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시사

[소비자는 억울해③] 정부대책은 '풍성', 실효성은 '빈곤'

곡산 2008. 3. 31. 17:29
[소비자는 억울해③] 정부대책은 '풍성', 실효성은 '빈곤'
식품사고 잇단 제보, 국민들의 불신 여전
[메디컬투데이 김태형 기자]
'생쥐머리 새우깡' 파문으로 촉발된 식품 이물질 파동은 시간이 갈수록 사그라들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제보에는 불이 붙었다.

철원에서는 2홉(360㎖)들이 소주병에서 이물질이 나왔고, 유명 즉석밥에선 곰팡이가, 김치에서 음모로 추정되는 또다른 이물질이 섞여 있다는 등의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다.

물론 일부는 불량식품을 찾아내 신고하고 보상금을 노리는 '식파라치'(식품과 파파라치의 합성어)나 과도한 보상을 요구하며 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악덕 소비자(블랙컨슈머), 그리고 더 나아가 거짓으로 이물질을 첨가한 뒤 보상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잇단 제보들에 대해 그동안 참아왔던 먹을거리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도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지만 지나치게 소비자의 신고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눈길 끄는 집단소송제, 식품이력추적제

복지부는 최근 '새우깡 이물 검출'을 계기로 식약청이 중심이 돼 마련한 대책을 대통령 업무보고의 긴급 현안과제로 보고했다. 식약청 역시 곧바로 식품 제조 및 유통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물질 혼입 방지대책을 내놨다.

이번 대책의 가장 큰 특징은 소비자 신고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소비자들의 대량피해 발생시 '집단소송제'를 보장한다는 점이다.

식약청에 '소비자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소비자가 업체에 불만신고(클레임)를 제기하면 식약청에 이를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또한 위해발생 우려가 있는 신고를 접수할 경우, 즉시 언론에 공표하고 유통·판매업자에 대한 판매중지 등 신속경보를 발령, 긴급조사를 실시해 위해우려가 있는 때에는 영업장 폐쇄, 긴급 회수명령 등 행정적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동일 식품 섭취로 다수인에게 피해가 발생할 경우 1인 또는 다수가 대표가 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식품 집단소송제'도 도입키로 했다.

무엇보다 위해식품을 상습적으로 제조하거나 이를 은폐하려 한 영업자에 대해 영업장 폐쇄 등 강력한 행정조치 등을 통해 시장에서 퇴출시킨다는 계획이다.

특히 고의, 상습적인 식품위해사범에 대해서는 영업장 폐쇄, 형량하한제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이로 인해 얻은 이익의 전부를 빼앗는 부당이득환수제를 도입키로 했다.

이어 오는 6월께부터는 위해식품의 원인규명, 신속 회수 등을 위해 식품 제조·가공, 판매단계의 정보를 관리하는 식품이력추적관리제도가 실시된다.

이물질 혼입을 방지하기 위한 식품업체 자체의 시스템을 갖추는 방안도 함께 내놨다.

오는 8월부터 금속검출기, X-ray투시기 설치 및 방충·방서시설 강화 등 시설기준을 보완하며, 식품 이물 검사방법·주기, 관리요령 등 식품이물관리기준과 식품운반, 저장, 진열, 보관 등 유통업소의 식품취급 관리요령을 마련키로 했다.

아울러 사전예방적 식품안전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HACCP(위해요소 중점관리기준) 제도를 확대하고, 중소업체가 쉽게 적용할 수 있는 HACCP 모델을 오는 4월까지 개발·보급키로 했다.

◇ 대책만 있고 액션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식품 집단소송제', '소비자 신고센터', '식품이력추적관리제' 등을 통해 시스템화하기 위한 대책도 중요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악화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서둘러 정책부터 발표하기는 했지만 정작 이를 위해 필요한 예산과 인력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이후 별다른 액션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자칫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부 대책이 너무 소비자의 신고(클레임)에 의존하고 있는데다, 식품 집단소송제의 경우 '소송 남발'로 이어질 경우 해당 기업에 미치는 피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선의의 소비자와 '식파라치','블랙컨슈머'를 구분해 처리하기 위한 안전장치를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소비자 신고에만 의존했을 때 부작용은 이미 불법 좌회전이나 신호위반 차량을 신고해 보상금을 타먹는 '카파라치', 쓰레기 불법투기를 신고하는 '쓰파라치' 등을 통해 검증된 바 있다.

식품사고 시 '신속 회수 등급제'가 과연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는 반응이다.

식약청은 사고 식품의 위해정도에 따라 회수등급을 3등급으로 분류하고, 등급에 따라 회수기간 등 관리체계를 차등화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가장 심각한 경우 3일 이내 리콜, 리콜일로부터 10일 이내 검증을 완료해야 하는데 그동안 보건당국이 보여준 처리 속도로는 턱없이 높은 목표라는 지적이다.

마시는 물은 환경부에서 담당하고 청량음료는 식약청 소관인 우리나라의 혼재된 식품관리 체계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철 고려대 식품공학부 교수는 "먹거리에 관련된 법령이 30여개나 혼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면서 "법령도 많고 관련 부처도 산재돼 사회적 물의가 빚어지면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진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이미 일본식품위생법이 있었지만 2000년 광우병사태를 계기로 2003년 일본식품안전기본법을 제정해 국가의 책무, 기업의 책무, 소비자의 책무 등을 담았다.

여론몰이식으로 일단 정책을 내놓고, 추진한 뒤 다시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식품정책이 이번에도 반복돼서는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