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기자
- 승인 2025.12.29 07:56
“올해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식품업계 대부분 반응이다. 예년과 비교해 오히려 K-푸드의 전 세계적인 신드롬으로 외형면에선 호실적을 거뒀지만 식품업계는 유독 올해가 정말 힘들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만큼 심적으로 힘든 해였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올해 식품업계는 장기적인 경기 불황과 고물가에 따른 소비 침체로 인한 내수 시장의 실적 악화를 글로벌 시장을 통해 일정 부분 만회했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원료값 상승과 더불어 원료난, 여기에 갈수록 높아지는 각 나라의 무역 장벽과 고환율까지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이러한 대내외적인 환경과 제반비용 상승에 따른 가격 인상 요인의 근거가 충분했음에도 물가안정이라는 정부의 강력한 압박 속 오히려 물가상승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얻는 등 소위 ‘일할 맛 나지 않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또 제당·제분업계의 대대적인 가격 담합 조사와 세무조사가 진행되며 업계의 초긴장 모드가 지속됐고, 식품 안전사고가 도마 위에 올라 식품업계 전체가 부도덕한 곳으로 인식되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라면을 주축으로 한 K-푸드가 올해도 전 세계 이목을 사로잡아 사상 처음 농식품 수출액 100억 달러 경신을 앞두고 있으며, 특히 세계 최대 식품박람회인 ‘아누가’에서는 대한민국이 당당히 주빈국으로 함께 하는 역사적인 모습도 연출했다. 아울러 올해는 식품업계 세대교체 바람이 강하게 불었는데, 오너 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며 정체된 내수 시장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글로벌 트렌드에 대응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반면 지난 10여 년간 첨예한 대립을 세우던 GMO 논란은 ‘GMO완전표시제’를 주요 골자로 한 관련 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향후 식품업계의 또 다른 골칫거리로 작용될 가능성을 높게 만들었다.
본지는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를 되돌아보며 식품산업에서 주목을 받았던 ‘2025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원료난·고환율로 고전…물가 상승 주범으로 몰리기도

원료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고환율’이다. 코로나19 이후 사상 최악의 원료난으로, 원료값 상승과 수급 불안에 따른 생산 차질 등 문제에 고환율 여파까지 더해진 것이다.
고환율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내년 추진하려던 사업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12월 18일 현재 원·달러 환율은 1478원이다. 1년 전(1300원)과 비교해 10% 이상 올랐다. 1000억 원가량의 원료를 수입하는 곳에선 100억 원 이상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 셈이다.
이에 업계에선 원가 절감을 위한 생산 효율성 제고 방안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생산비 증가의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또 새로운 수입처를 발굴해 비용을 줄이거나 해외 현지 생산을 계획 중인 곳도 시기를 늦추거나 신규 설비 등 투자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식품업계는 국정 공백 속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는 이유로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경제 여건 악화 속에서도 정부의 물가안정 기조에 협력한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됐다며 정부의 반응이 아쉽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GMO 완전표시제’ 국회 통과…가격·원료 수급 등 과제

‘GMO완전표시제’가 국회 문턱을 넘었다. 지난 10여 년간 완전표시제 도입을 두고 첨예한 대립이 이어졌던 찬반 논란도 종결됐다.
개정안에 주요 골자는 유전자변형 원료 사용 시 제조 과정에서 DNA·단백질이 남지 않더라도 GMO 표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 식약처장이 정한 품목이라는 단서를 정했다. 식약처장은 식품위생심의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품목을 지정한다. 또 업계 준비 과정을 고려해 1년간의 유예기간을 뒀다.
식품업계는 법안 통과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제조공정상 DNA·단백질이 없는 경우 GMO 함유 여부를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음에도 표시대상이라는 것은 결국 non-GMO 원료를 사용하라는 것인데, 가격도 문제지만 수급 문제가 더 큰 과제로 남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 지적이다.
식약처는 이번 개정에 따른 사회·영향을 고려해 소비자단체 및 업계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 GMO 표시 대상 식품과 비의도적 혼입 비율 등을 정한다는 계획이다.
푸드플레이션 속 설탕·밀가루 담합 혐의 공정위 조사 곤혹

