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분석,동향

저속노화 돕는 ‘슴슴한 맛’ 새로운 미식 기준

곡산 2025. 12. 18. 06:14
저속노화 돕는 ‘슴슴한 맛’ 새로운 미식 기준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12.17 07:56

주식인 빵·면 부문 두각…HMR·도시락도 출시
2030세대 햇반 흑미·곤약밥 등 잡곡 구매 급증
탄수화물 줄이려는 ‘면러버’ 통밀·두부면 애용
디저트, 무설탕 제로 쿠키·순식물성 빵 등 선호
 

자극적인 맛을 좇던 식품·외식 업계의 시계바늘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2024년 의료계에서 점화된 ‘저속노화(Slow Aging)’ 담론이 2025년 현재 식품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꾸고 있다.

 

과거 스트레스 해소의 창구였던 마라탕, 탕후루 등 ‘맵고 단’ 초가공식품의 유행이 저물고, 혈당 변동성을 최소화해 건강수명을 늘리는 이른바 ‘슴슴한 맛’이 새로운 미식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2030 세대를 중심으로 급격한 혈당 상승(혈당 스파이크)이 야기하는 무기력증과 가속 노화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편의점과 마트의 골든존(Golden Zone) 역시 자극적인 제품 대신 저당·통곡물 식품으로 빠르게 교체되고 있다.

 

저속노화의 핵심은 ‘혈당 스파이크’ 방지다. 기업들은 단순한 다이어트 식품이 아닌, 뇌 건강과 노화 지연을 위한 솔루션으로 제품 라인업을 재편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한국인의 주식인 ‘밥’과 ‘면’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제 탄수화물을 줄이고 통곡물 섭취를 늘리려는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음식 대신 혈당 변동성을 최소화하는 ‘저속노화’ 식단이 식품업계의 새로운 뉴노멀로 자리 잡았다. 사진은 급격한 신체 노화(가속노화)를 걱정하는 소비자를 위해 출시된 주요 저당·통곡물 신제품들.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하림 The미식 귀리쌀밥, CJ제일제당 햇반 라이스플랜(정희원 교수 협업), 롯데웰푸드 제로, 라라스윗 저당 아이스크림, 풀무원 지구식단 병아리콩 곤약면. (사진=각 사)
 

CJ제일제당 ‘햇반’은 ‘서리태 흑미밥’ ‘렌틸콩퀴노아 곤약밥’ 등 웰니스 즉석밥 라인업을 강화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저속노화 전도사’로 불리는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교수와 공동 개발한 ‘햇반 라이스플랜’은 출시 직후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제품군은 2025년 9월 말 기준 누적 판매량 1000만 개를 돌파했으며, 9월 월간 매출이 연초(1~8월 평균) 대비 50%나 급증하며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했다. CJ제일제당 측은 해당 라인업이 연 매출 700억 원 규모의 메가 브랜드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하림 ‘The미식(더미식)’ 역시 백미 함량을 대폭 줄인 ‘귀리쌀밥’ ‘메밀쌀밥’ 등 통곡물 라인업을 확대했다. 하림산업의 즉석밥 매출은 2025년 상반기에만 114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70% 급증하는 등 밥만 바꿔도 건강 관리가 가능하다는 소구 포인트가 시장에 적중했음을 입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잡곡밥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으나, 최근 1년 새 2030 구매 비중이 40% 이상 급증했다"며 "젊은 층이 '밥'부터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은 저속노화가 일시적 유행을 넘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면 시장에서는 풀무원의 행보가 돋보인다. 풀무원은 밀가루를 대체하는 ‘식물성 지구식단’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확장 중이다. 특히 두부면과 통밀면은 파스타나 국수를 끊지 못하는 ‘면 러버’들에게 대체재로 자리 잡으며, 정제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려는 ‘저속노화 실천러’들의 필수품이 됐다.

 

실제 풀무원은 ‘지구식단’ 등 식물성 혁신 제품의 약진에 힘입어 2025년 3분기 매출 8884억 원, 영업이익 381억 원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새로 썼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6.6%, 영업이익은 14.4% 증가한 수치다. 풀무원 측은 “식물성 지향 제품과 2030세대를 겨냥한 신제품 출시가 불황 속에서도 매출 확대와 수익성 개선을 이끌었다”고 밝혔다.

