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옥 기자
- 승인 2026.05.29 09:26
케어푸드·단백질·K-간편식이 성장 견인
건강기능식품은 ‘홍삼’ 제치고 비타민 중심 재편
국내 식품산업이 지난해 처음으로 생산실적 12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번 통계가 보여주는 진짜 변화는 규모 확대가 아니다.
‘건강’과 ‘편의’가 식품산업 전반을 지배하면서 케어푸드와 단백질식품, 간편식, 비타민 시장이 급성장하고, K-푸드는 라면과 냉동김밥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확대하는 등 소비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는 수십 년간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홍삼을 제치고 비타민·무기질 제품이 국내 판매 1위에 오르며 시장 재편을 알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식품안전정보원이 집계한 2025년 식품산업 생산실적은 119조 7,372억 원으로 전년 대비 4.3% 증가했다. 수출은 78억 6,318만 달러로 8.3% 늘었다. 식품산업은 국내 총생산(GDP)의 4.5%, 제조업 GDP의 16.4%를 차지하며 우리 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건강은 필수, 즐거움은 포기 못해… ‘헬시플레저’가 이끄는 소비 혁명
이번 통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키워드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다.
과거 건강식품 시장이 특정 연령층이나 환자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건강관리 자체가 일상 소비로 자리 잡았다. 특수의료용도식품 생산은 전년 대비 11.3%, 특수영양식품은 15.3% 증가했다. 고령화에 따른 영양관리 수요와 영유아 식품 시장 확대가 동시에 영향을 미친 결과다.
흥미로운 점은 건강을 추구하면서도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소비가 함께 증가했다는 점이다.
샐러드와 새싹채소 등 신선편의식품 생산이 늘어난 반면, 케이크·도넛·파이 등 디저트형 빵류 생산도 증가했다. 건강을 위해 식단을 관리하면서도, 소비자가 만족감과 보상을 주는 디저트 소비에는 지갑을 여는 이중적 소비 패턴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최근 식품업계가 단순 저당·저칼로리를 넘어 ‘맛있는 건강식’ 개발에 집중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냉동김밥 181% 중가… K-푸드 수출 공식도 바뀌어
수출 시장에서는 라면의 독주가 이어졌다.
유탕면 수출액은 15억 105만 달러로 전년보다 26.5% 증가하며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더 주목할 부분은 즉석섭취·편의식품류의 성장이다.
즉석섭취·편의식품 수출은 7억 7,606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이 가운데 냉동김밥 등 일부 품목은 무려 180.9% 증가했다.
이는 K-푸드 수출의 중심축이 전통적인 장류나 라면 중심에서 ‘한 끼 식사형 간편식’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K-푸드 수출이 한국 교민과 아시아 시장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K-콘텐츠 영향으로 미국과 유럽 소비자들이 냉동김밥, 컵밥, 간편식 등을 일상 식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조미김 역시 12.8% 증가한 5억 6,239만 달러를 기록하며 글로벌 건강 스낵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였다.
육류 소비는 계속 늘고, 단백질 공급원은 다양화
축산물 시장 역시 건강 트렌드의 영향을 받고 있다.
돼지고기·쇠고기·닭고기 포장육과 양념육류 생산량은 전년보다 4% 증가했고, 국민 1인당 육류 소비량은 61.6kg으로 늘었다. 쌀 소비 감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소비자의 관심은 단순히 육류 소비 증가에 머물지 않는다.
반숙란·훈제란 등 알가공품 생산이 증가했고, 단백질 보충제와 고단백 음료의 핵심 원료인 유청 생산도 확대됐다. 여기에 유당불내증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유당분해우유 시장도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단백질 소비가 육류 중심에서 계란, 유단백, 기능성 단백질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식품시장의 경쟁은 ‘얼마나 많은 단백질을 제공하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쉽고 편리하게 섭취하게 하느냐’가 될 가능성이 높다.
홍삼의 시대 저무나… 비타민·오메가3가 주도권 장악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는 상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비타민 및 무기질 제품이 2년 연속 생산액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국내 판매액에서도 처음으로 홍삼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특히 비타민 D와 마그네슘 생산 증가폭이 두드러졌다. 코로나19 이후 면역과 수면,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필수 영양소 중심의 소비가 확산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반면 홍삼, 프로바이오틱스, 헤모힘 등은 상위권을 유지했지만 생산량은 감소했다.
대신 EPA 및 DHA 함유 유지, 즉 오메가3 계열 제품 생산이 크게 증가했다. 수출에서도 비타민·무기질, 오메가3, 프로바이오틱스가 전체 건강기능식품 수출의 약 60%를 차지했다.
이는 건강기능식품 시장이 전통적인 면역 중심에서 혈관 건강, 수면, 스트레스, 영양 균형 등 보다 일상적이고 과학적인 건강관리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식품산업의 미래는 ‘케어푸드·단백질·글로벌 간편식’
이번 생산실적은 식품산업이 단순 제조업을 넘어 헬스케어 산업과 라이프스타일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케어푸드와 특수의료용도식품 시장 확대, 단백질 공급원의 다변화, 냉동김밥을 비롯한 K-간편식 수출 급증, 비타민 중심 건강기능식품 시장 재편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소비자는 더 건강해지기를 원하지만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결국 건강과 편의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제품이 앞으로 식품산업의 성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
119조 원 규모로 성장한 국내 식품산업은 이제 ‘무엇을 먹을 것인가’의 경쟁을 넘어 ‘어떻게 건강하게, 그리고 편리하게 먹을 것인가’의 경쟁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식품업계 판도도 변화… ‘라면·글로벌 K-푸드’ 기업 약진
2025년 생산실적 집계에서는 소비 트렌드 변화가 기업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생산실적 1조 원 이상 업체는 식품제조·가공업체 9곳과 축산물가공업체 2곳 등 총 11개사로 집계됐다. 특히 지난해보다 축산물가공업체가 1곳 늘어나면서 식품산업 내 축산·유가공 분야의 성장세도 확인됐다.
식품제조·가공업체 가운데 1위는 CJ제일제당이 2조 7,127억 원으로 지난해에 이어 정상을 지켰다. 이어 농심이 2조 4,729억 원으로 2위에 올랐고, 롯데칠성음료(2조 3,038억 원), 롯데웰푸드(1조 9,366억 원), 오뚜기(1조 7,188억 원)가 뒤를 이었다.
눈에 띄는 기업은 삼양식품이다. 생산실적 1조 5,358억 원으로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최근 불닭볶음면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삼양식품의 약진은 K-푸드 수출 확대가 특정 품목을 넘어 기업 경쟁력 강화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평가된다.
이어 하이트진로(1조 4,751억 원), 동서식품(1조 1,482억 원), 대상(1조 964억 원)이 1조 원 클럽에 포함됐다.
축산물가공업체에서는 서울우유협동조합이 1조 2,749억 원으로 1위를 차지했으며, 롯데웰푸드가 1조 854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순위가 건강·편의·글로벌이라는 최근 식품산업의 핵심 키워드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상위권 기업들은 간편식, 라면, 건강지향 제품, 글로벌 수출 확대 등 최근 시장 성장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결국 2025년 식품산업 성적표는 '건강과 편의'라는 소비자 요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고, 이를 글로벌 시장으로 연결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장 속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K-푸드 수출 확대가 산업 성장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향후 기업 간 경쟁은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 주도권 확보 여부에 따라 더욱 뚜렷하게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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