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시사

[경향신문의 경향 비평]근거 두루뭉실한 기사 ‘과장 보도’ 위험

곡산 2008. 10. 20. 09:16

[경향신문의 경향 비평]

 

근거 두루뭉실한 기사 ‘과장 보도’ 위험

입력: 2008년 10월 19일 17:23:47
 
ㆍ소비자·국민·몇몇 단체 표현은 너무 막연
ㆍ‘멜라민 과자’ 반응 구체적 개별 의견 필요

근거가 미흡한 기사는 온전한 기사가 아닙니다. 제대로 된 기사는 기사의 요점에 대한 근거를 담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근거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구체적이지 않은 근거는 근거로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라고 썼다면 누가 보더라도 대부분의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개별 국민 몇 사람이나 몇몇 단체의 반응만을 제시하면서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라고 쓰는 것은 과장이며 오보입니다.

10월6일 15면 <“먹을 과자가 없다” 소비자 불안 확산> 기사는 그 같은 사례 중 하나입니다. 국내 굴지의 제과업체와 세계적 식품업체를 포함한 8개 과자업체의 10개 제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소비자들 사이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멜라민이 검출된 10개 제품의 이름과 해당 제품을 만든 회사 이름을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그 회사들의 대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사 제품의 멜라민 검출 발표를 믿지 못하겠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청 검사 결과에 반발하는 일부 회사의 반응도 나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소비자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의 요점과 관련된 내용은 ‘소비자들이 과자를 못 믿겠다는 극단적 반응까지 보이고 있다~’는 문장이 전부입니다. 학부모나 어린이 등 다양한 개인을 등장시켜 멜라민 때문에 과자에 대해 불안해 하는 심리를 소개하는 대신 ‘소비자’라는 뭉뚱그린 용어를 사용해 근거가 미흡함을 드러내줍니다.
모든 기사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소비자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는 기사를 쓰려면 실제로 불안해 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음을 기사에서 증명해야 한다. 사진은 멜라민 공포가 확산되던 지난달 26일 서울남대문 시장 내 한 가게에서 시민이 과자봉지에 적힌 원산지를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10월14일치 10면 <국민연금은 미납·건보료는 꼬박꼬박…소득 이중신고 스타·전문직들 ‘얄팍한 셈법’> 기사도 근거가 미흡합니다. 국민연금을 장기간 내지 않은 유명 스포츠 스타, 연예인, 전문직 종사자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이 건강보험료는 미납하지 않고 꼬박꼬박 내고 있다는 국감자료를 인용해 ‘혜택만 챙기는 도덕적 해이의 사례’라는 국회의원의 평가를 그대로 기사화한 것입니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잘 안 내고 건보료는 꼬박꼬박 낸다고 해서 혜택만 챙기는 도덕적 해이를 보이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국민연금은 정부의 빗나간 예측과 관리 잘못으로 지급액이 줄어들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납부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병원 이용이 잦기 때문에 국민연금보다는 건보료를 내는 데 더 적극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황일 뿐입니다. 스타·전문직들이 ‘얄팍한 셈법’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려면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서울 지역의 국제중 내년 개교가 오리무중에 빠졌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국제중을 설립하려 하고 있지만 설립계획에 대한 승인권을 가진 서울시교육위원회는 이를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오보가 나왔습니다. 10월16일 1면 <국제중 내년 개교 ‘무산’> 기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기사는 서울시교육위원회가 서울시교육청이 낸 ‘특성화중학교 지정동의안’에 대해 승인을 무기한 보류키로 한 소식을 전하면서 이 때문에 내년 3월 개교할 예정이던 서울 2곳의 국제중 설립계획이 사실상 무산됐다는 게 뼈대입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그 다음날 서울시교육위원회의 결정을 무시하고 국제중 내년 개교를 강행키로 했습니다. 서울시교육위원회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이 교육위원회의 동의가 없더라도 국제중 설립을 추진하는 것은 법리적으로 가능합니다. 다만 서울시교육청이 여론과 절차, 선례를 무시하고 강행할 것인지는 미지수입니다. 따라서 서울 국제중 내년 개교는 아직 오리무중인 상황입니다. 10월16일 기사는 국제중 내년 개교가 무산위기에 빠졌다는 정도로 작성되고 제목도 그 같은 취지로 다는 게 좋았습니다.

10월7일치 11면 <재외국민은 건강보험 ‘무임승차’> 기사는 국내 의료기관에서 치료받은 재외국민 숫자가 최근 5년 동안 2배가량 증가했다는 국감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재외국민은 건강보험료를 1개월치만 납입해도 국내 가입자와 동일한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설명도 기사에는 나와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한 재외국민은 1만9666명으로 570만명으로 추정되는 전체 재외국민의 0.4%도 안 됩니다. 모든 재외국민이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제목은 과합니다. <건강보험 ‘무임승차’ 재외국민 크게 늘어> 정도로 제목을 달았으면 기사 내용에 부합하는 제목이 됐을 겁니다.

<조호연 기획·탐사에디터 chy@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