를 얘기하는 시대에 터키가 중심국가로 꼽힌다.

사실 터키는 인구나 경제성장률 등에서 매우 눈에 띄는 국가였음에도 이상하게 그동안 가려져 있었다. POST BRICs라는 이름을 걸고서라도 알려진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이 얘기가 딱 들어맞지는 않다. BRICs는 OECD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국가들이지만, 터키는 OECD 출범 당시부터 OECD 국가였다.

Q> 터키는 96년과 2001년에 걸쳐 두 차례의 외환위기를 겪었다. 향후 다시 같은 위기를 겪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지 않나.

당시 외환위기는 잘못된 경제정책에 의해 발생된 측면이 다분하다. 당시 터키 정부는 높은 물가상승률에도 불구하고 고정환율제를 취하고 있었다. 이때 갑작스레 디밸류에이션(평가 절하)이 단행되면서 경제에 혼란이 온 게 외환위기의 본질이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현 정부는 연간 80~120%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을 10% 내외로 안정시켰다. 경제를 안정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2기 집권에도 성공했다. 현재로서는 외환위기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Q> 터키 정부는 ‘2013년 EU 가입 로드맵’을 작성했다. 현재 터키는 EU와 관세동맹을 맺고 있어 EU와의 수출입에서 실질적인 EU 국가 대접을 받고 있다. 향후 EU에 가입하게 되면 여기서 어떤 혜택을 더 얻게 되는가.

현재 무관세는 공산품에 한정돼 있다. 농산물과 서비스는 대상이 아니다. EU에 가입하게 되면 농산물과 서비스 쪽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현재 외국 기업들은 터키 금융기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지난해 GE캐피탈이 터키의 대형 은행 가란타의 지분 25%를 인수했다). 터키의 금융산업이 그만큼 잠재력이 있다는 얘기다. 특히 금융산업 등이 EU 가입과 더불어 크게 발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Q> 1~2년 새 터키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투자자와 기업이 크게 늘었다. 터키 역시 이들을 유치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동유럽 등 경쟁 국가에 비해 투자기업에 부여되는 혜택이 별로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 등 주변국에 비해 투자혜택이 미흡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터키 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봐줬으면 한다. 단기적으로는 다양한 혜택을 주는 동유럽에 끌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내수시장까지 감안하면 인구 수백만 정도의 동유럽은 7500만 인구의 터키와 비교가 안 된다. 관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동유럽이 유럽만 겨냥한 관문이라면, 터키는 유럽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까지 관문이 될 수 있다. 단기적인 메리트는 없어도 장기적인 가능성은 동유럽이 터키를 따라올 수 없다고 믿는다.

[취재=김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