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3대 제과회사는 왜 용산에 본사가 있을까
이덕주 입력 2018.01.11 06:03
[식품야사-3] 지난 11월 크라운해태제과 본사를 찾아갔다가 오리온 본사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롯데지알에스(롯데리아)도 본사가 크라운해태제과 근처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 남영역 바로 오른쪽에 있는 곳이 롯데지알에스의 본사이고 그 오른쪽이 해태제과의 본사입니다. 거기서 좀 남쪽으로 가면 용산등기소 바로 앞에 있는 곳이 오리온 본사입니다.
그런데 롯데 사람들로부터 롯데지알에스 사무실이 과거 롯데제과의 본사 건물이었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롯데제과가 양평동으로 옮겼고 롯데지알에스가 그곳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얘기를 듣고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나라 제과 3사의 본사가 왜 다 용산에 있을까? 긴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제과 3사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말 그대로 과자를 만드는 회사들인데요. 우리나라에는 과자 회사가 크게 3곳이 있습니다. 크기 순서로 따지면 롯데제과, 오리온, 크라운해태 순서입니다. 과자 이름으로 구분을 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자일리톨 껌, 후라보노, 칸쵸, 가나초콜릿, 빼빼로, 요하이, 카스타드, 제크, 칙촉, 마가렛트, 후레쉬베리, 스크류바, 설레임, 월드콘, 죠스바, 몽쉘, 꼬깔콘, 목캔디 => 모두 롯데입니다.
▲초코파이, 카스타드, 오뜨, 포카칩, 오징어땅콩, 스윙칩, 통크, 고래밥, 후라보노, 마이구미, 아이셔, 핫브레이크 => 오리온입니다.
▲허니버터칩, 오예스, 에이스, 연양갱, 자유시간, 후렌치파이, 자유시간 => 해태입니다.
▲크라운산도, 초코하임, 참크래커, 뽀또, 쿠크다스, 버터와플, 빅파이, 콘칩, 죠리퐁, 마이쮸 => 크라운입니다.
사실 크라운과 해태는 두 개의 브랜드를 갖고 있지만 인수·합병으로 인해 이제는 같은 회사입니다.
물론 편의점에서 우리가 접하는 과자들 중에는 더 많은 회사들이 있습니다. 농심처럼 과자도 만드는 식품회사가 있고 허쉬 같은 외국 과자 회사도 있고, 브랜드는 없지만 해외에서 직수입한 과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과를 본업으로 한다고 꼽을 수 있는 대기업이라면 이 세 곳입니다.
제과회사들에 왜 본사가 그곳에 있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은 "처음 세워질 때부터 그곳에 있었고 자리를 옮기기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왜 용산에 본사를 만들었느냐가 중요한 것인데요. 대략 설명은 이랬습니다. 과거에는 본사 옆에 공장도 있었는데 철도(용산역)를 통해 제품을 전국으로 보내기 좋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뭔가 명쾌한 답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오리온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오리온의 모태가 된 것은 1930년대에 만들어진 일본 기업인 풍국제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위치가 바로 풍국제과가 있던 그 자리라는 것이지요.
1975년 2월 17일 매일경제 신문의 시리즈 기사인 '산업인맥 : 식품공업 제과업계'편에는 이런 얘기가 나옵니다.
해방 전 서울에는 8개의 제과업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영강제과(남영동), 경성제과(갈월동), 장곡제과(후암동), 대서제과(용문동), 궁본제과(용산경찰서 앞), 기린제과(공덕동), 풍국제과(삼각지), 조선제과의 여덟 곳입니다. 대부분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곳인데 위치가 모두 지금의 용산 지역입니다. 다른 많은 산업에서처럼 일본인들이 경영하던 곳을 한국인들이 불하받게 되었고 이 중 영강제과가 해태제과가 되었고 풍국제과가 오리온이 되었습니다.
용산에 제과회사들이 몰려 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추정되는데요. 첫째는 일제시대 때 용산이 서울의 대표적인 일본인 거주지였기 때문입니다. 용산역을 기준으로 왼쪽에 모토마치(지금의 원효로 일대)라고 부르는 일본인 거주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과회사들은 대부분 일본인이 경영했고, 또 그 고객도 소득수준이 높은 일본인이었습니다. 그러니 용산 쪽에 있는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하나는 용산역을 기준으로 오른쪽, 지금 미군 기지가 있는 위치에 일본군 기지가 있었는데요. 제과회사들이 일본군에 납품을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해태제과의 모태인 영강제과는 일본군에 양갱과 캐러멜을 납품했다고 합니다. 용산역 일대는 서울의 대표적인 공장지대였다고도 합니다.
해방 후인 1947년에 만들어진 크라운제과는 영일당제과라는 이름으로 중림동에서 시작을 했는데요. 이 회사가 2005년 해태제과를 인수하면서 과거 해태제과 본사를 통합 크라운해태제과의 본사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본사는 여전히 용산에 남았습니다.
롯데제과의 경우 1967년 성공한 재일기업가인 신격호 현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한국에 진출하면서 처음 만든 회사였는데요. 다만, 이때 왜 용산구 갈월동에 공장을 지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다른 제과회사들이 용산에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데요. 롯데제과는 1969년에는 양평동(지금의 롯데제과 본사)에 공장을 짓고 본사를 옮기게 됩니다. 이때는 해태제과도 양평동에 본사와 공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요약해 보자면 "우리나라 제과회사들은 옛날 일제시대 일본 제과회사를 해방 후 물려받아 출발한 곳이 많은데 그 회사들이 여전히 용산에 있었다"가 답이 될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회사들이 처음 출발한 그 위치를 팔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는 건데요. 심지어 오리온은 1930년대 풍국제과의 그 자리를 아직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용산이 지금처럼 뜰 줄 알고 장기 보유했다고 하기에는 이들 기업의 문화가 독특해 보입니다.
