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소식

롯데 신회장 반대속 글로벌 기업 시동

곡산 2008. 1. 12. 19:03
롯데 신회장 반대속 글로벌 기업 시동
2008-01-08 08:33:51


[프라임경제] 농심그룹 기업문화의 최대 특징 중 하나는 단연 한우물 경영이 손꼽힌다. 농심은 지난 40여년 간 라면을 앞세운 스낵 전문업체로 업계 정상을 지켜왔다.

신춘호 회장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인 신춘호 농심그룹 회장은 사실 언론에 뜸하다 못해 전혀 노출을 꺼리고 있는 '은둔 경영인' 중 한 사람이지만 지금의 농심을 이끈 주역이다.

사실 신춘호 회장은 사업시작전인 지난 60년대 초 라면사업을 결심하고 일본에 있던 맏형 신격호 회장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으나 “한국과 일본의 사정은 여러 모로 다르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집어치워라”라고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맏형 신 회장은 형의 반대가 크자 오기로 사업을 시작, 숱한 설움과 역경을 겪은 끝에 라면과 스낵의 1위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고 밝혔다.

이런 연유 등으로 형제들간이 소원한 관계라는 것은 이미 재계에 널리 알려진 얘기며 실제로 롯데의 신 회장이 1999년 신 회장의 고희 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신춘호 회장은 고희를 맞아 "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냈기도 했다. 이 책에는 그가 친형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같이 일하다 갈라져 나온 과정과 평소의 경영철학이 담겨 있다.

특히 자신에 관해서는 "내 직업은 장사꾼"이라면서 "평생 라면을 만들어왔으니 라면쟁이요, 또 스낵도 만들어 왔으니 스낵쟁이라고 스스로 부르기를 좋아한다"고 썼다.

재계에서는 신격호 회장 형제들간의 소원한 관계로 서로 왕래가 거의 없는 것은 이미 재계에 널리 알려진 얘기. 형제간의 섭섭함은 신격호 회장이 50년대 말부터 막대한 돈을 일본에서 국내로 송금, 당초 동생들 이름으로 투자했으나 나중에 이들이 재산권을 주장하는 등 불화가 싹튼 것으로 알려졌다.

라면시장 1위 달성

농심은 지난 1965년 설립한 롯데공업사에서 태동했다. 롯데공업사로 출발했던 농심은 자체 연구소를 만들어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라면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신 회장의 뜻에 따라 세계 70여개국에 적합한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한국의 맛을 전파하고 있다.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 농심은 다양한 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왔다. 세분화된 시장에서 농심은 라면과 스낵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넘버원 브랜드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이제 라면하면 농심, 스낵하면 농심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농심의 브랜드 인지도가 상당히 높다.

농심은 1970년대 후반부터 품질 고급화와 제품 차별화라는 전략을 추진해 나갔다. 1982년 6월 안성공장 가동 첫 제품으로 월등한 품질을 앞세우며 내놓은 ‘해피 소고기라면’은 선발 경쟁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같은 해 11월에 출시한 ‘너구리’는 수요에 공급이 미치지 못할 만큼 선풍적인 인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1983년 9월부터 출시한 ‘안성탕면’은 국내 라면 역사에 남을 대 히트작의 기록을 만들며 농심의 라면시장 점유율을 수직상승 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83년 이전까지 평균 30% 수준에 머물던 농심의 시장점유율은 ‘안성탕면’의 인기를 바탕으로 1984년에 40.15%를 기록했으며 1985년에는 42.2%로 뛰어올랐다. 1985년 3월을 기해 농심이 마침내 국내 라면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후 농심은 1986년에 농심 최고의 히트작인 ‘신라면’을 출시하면서 1987년 시장 점유율을 46.3%로 끌어올렸고, 1988년에 53.8%, 1989년에 58%로 숨 가쁜 시장점유율로 상승행진을 거듭하며 명실공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두주자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다.

이런 농심의 노력은 라면에 있어선 ‘소고기라면’, 자장라면인 ‘짜파게티’, 사발형태의 용기면인 ‘육개장사발면’, 우동형태의 라면인 ‘너구리’, 탕면시대를 개척한 ‘안성탕면’, 매운맛의 대명사로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신라면’, 생생한 면발의 라면 ‘생생우동’ 등 그 동안 경쟁사에 앞서 개발한 새로운 유형의 신제품으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농심의 히트상품은 라면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1971년 12월 개발된 ‘새우깡’을 시작으로 ‘포테토칩’, ‘양파링’을 줄줄이 내놓으며 국내 스낵문화를 만드는 견인차 역할까지 했다.

핵심 역량 사업 키워

라면과 스낵을 주력사업으로 둔 농심은 여타 핵심 역량 사업 키우는 데에도 역점을 뒀다. 지난 1998년 3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먹는 샘물인 ‘제주삼다수’는 출시 6개월여만에 소비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국내 먹는 샘물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후 농심은 1998년 5월에는 경기도 안성에 저과즙주스 생산공장을 완공하고 '카프리썬’을 생산판매하고 있다. 2003년 5월부터는 세계적인 포도주스 메이커인 미국 웰치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웰치포도주스’를 국내에서 생산, 판매하고 있다.

2003년 8월부터 녹차음료인 ‘순녹차’, 2004년 4월엔 몸에 좋은 홍삼을 물처럼 마실 수 있는 ‘홍삼수’를 판매하며 음료시장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외에도 농심은 2005년 7월 미국 캠벨사와 기술제휴를 맺고 ‘캠벨V8주스’를, 시리얼시장의 선두인 켈로그의 시리얼 제품과 세계 최고의 네슬레 커피인 ‘네스카페’와 ‘테이스터스 초이스’ 등 네슬레 제품을 판매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맞벌이 부부, 독신자 가정이 증가에 맞쳐 밥시장에서도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농심은 햅쌀로 갓 지은 밥맛을 느낄 수 있는 ‘따끈따끈 햅쌀밥’ 외에 한국인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국물이 있는 소고기국, 미역국을 함께 결합시킨 제품을 개발하여 국밥의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다.

한편 현재 농심은 오너 2세들이 경영 전면에 포진하며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신춘호 회장의 3남 2녀 중 막내딸인 윤경 씨를 제외한 4남매가 모두 그룹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

농심그룹, 세대교체 '급물살'

신 회장의 큰아들 신동원 씨가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 둘째아들 신동윤 씨가 율촌화학 부회장, 셋째아들 신동익 씨가 메가마트와 농심개발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후계 구도와 관련해 중장기적인 분가 구도도 현재의 모양새를 따를 것이라는 게 재계 일각의 관측이다.

특히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농심의 세대교체 주축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 소유 규모만 놓고 보더라도 신 부회장은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의 최대주주로서 36.8%를 보유, 쌍둥이 동생인 동윤 씨 보다 16.68%나 많기 때문이다.

'형제의 난'을 미연에 막고자 신춘호 회장의 깊은 뜻을 삼남 동익 씨의 지분구조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신 회장은 삼남인 동익 씨에게 농심홀딩스 대신 메가마트의 최대지분을 물려줬다. 동익 씨가 소유하고 있는 메가마트의 지분율은 45.9%로, 형제들 중 가장 많은 지분율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신춘호 회장은 3세 경영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을 정리한 바 있다. 신동원 부회장의 장남에게만 농심홀딩스 지분 0.7%를 줬을 뿐, 다른 3세들에겐 균등하게 0.23%씩 보유토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