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장기화…식품기업, '폭염 특수'보다 '기후 적응력'이 경쟁력
- 배경호 기자
- 승인 2026.08.03 09:05
공급망 불안 초래…제품 개발서 생산·물류·유통 등 다시 설계해야
음료, 미네랄 등 기능성 제품 찾아…‘수분 보충+저당’주목
시원한 경험 RTE·콜드밀 선호…냉동 디저트 시장 확대
K-푸드 냉동김밥·만두·면에 식혜 등 수분 보충 차별화를
감당하기 어려운 불볕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제 폭염은 더 이상 일시적인 계절 현상이 아니라, 식품산업의 생산과 공급망, 소비시장까지 동시에 흔드는 새로운 경영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 폭염은 아이스크림과 음료 판매를 늘리는 '여름 특수' 정도로 인식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원료 생산 감소와 공급망 불안, 에너지 비용 증가, 소비 패턴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식품기업의 제품 개발부터 생산, 물류, 유통 전략까지 다시 설계해야 하는 구조적 리스크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공동 보고서를 통해 극심한 폭염을 농업과 식품 시스템을 위협하는 핵심 기후 리스크로 규정했다. 또한 폭염은 단순히 기온이 높은 현상이 아니라 가뭄과 산불, 병해충, 물 부족을 동시에 증폭시키는 '복합 위험(Multi-hazard)'으로 작용하며 농업과 축산, 수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이에 본지는 폭염이 식품산업에 가져올 구조적 변화와 새로운 소비 트렌드, 공급망 리스크, 그리고 K-푸드 기업이 준비해야 할 대응 전략을 산업적 관점에서 살펴봤다.

수분 보충으로 진화하는 음료 시장
폭염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 분야는 음료 시장이다. 그러나 시장이 커지는 방식은 과거와 다르다.
이제 소비자는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보다 전해질과 미네랄, 비타민을 함께 보충하는 기능성 제품을 찾고 있다. 스포츠음료를 넘어 저당 이온 음료, 코코넛워터, 전해질 파우더, 기능성 탄산수, 무알코올 음료 등으로 시장이 빠르게 세분화되고 있다.
특히 건강과 체중 관리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분 보충’과 ‘저당’을 동시에 내세운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 음료업계도 Hydration, Electrolyte, Zero Sugar, Natural Energy 등의 표현을 앞세워 여름철 제품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고 있다.
따라서 폭염은 단지 음료 판매량 뿐만 아니라 '수분 보충 시장(Hydration Market)' 자체를 확대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스크림 넘어 ‘먹는 냉각 제품’으로 확대
아이스크림과 냉동 디저트도 폭염의 대표적인 수혜 품목이다.
그러나 최근 시장 변화는 단순히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증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저당·고단백 아이스크림, 식물성 냉동 디저트, 냉동 과일바, 프로바이오틱스 요구르트바 등 건강과 기능성을 결합한 제품군으로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여름이 길어지면서 판매 시즌도 연장되는 추세다. 식품기업으로서는 과거 몇 주에 집중됐던 여름 성수기가 봄부터 초가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냉동식품도 같은 흐름이다.
과거 냉동식품의 핵심 가치는 장기 보관과 조리 편의성이었다. 최근에는 냉동과일과 스무디 원료, 아이스 디저트처럼 제품 자체가 제공하는 시원한 섭취 경험이 새로운 구매 요인으로 더해지고 있다.
냉동 베리와 망고, 파인애플 등은 별도의 해동 없이 스무디나 요구르트 토핑으로 이용할 수 있어 폭염기에 활용도가 높다. 신선 과일보다 보관 기간이 길어 폐기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하지만 시장 확대와 함께 부담도 커진다.
폭염은 제품의 녹는 속도와 배송 안정성, 매장 진열 환경을 악화시킨다. 그러므로 제조업체는 녹는 속도를 늦추는 배합기술과 고온에 견디는 포장, 냉동 배송 과정의 온도 관리 능력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또한 냉방 수요 증가로 정전이나 전력 제한이 발생할 경우 냉동식품은 가장 먼저 품질 위험에 노출된다. 냉동식품 시장 확대와 함께 비상전력 확보, 실시간 온도 모니터링, 배송 지연 대응체계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뜨거운 식사'에서 '콜드밀'로 이동
기온이 오를수록 가정에서 오븐이나 가스레인지를 사용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조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이 실내 온도를 높이는 데다, 더위로 식욕이 떨어지면서 무겁고 뜨거운 식사에 대한 선호도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샐러드와 컵과일, 샌드위치, 냉육, 냉장 면, 딥소스, 요구르트 등 비가열 간편식이다.