긴 역사에서 알 수 있는 제과회사들의 특징은 쉽게 망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먹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입맛은 보수적입니다. 익숙한 것, 어렸을 때 먹던 것, 많이 보이는 것에 손이 갑니다. 위에서 언급한 제과회사들의 브랜드 중에는 40년 이상, 길게는 60년이 넘은 것도 있습니다. 기업은 망해도 과자 브랜드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는 외국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일단 한번 대기업이 된 과자 회사들은 쉽게 망하지 않습니다. 마즈(1911년 설립), 허쉬(1894년 설립) 같은 회사들이 대표적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제시대 일본에 본사와 공장을 두고 서울에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하던 일본 대형 제과회사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삼영(森永)제과, 명치(明治)제과인데요. 이 회사들은 각각 1899년, 1916년에 만들어져 지금도 일본의 대표적인 제과회사로 남아 있습니다. 바로 모리나가와 메이지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과회사들도 망합니다. 왜냐면 과자만 만들지 않고 다른 사업으로 확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다가 경제위기가 오면 아무리 큰 기업도 쉽게 망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인에게 경영이 넘어간 것을 창립으로 따지면 가장 먼저 시작된 회사는 해태제과입니다(1945년). 그리고 2년 후인 1947년 크라운제과의 전신인 영일당제과가 만들어졌고, 1956년 동양그룹의 창업자인 이양구 회장이 풍국제과(현 오리온)를 인수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으로 따지면 글로벌 외국기업 격인 롯데제과가 1967년 한국에 상륙합니다.
해태제과는 과자에서 시작해 재벌그룹이 되지만 1997년 IMF 때 망합니다. 그리고 후발주자인 크라운제과에 인수됩니다. 식품산업 외에도 해태그룹은 해태주조(양주), 해태전자, 해태유통(현 킴스클럽), 해태중공업, 해태건설 등 다양한 사업에까지 손을 뻗쳤었다고 합니다.
크라운제과는 해태제과처럼 다른 산업에 기웃거리지 않고 제과제빵에만 집중합니다. IMF 때 한번 망하기는 했지만 재기에 성공해 해태제과를 인수합니다.
오리온이 속한 동양그룹은 창업주가 세상을 떠난 후 첫째딸과 둘째딸에게 나눠지는데 첫째딸이 물려받은 동양그룹은 2013년 사업 실패로 공중분해됩니다. 반면 둘째딸이 물려받은 오리온은 제과에만 집중해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해외사업만 봐서는 롯데 못지않은 강자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롯데제과는 우리도 알다시피 롯데그룹이 됩니다. 이제 삼성, 현대차, LG, SK에 이어 5번째로 큰 재벌그룹이 됩니다. 하지만 롯데는 기업으로서는 성공적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행한 일을 겪었습니다. 두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두고 다툼을 벌였고 결국 아버지와 두 아들을 포함해 모두 검찰의 조사를 받고 사법처리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스토리는 별도의 식품 야사로 자세하게 소개할 예정입니다.
< 상미당(賞美堂)을 아시나요? >
제과회사 얘기를 하면서 제빵회사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과제빵은 마치 한 단어처럼 움직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이스트를 사용하면 제빵, 사용하지 않으면 제과라고 합니다. 서양식 제과제빵문화에서는 파티시에가 모두 빵과 과자를 만들지만 대량생산에서는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롯데제과처럼 빵을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제과회사와 제빵회사들은 명확히 영역이 나눠져 있습니다.
해태제과가 만들어진 1945년 상미당이라는 빵집이 북한 옹진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이 회사는 옹진에서 성공을 거두고 1948년 서울로 진출하는데 성장을 거듭하던 이 회사는 1959년 '삼립산업제과'로 이름을 바꾸고 빵을 대량생산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삼립이 '파리바게뜨'로 유명한 'SPC그룹'이 됩니다. SPC그룹은 제빵산업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빵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파티시에가 장인 정신을 들여 반죽을 하고 하나하나 구워내는 빵을 상상합니다. 셰프가 요리하는 고급 레스토랑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빵은 공장을 거친 대량생산용입니다. 우리가 먹는 대부분의 과자가 공장에서 만들어진 과자인 것과 마찬가지로 빵도 공장에서 만들어집니다. 파리바게뜨에서 파는 빵도 공장에서 만들어낸 생지를 매장에서 굽기만 하는 '반제품'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마트에서 파는 빵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정도 반제품인 상태의 빵을 마트에서 굽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공장을 통해 만들어지는 빵은 나쁜 걸까요. 물론 정말 맛있는 장인의 빵은 양산형 제품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대량생산은 빵의 가격을 낮추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파리바게뜨에서 운영하는 파리크라상이나 패션5 같은 매장은 반죽부터 굽는 것까지를 직접합니다. 그러나 그만큼 가격이 더 비쌉니다.
밀도라는 식빵 전문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손지호 어반라이프 대표는 이런 얘기를 한적이 있습니다. 서양은 빵의 역사가 수제부터 시작해서 대량생산을 통한 기업화로 갔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방향이 반대라고 말입니다. 삼립에서 나오는 소위 대량생산되는 공장빵을 접했고 그다음에 반제품인 파리바게뜨 빵을 접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소위 대기업 빵, 프랜차이즈 빵에 대한 반감이 커져가는 것은 이런 흐름에 있다는 그의 말이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이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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