 

‘디저트는 노화의 지름길’이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 ‘저당’ ‘통밀’ ‘글루텐 프리’를 내세운 제품들도 쏟아지고 있다.

 

롯데웰푸드의 무설탕 디저트 브랜드 ‘제로(ZERO)’는 쿠키와 모나카에 이어 젤리, 아이스크림까지 카테고리를 전방위로 확장했다. “설탕 제로”를 넘어 혈당 관리에 민감한 2030 ‘얼리 안티에이징족’을 겨냥해 ‘죄책감 없는 달콤함’을 선사한다는 전략이다. 제로 브랜드는 2024년 연 매출 500억 원을 넘어서며 론칭 2년 6개월 만인 2025년 초 누적 매출 1000억 원을 달성했다. 신세계푸드의 식물성 대안식 브랜드 ‘유아왓유잇(You are What you Eat)’은 동물성 지방과 정제당을 뺀 순식물성 빵과 디저트를 출시하며, 가치 소비와 건강한 식습관을 동시에 잡았다.

 

접근성이 좋은 편의점(CU, GS25) 매대 역시 바뀌었다. 저당 아이스크림 ‘라라스윗’의 대히트 이후, 연세우유 크림빵의 ‘저당 버전’ 등 PB 상품들이 잇따라 출시됐다. 특히 라라스윗은 CU 편의점에서만 2024년 한 해 동안 약 1800만 개가 판매되며 전년(350만 개) 대비 5배 이상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편의점의 주 고객층인 잘파세대(Z+Alpha)가 자극적인 맛에서 오는 ‘도파민 디톡스’에 관심을 갖자, 접근성 높은 저당 간식으로 이들을 공략한 것이다.

 

액상과당이 노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음료 시장에서는 ‘식물성’과 ‘기능성’이 키워드로 떠올랐다. 특히 카페와 유업계에서는 '우유 지우기'가 한창 진행되면서 식물성 음료가 커피 전문점의 기본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동물성 지방과 유당 대신 식이섬유가 풍부한 귀리 음료를 선택해 혈당 스파이크를 막으려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에 매일유업은 ‘어메이징 오트’와 ‘아몬드 브리즈’의 ‘언스위트(무가당)’ 제품군 마케팅을 강화하고 대용량 제품을 선뵀다. 저속노화 식단의 필수 영양소인 식물성 단백질과 불포화 지방의 주요 공급원으로 포지셔닝한 덕분에, SNS상의 식단 인증샷에는 우유 대신 오트밀크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탄산음료 업계 또한 단순한 ‘제로 칼로리’를 넘어,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 등을 함유해 혈당 상승 억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능성 표시 식품’ 라인업을 늘리고 있다.

 

가정간편식(HMR)과 도시락 분야에서는 저속노화 식단을 그대로 구현한 제품들이 인기다. 현대그린푸드 ‘그리팅’은 ‘저당 식단’ ‘장수마을(블루존) 식단’ 정기 구독 서비스를 통해 나물과 통곡물 위주의 한식 반찬을 제공한다. 집에서 일일이 챙겨 먹기 힘든 저속노화 식단을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어 호응이 높다. 편의점 도시락 역시 밥 양을 줄이고 두부, 닭가슴살, 나물 반찬 비중을 높인 ‘비빔밥’ 류나 ‘프로틴 도시락’을 전면에 배치하며, “한 끼를 먹더라도 몸을 생각하는” 2030세대의 ‘갓생(God+生)’ 트렌드와 결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저속노화 트렌드가 2026년에는 더욱 정교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단순한 '저당(Low Sugar)'을 넘어, 개개인의 대사 건강을 고려한 '맞춤형 식단'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속노화 트렌드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2025년 식품 시장의 핵심 생존 키워드가 됐다”며 “앞으로도 맛과 건강, 간편함을 모두 잡은 ‘3-Less(설탕, 탄수화물, 가공 최소화)’ 제품 개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