국무회의를 통해 “담합과 독과점 구조가 물가 상승의 배경”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식품업계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가격 담합 조사와 세무조사 진행의 도화선이 됐다.
타깃은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삼양사, 사조동아원, 대한제당 등 제당·제분업계다. 검찰과 공정위가 나섰다. 이들은 밀가루, 설탕 등 주요 원재료 담합이 서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민생 범죄로 규정해 엄정 대응 중이다.
업계는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환율 상승, 인건비 부담, 유가 인상 등 외부 요인으로 가격이 오른 것임에도 기업에만 책임을 묻고 있다는 지적이다.
환율은 1500원대를 향해 가고 있고, 유가와 물류비, 인건비 등 제반비용 모두가 상승하고 있는데, 정부가 외부 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만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식품기업의 영업이익이 4~5% 수준에 불과한데도 식품업계가 과도한 이익을 내고 있는 것처럼 옥죄는 것은 문제가 있고, 물가가 높다고 원인 규명보다 업계 가격만 통제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세계 최대 식품 박람회 ‘아누가’서 한국 주빈국으로 ‘우뚝’

10월 4일부터 닷새간 독일 퀼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식품박람회 ‘아누가 2025(ANUGA 2025)’의 주인공은 단연 ‘K-푸드’였다.
식품산업협회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의 결과는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다. 아누가에서 협회는 K-푸드 수출을 선도하는 13개사(남양유업, 농심태경, 대두식품, 대상, 롯데웰푸드, 롯데칠성음료, 빙그레, 샘표식품, 오리진고메, 영풍, 팔도, 풀무원, 하림)로 구성된 88개부스 규모의 ‘K-푸드 주빈국관’을 열고 K-푸드의 우수성과 위상을 전 세계에 널리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K-푸드 주빈국관’은 장류·김치 등 전통식품부터 떡볶이·김밥·라면·후라이드치킨 등 K-스트리트 푸드를 비롯해 푸드테크를 접목한 미래지향적 제품까지 과거-현재, 전통-미래, 현재-미래가 결합된 혁신적인 제품들을 동시에 선보여 박람회장을 찾은 약 16만여 명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말차’ 올해 식품업계 최고 인기 원료…제과 3사 신제품만 20여 개

올해 식품업계 신제품 동향을 한 단어로 설명하면 ‘말차’를 꼽을 수 있다. 올해 국내 제과업계 3사(오리온, 롯데웰푸드, 해태제과)에서 출시한 신제품 수만 20여 개에 달한다. 과거 커피를 대체하던 말차는 현재 베이커리, 제과, 주류 등 식품 모든 품목에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말차의 선풍적 인기는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트렌드와 맞물린 것이 주효했다. 말차는 항산화 물질이 풍부해 노화 지연, 암 예방, 혈압·콜레스테롤 수치 감소 등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업계가 말차에 집중하는 이유는 인기가 국내를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업체 더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에 따르면 세계 말차 시장 규모는 작년 38억4000만 달러(약 5조5000억 원)에서 오는 2029년 63억5000만 달러(약 9조1000억 원)로 65%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식품업계는 맛은 물론 기능성까지 갖춘 말차의 인기가 2026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식품업계 세대 교체…CJ·농심 등 오너 3세 경영 전면에

CJ·농심·삼양식품·SPC·오리온 등 식품업계 오너 3세가 경영 전면에 나섰다. 비교적 젊은 세대인 이들을 앞세워 정체된 내수 시장 한계를 극복하고, 동시에 글로벌 트렌드에 대응해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CJ는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 식품성장추진실장을 지주사 최상위 전략조직인 미래기획그룹장에 임명해 그룹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글로벌 식품 및 콘텐츠 투자 포트폴리오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게 했으며, 농심은 신동원 회장의 장남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을 부사장으로 임명, 신사업·글로벌 전략·M&A를 총괄하도록 했다.
SPC그룹은 허진수 사장을 부회장으로, 허희수 부사장을 사장으로 각각 임명했다. 허진수 부회장은 파리크라상의 최고전략책임자(CSO)와 글로벌BU(Business Unit)장으로 파리바게뜨의 글로벌 사업을 총괄해 왔고, 허희수 사장은 비알코리아의 최고비전책임자(CVO)로서 배스킨라빈스와 던킨의 혁신을 주도하며, 글로벌 브랜드 도입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등 신사업 추진을 이끌어 왔다.
오리온도 담철곤 회장의 장남 담서원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키고, 사업 전략·신사업 발굴을 비롯해 그룹의 중장기 성장 로드맵을 조율하도록 했으며, 삼양식품 역시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의 장손인 전병우 COO를 전무로 승진시켰다. 전 전무는 불닭볶음면 프로젝트를 기획·총괄한 그는 해외 매출 비중을 80%까지 끌어올린 인물이다. 삼양식품은 전 전무를 중심으로 글로벌 메가 브랜드인 ‘불닭’의 성장을 공고히 하고 미래 지향적인 경영 시스템을 확립해 나갈 계획이다.
식품업계 안전사고 경종 울려…스마트 공장 전환 앞당겨

