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뉴욕 맨해튼에 있는 한국 식당가에는 매운 음식을 찾는 뉴요커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인들에게 알려진 한국음식은 불고기와 비빔밥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김치찌개, 순두부찌개에 이어 매운 맛이 강한 떡볶이와 오징어볶음이 각광받고 있다. 특히 떡볶이와 오징어볶음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간식으로 먹지만 뉴요커들은 요리를 먹기 전에 입맛을 돋우는 애피타이저로 즐기고 있다. 한국음식에 흠뻑 빠진 한 뉴요커는 자신이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이유를 '단맛과 매운맛의 완벽한 조화(Perfect combination of sweet and spicy)'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매운 음식의 인기는 절정을 달리고 있다. '매운 맛 라면'에서 시작된 매운 음식에 대한 관심은 불닭 불낙지 불갈비 등 모든 음식으로 번지고 있다. 매운맛이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매운 음식에 대한 관심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햄버그 핫도그 피자 스파게티 등 원래 매운 맛과 거리가 먼 서양음식에도 매운 맛을 가하기 시작했다. 가히 음식점마다 더 매운 음식을 만들기 위한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다.
음식에 매운 맛을 내게 하는 일등공신은 바로 고추다. 붉게 잘 익은 고추로 만든 고춧가루의 주성분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질 등이다. 고춧가루 100g에는 수분 15.5g, 탄수화물 50.6g(섬유소 22.0g 포함), 단백질 11.0g, 지질 11.0g이 들어 있다. 그 외에도 칼슘 인 칼륨 등 무기질과 비타민A와 C, 고추의 붉은 색을 내는 '캡산틴'과 '카로틴', 그리고 고추의 매운 맛을 내는 '캡사이신' 등이 소량 들어 있다.
고추가 매운맛 성분인 캡사이신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자신을 보호하여 종자의 번식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캡사이신은 과육보다 고추씨와 고추씨가 달려 있는 태좌에 더 많이 들어 있다. 동물이 고추의 과육은 먹더라도 씨앗만은 못 먹어야 종족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또한 고추씨에는 '아데닌'이라는 감칠맛을 내는 성분이 들어 있다. 고추의 매운맛이 고추냉이나 마늘의 매운 맛보다 깊이가 있는 것은 아데닌 때문이다. 맛있고 매운 고춧가루를 원한다면 고추씨와 태좌를 버리지 말고 고추를 빻아야 한다. 또한 캡사이신은 유사한 매운 맛을 내는 마늘의 '알리신'과 달리 열을 가해도 분해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열한 마늘은 매운 맛이 없어지지만 고춧가루를 넣은 음식은 가열해도 매운 맛이 그대로 있다.
고추의 매운 맛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등의 원미(元味)와는 성질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원미는 말 그대로 맛이지만 매운 맛은 맛이라기보다는 혀가 느끼는 통증이다. 이 통증을 통각(통증을 느끼는 감각)이라고 하며 통각은 혀뿐 아니라 구강과 비강에서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고추를 먹으면 입안 전체가 얼얼해지는 것이다. 캡사이신에 의한 통각이 뇌로 전달되면 뇌는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명령을 내린다. 우선 통증 원인물질을 희석시키기 위해 입 주변에 수분분비를 촉진시킨다. 이 결과 입에 침이 고이고 눈물 콧물과 땀이 범벅이 된다.
위장은 뇌의 명령으로 고통의 원인물질을 빨리 소화시키기 위해서 위장운동을 활발하게 한다. 동시에 뇌는 심장의 박동수를 높여 혈액이 빨리 순환되게 하며, 고통을 완화시키는 물질인 엔돌핀을 분비하게 한다. 매운 음식을 먹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 것과 매운 맛을 알게 되면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추, 그 맵디매운 황홀'의 저자 아말 나지는 이런 이유 때문에 고추의 매운 맛에는 니코틴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고 했다.
이 밖에 고추의 효능은 다양하다. 고추에 들어 있는 비타민과 캡사이신 등 생리활성물질은 세포의 노화를 방지하며 유해한 균을 사멸시킨다. 또 진통을 완화하고 면역증강에도 도움을 준다. 호주의 한 생리학자는 고추가 든 매운 음식을 먹으면 잠이 잘 오며 숙면을 취하는데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서도 활기가 넘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처럼 고추는 우리를 건강하게하고 기분 좋게 한다. 고추가 빨갛게 익어 가는 가을이다. 다가 올 춥고 긴 겨울을 준비해야 하는 때다. 맵싸한 고추 한 입 물고 자칫 움츠려들 수 있는 가슴을 쫙 펴고 허리를 곧추 세워보자. 작은 고추의 힘으로 이 가을을 활기차게 즐겨보자.
동의과학대 입학홍보처장·식품과학계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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