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12.04 07:53
공급망 안정화·농가와의 상생에 탄소 배출 줄여 ESG 경영
미식 여행 심리 작용 스토리 있는 음식 선호
대기업 넘어 자영업자 골목 상권으로 확산
맥도날드 ‘한국의 맛’ 창녕버거 등 성공 사례
뚜레쥬르 사과 파이·파리바게뜨 감자빵 등도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국내 식품·외식업계가 ‘로컬(Local, 지역)’에서 새로운 생존 해법을 찾고 있다. 과거 로컬 푸드가 단순히 ‘신선한 재료’를 강조하는 마케팅 수단이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불안정한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을 방어하고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를 추구하는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한 핵심 경영 전략으로 진화했다.

최근 식품업계가 국산 식재료 비중을 공격적으로 늘리는 가장 큰 이유는 ‘공급망 안정화’다. 국제 곡물 가격 급등과 환율 변동성 확대 등 대외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수급이 안정적이고 유통 경로가 짧은 국산 식재료가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탄소 배출을 줄이는 ‘푸드 마일리지’ 감소 효과와 지역 농가와의 상생이라는 ESG 경영 가치가 더해져 로컬 푸드는 기업의 필수 선택지가 됐다. 소비 주축으로 떠오른 MZ세대 역시 자신의 소비가 지역 사회에 기여한다는 점에 지갑을 여는 ‘가치 소비’ 성향을 보이며 기업들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기업을 넘어 골목상권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실제로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로컬 네이밍’은 치열한 배달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치트키로 통한다.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메뉴명에 지역명이 포함된 이른바 ‘로컬 키워드 메뉴’를 판매하는 가게는 약 20만 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뚜렷한 증가세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겁다. 단순히 지역명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해당 지역의 특색이 담긴 식재료 이야기와 생산자 정보까지 꼼꼼히 확인하는 추세다. 소비자들이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 메뉴 이름에 담긴 지역의 ‘스토리’를 소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음식 하나를 먹더라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는 ‘미식 여행’ 심리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기업 차원의 전략은 구체적인 경영 성과로 입증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한국맥도날드의 ‘한국의 맛(Taste of Korea)’ 프로젝트다. ‘창녕 갈릭 버거’ ‘진도 대파 크림 크로켓 버거’에 이어 보성 녹차잎 사료를 먹인 돼지를 활용한 ‘보성 녹돈 버거’까지 연이어 히트시켰다. 맥도날드에 따르면 이 시리즈의 누적 판매량은 2025년 9월 기준 3000만 개를 돌파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매입한 지역 특산물 양만 1000톤이 넘으며 지난 4년간 약 617억 원 규모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스타벅스 코리아 역시 ‘이천 햅쌀 라떼’ ‘문경 오미자 피지오’ 등 로컬 특화 음료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 특히 전남 고흥산 유자를 활용한 ‘유자 민트 티’는 5년간 누적 매출 1300억 원 판매량 2400만 잔을 기록하며 효자 상품에 등극했다. 스타벅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소상공인 카페에 ‘옥천 단호박 라떼’ 등 상생 음료 레시피를 무상으로 공유하며 생태계 확장에도 나섰다.
최근에는 특정 지역 매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화 메뉴’ 전략으로 ‘빵지순례’ 트렌드까지 주도하고 있다. 여수 돌산, 제주 송당 등 특화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여수 바다 자몽 피지오’나 ‘춘천식 닭갈비 샌드위치’ 등은 일반 메뉴보다 가격대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방문객 10명 중 1명이 구매할 정도로 인기다. 희소성을 앞세운 로컬 푸드가 소비자를 해당 지역으로 불러모으는 강력한 유인책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상그룹은 민관 협력 모델로 로컬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있다. 대상그룹은 최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와 손잡고 ‘2025 대한민국 지방시대 엑스포’에서 ‘5극3특 미식회’를 열었다. 이연복 등 스타 셰프와 협업해 영양 고추, 의성 마늘, 양구 곰취 등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한정 메뉴를 선뵀는데, 사전 예약 200인분이 조기 마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는 대상그룹이 2023년부터 진행해 온 ‘지식존중(지방의 식자재를 존중)’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역의 식재료를 활용해 해당 지역을 ‘가보고 싶은 곳’으로 브랜딩한다는 점에서 단순 판로 지원을 넘어선 진화된 상생 모델로 평가받는다.
제과·제빵 업계와 커피 프랜차이즈 등 외식업계 전반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SPC그룹 파리바게뜨는 ‘행복상생 프로젝트’를 통해 코로나19로 판로가 막힌 농가를 지원하며 ‘강원도 감자빵’ ‘무안 양파빵’ 등을 선뵀다. 특히 제주와 가평 지역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제주 마음샌드’ ‘가평 맛남샌드’는 희소성 마케팅으로 ‘오픈런’ 현상까지 유발했다.
CJ푸드빌 뚜레쥬르도 ‘남해 마늘 듬뿍 갈릭 브레드’ ‘예산 사과 파이’ 등을 출시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렸다. 남해 마늘의 알싸한 맛이나 예산 사과의 단맛 등 지역 농산물 특징을 제품 네이밍과 마케팅 포인트로 적극 활용한 점이 적중했다.
저가 커피 시장의 강자 메가MGC커피 역시 ‘지역 상생’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다. ‘장수 오미자’ ‘청도 홍시’ ‘공주 알밤’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가 가성비와 맛을 모두 잡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젊은 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최근 여주시와 협업해 출시한 ‘대왕님표 여주쌀’ 활용 메뉴(‘누룽누룽 바삭 프라페’ ‘매콤 비빔주먹빵’)는 누적 판매량 75만 개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메가MGC커피 측은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해당 시즌 메뉴의 판매 기간을 올 연말까지 전격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국산 식재료에 대해 갖는 ‘프리미엄’과 ‘안전함’이라는 인식이 강력하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로컬 푸드 활용은 원재료 수급 리스크를 줄이고 브랜드 진정성을 호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라고 분석했다.
이제 로컬은 변방이 아닌 중심이다. 지역의 토양에서 자란 식재료가 글로벌 기업의 생존 전략이자 미래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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