지난 5월 경기도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여성 노동자가 기계에 끼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현장을 찾아 회사를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SPC삼립은 올 상반기 최대 히트작 ‘크보빵’ 생산을 중단했다. 사고가 발생한 공장은 크보빵의 주요 생산 공장이다. ‘크보빵’은 SPC삼립이 KBO와 협업해 출시한 제품으로, 프로야구 인기에 출시 41일 만에 1000만 봉을 돌파하는 등 고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얻었으나 이번 사고로 인해 소비자 불매운동 등 여론이 악화되자 내린 결정이다.
이후 SPC삼립은 노사 협의를 통해 연속근무를 줄이고 일부 라인에는 4조 3교대 시범운영을 도입하기로 조치했으며, 약 30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해 충북 음성에 스마트 공장을 짓기로 했다. '안전'에 방점을 둔 역대 최대 규모의 혁신 제조 공장으로, 오는 2028년 준공이 목표다.
식품산업협회‘ 父子 협회장’ 탄생 화제…부회장 인선은 난항

박진선 샘표 대표가 식품산업협회 제23대 회장에 당선되며 부친인 박승복(15대~17대) 전임 협회장에 이어 ‘부자 협회장’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하지만 회장 선거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두 명의 후보자가 나서며 선출 방식에 따른 정관 개정 문제 등으로 회장 선출 시간에만 5개월가량 이어져 협회 사업 차질이 발생했고, 선거 과정의 미흡한 대처로 인해 협회는 회원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 식품기업의 신뢰를 잃기도 했다.
현재는 박진선 회장을 필두로 빠르게 안정화가 돼가고 있지만 이번엔 부회장 선출건에 대한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협회는 공모와 이사회를 통해 재계 출신 P씨를 선임해 주목을 끌었지만 식약처가 감사 결과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며 협회는 식약처의 권고를 수용해 상근 부회장 재공모쪽으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헬시 플레저’ MZ세대에 확산…‘프리미엄 간편식’ 확대 견인

올해 식품 소비 트렌드는 맛있고 즐겁게, 그리고 간편하게 건강을 챙기는 ‘헬시플레저(Healthy Pleasure)’가 가장 강력한 키워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이 트렌드는 ‘고통 총량의 법칙’처럼 여겨졌던 기존의 건강 관념을 허물고, ‘지속 가능한 즐거움’이야말로 건강을 유지하는 핵심 동력이라는 사실을 시장에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칼로리를 낮추는 것을 넘어 설탕은 빼고 달콤함은 살리고(Zero Sugar), 부족한 단백질은 맛있게 채우며(High Protein), 자신의 신념과 취향에 따라 채식을 즐기는(Vegan/Flexitarian) 등 적극적으로 건강한 즐거움을 탐색하고 있다. 식품 시장은 이들의 똑똑하고 까다로운 요구에 응답하며 유례없는 혁신과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1인 가구의 급증 역시 헬시플레저 시장의 성장을 이끈 중요한 동력이다. 직접 요리하기보다 간편식을 선호하는 1인 가구 소비자들은 HMR(가정간편식)이나 배달 음식을 선택할 때에도 영양 성분과 원재료를 꼼꼼히 따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수요는 ‘건강하고 맛있는 프리미엄 간편식’ 시장의 확대를 견인했다.
라면 수출 올해도 두 자릿수 증가…K-콘텐츠 활용 마케팅 주효

전 세계 ‘K-라면’ 신드롬을 일으키며 작년 사상 첫 수출액 10억 달러(12억4850만 달러)를 돌파한 라면이 올해도 전년 대비(11월 기준) 23% 증가한 12억55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젊은층을 겨냥한 인기 K-콘텐츠 활용 마케팅과 온·오프라인 유통망 확장을 통해 중국, CIS, 일본, 미국 순으로 전년 대비 수출이 크게 증가했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54.4% 증가한 3억1930만 달러를, 미국 2억1420만 달러(21.3↑), 아세안 1억8650만 달러(14.4↑), CIS 6700만 달러(43.8↑), 일본 6420만 달러(24.0↑) 등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
이런 가운데 삼양식품은 식품업계 처음으로 ‘9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다. 삼양식품은 해당 기간(2024년 7월~2025년 6월) 9억7000만 달러(약 1조4253억 원)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삼양식품은 불닭볶음면을 중심으로 해외 주요 지역에 판매법인을 설립하고 생산 시설을 확충하는 등 수출 기반을 강화하면서 삼양, 탱글 등 제품군을 넓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삼양식품은 100여 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해외 매출 비중은 약 80%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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