폭염기의 간편식은 기존 HMR과도 차이가 있다. 전자레인지나 오븐 조리를 전제로 한 제품보다 개봉 후 바로 먹거나 차갑게 섭취할 수 있는 RTE와 콜드밀(Cold Meal)에 대한 선호가 강해진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유럽 유통업체들이 해당 제품의 진열을 확대하고 냉장·냉동 배송 프로모션을 강화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스 시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샐러드와 냉육, 냉면류 소비가 증가하면 드레싱과 딥소스, 차가운 면용 소스, 저염 마리네이드 등 가열하지 않는 식사에 적합한 제품의 활용도가 높아진다.
폭염 특수 뒤에는 농산물·유제품 공급 충격
소비시장만 놓고 보면 폭염이 식품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생산 단계에서는 정반대의 충격이 나타난다.
FAO와 WMO에 따르면 극심한 고온은 작물의 광합성을 방해하고 개화와 수정, 종자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가뭄과 물 부족까지 겹치면 곡물과 과일, 채소의 생산량뿐 아니라 크기와 외관, 당도 등 품질도 저하될 수 있다.
해수 온도 상승은 수중 산소량을 감소시켜 수산자원과 양식업에 피해를 준다. 어종 이동과 집단 폐사, 양식장 생산성 저하가 나타날 경우 수산물 가격과 공급 안정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축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가축은 고온 스트레스를 받으면 사료 섭취량이 줄고 성장과 번식 능력이 떨어진다. FAO가 인용한 대규모 원유 생산자료 분석에서는 젖소가 심한 열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시간이 한 시간 늘 때마다 산유량이 약 0.5% 감소했으며, 그 영향이 최대 10일간 이어질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유의 지방과 단백질 함량도 낮아질 수 있다.
유럽에서는 2026년 6월 폭염과 수분 부족으로 밀과 옥수수 등 주요 작물이 피해를 입으면서 EU와 영국의 곡물 생산가치가 약 20억 유로 감소한 것으로 추산됐다. 폭염이 장기화하면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고 국제 곡물 가격에도 상승 압력이 가해질 가능성이 있다.
결국 소비자는 냉음료와 냉동식품을 더 많이 찾지만, 기업은 원료 부족과 에너지·물류비 상승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K-푸드, '시원한 한 끼' 준비해야
폭염은 한국 식품기업에도 새로운 기회를 제시한다.
음료 분야에서는 식혜와 수정과, 보리차, 옥수수수염차 등 전통 음료를 저당·무카페인·수분 보충 콘셉트로 현대화할 수 있다. 수박과 배, 유자, 오미자 등을 활용한 RTD 음료도 ‘아시아형 기능성 수분 음료’로 차별화할 가능성이 있다.
간편식은 냉동제품을 수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폭염기에 적합한 섭취 방식을 설계해야 한다. 냉동 김밥과 만두뿐 아니라 차갑게 먹는 비빔면과 메밀면, 곤약면, 묵·두부 기반 식사, 곡물 샐러드 등 비가열 또는 최소 가열 제품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K-소스도 고기를 굽거나 볶는 용도에 머물지 않고 샐러드드레싱과 냉육 마리네이드, 차가운 면 소스, 딥소스 등 콜드밀에 맞춰 활용 범위를 넓힐 수 있다. 고추장과 된장, 간장에 과일이나 식초를 결합한 저당 소스는 건강성과 이색 풍미를 함께 제공할 수 있다.
포장 전략도 중요하다. 여름철에는 한 번에 소비할 수 있는 소용량과 휴대하기 쉬운 파우치, 다시 밀봉할 수 있는 용기, 냉장고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슬림형 패키지가 유리하다.
아울러 수출기업은 제품 개발 단계부터 창고와 컨테이너, 배송 과정의 고온 노출 가능성을 검토하고, 냉장·냉동 제품은 온도 이탈이 품질과 유통기한에 미치는 영향까지 검증해야 폭염 시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이제 폭염은 더 이상 몇 주간 지속되는 계절적 변수로만 보기 어렵다. 따라서 식품기업의 폭염 대응은 여름철 아이스크림과 음료 판촉을 확대하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 또한 식품기업에게 폭염은 제품 포트폴리오와 원료 조달, 생산 일정, 포장, 물류, 재고 운영을 다시 설계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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