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유형자산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연구개발 투자는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개발 투자가 많은 기업은 성장성과 수익성이 높았고 주가도 높게 평가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경쟁이 심화되면서 연구개발 활동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의 기호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차별화된 기술력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생존과 성장의 핵심요인으로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연구개발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을 뛰어넘어 수요를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제품을 개발해야만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경쟁환경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여 최근 기업들은 양적 성장을 위한 설비투자에 신중을 기하는 한편 질적인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경영환경이 변화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업들의 경영전략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R&D 투자에 대한 기업 관심 높아져
기업의 핵심역량을 형성하는데 있어 최근 날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R&D 투자와 기업실적과의 관계를 상장기업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의 연간자료를 이용하여 1998년 이전에 상장된 기업중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업종평균 0.5% 이상인 기계, 운수장비, 의료정밀, 의약품, 전기전자, 통신, 화학 업종에 속한 209개 기업을 분석대상으로 하였다.
외환위기 직후 감소했던 상장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는 최근에 다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 3.3%를 기록했던 분석대상 기업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외환위기의 여파로 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를 줄이면서 1999년 1.9%로 낮아지기도 했으나 2000년 이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면서 2003년에는 3.4%로 높아졌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2000년부터 증가세를 보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매출액 대비 유형자산 투자액 비중은 2002년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다가 2003년에 와서야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출액 대비 유형자산 투자액 비중은 1998년 18.6%에서 2003년에는 7.0%로 낮아졌다. 2003년 매출액 대비 유형자산 투자액 비중은 2002년에 비해 2.2%p 높아졌지만 1998년에 비해서는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다.
설비투자는 위축되고 연구개발 투자는 늘면서 외환위기 직후 유형자산 투자규모의 20%에도 미치지 못했던 연구개발비가 2001년부터는 절반 수준으로 높아졌다.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와 연구개발비 지출액을 기업의 전체 투자로 보았을 때 투자금액의 절반 정도를 연구개발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국내 기업들의 투자패턴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수익성이 악화되고 신용경색 현상이 일어나면서 기업들이 투자를 축소함에 따라 연구개발비와 설비투자가 동시에 감소했으나 연구개발 투자는 곧바로 회복세를 보인 것이다. 이를 통해 투자에도 선택과 집중의 원칙이 적용되면서 설비투자보다는 연구개발 투자에 주력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개발 활동에도 양극화 현상
분석대상 상장기업 전체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증가하고 있으나 기업별로 살펴보면 연구개발 활동이 미진한 기업과 활발한 기업 간에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개발 활동에도 기업간 편중현상과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분석대상 상장기업 중에서 연구개발비 규모 상위 10개 기업이 전체 연구개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기준 87.7%에 이르고 있다. 전반적으로 외환위기 이후 연구개발 활동의 편중현상은 심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주로 전기전자, 자동차 업종에 속한 기업들로서 이들 업종이 향후에도 우리경제를 주도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고 있다.
연구개발 활동의 기업간 편중현상이 심화되면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1% 이하인 기업의 비중은 외환위기 이후 감소하였으나 여전히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의 평균 매출액 대비 연구비 비중은 외환위기 이후 0.2%대의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반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3% 이상인 기업이 분석대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8년 7.2%에서 2003년에는 14.8%로 증가하였는데, 이들 기업의 평균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은 1999년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연구개발 투자의 편중현상이 심해진 것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실적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연구개발 투자여력의 격차도 커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적이 좋은 기업들은 계속 좋은 실적을 유지하면서 미래준비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있는 반면 실적이 좋지 못한 기업은 저조한 실적이 계속되면서 연구개발 투자에 나설 여력이 크지 못해 연구개발 투자에도 편중화와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연구개발 투자 많은 기업 성장성 높아
기업들은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연구개발에 투자한다. 다만 연구개발 성과를 매출과 이익 창출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면 연구개발의 의미는 축소될 것이다. 따라서 연구개발을 통한 매출증대와 이익창출을 통해 성장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기업에게는 연구개발 자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분석대상 기업을 살펴보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을수록 성장성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의 연평균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을 기준으로 10개 그룹으로 기업을 나누어 매출액증가율을 살펴보면 연구개발비 비중이 가장 높은 그룹의 평균 매출액증가율(중앙값 기준)이 14.0%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을 기준으로 6위 그룹의 평균 매출액증가율이 2.8%를 기록하여 가장 낮았으나 전반적으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낮아질수록 매출액증가율도 낮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이와 같이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을수록 매출액증가율이 높게 나타난 것은 연구개발 투자와 성장성 간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전기전자 업종 등과 같이 성장성이 높은 기업을 분석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성장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독자적인 기술력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연구개발 투자가 기업의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요인임을 시사하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R&D 투자와 수익성간의 선순환
연구개발 투자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수익창출에 있을 것이다. 연구개발 투자는 새로운 제품의 개발, 생산기술의 효율성 증대 등을 통해 동일한 자원투입을 통해 창출하는 수익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런데 연구개발 투자는 성공하면 기업실적을 획기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지만 실패의 위험도 크다. 연구개발에 성공해도 제품화나 마케팅에서 실패하여 기업의 수익창출로 연결시키지 못해 연구개발 투자가 많은 기업의 수익성이 낮은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분석대상 기업의 경우에도 연구개발비 비중이 가장 높은 기업들의 수익성이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998~2003년 동안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 상위 10%에 속하는 기업의 같은 기간 동안 투하자산수익률은 4.5%를 기록하여 연구개발비 비중이 가장 낮은 그룹의 4.2%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투하자산수익률이 가장 높은 그룹은 9.5%를 기록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세번째로 높은 그룹이었다.
그러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가장 높은 그룹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연구개발비 비중과 기업의 수익성 간에는 정(+)의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개발비 비중 상위 2위 그룹의 투하자산수익률(8.0%)은 비록 3위 그룹(9.5%)에 비해 낮지만 2위 그룹부터 전반적으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을수록 수익성도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가장 높은 그룹의 수익성이 낮은 것은 연구개발 투자가 기업실적으로 연결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가장 높은 그룹의 매출액증가율이 가장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기존 제품의 개선이나 범용제품의 개발에는 성공해 매출증대는 이루었으나 독자적인 기술력을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개발을 하지 못하면서 매출증가가 수익성 제고로 이어지지 못했거나, 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연구개발의 속성상 연구개발투자의 효과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자 평가 긍정적
연구개발 투자는 실질적인 수익을 창출하기까지의 기간이 길고 불확실성이 높지만 장기적인 성장잠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연구개발 투자 비중이 높은 기업은 현재의 성장성뿐만 아니라 미래의 성장성도 높을 가능성이 크다. 주가수익비율(price earning ratio : PER)을 통해 성장성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를 살펴보았다. 현재 이익의 크기가 같더라도 미래 이익의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크면 주가가 높게 형성되면서 PER(주가/주당순이익)가 높게 형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 순서로 그룹을 나누어서 PER와 비교해 보면 전반적으로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을수록 PER도 높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 1위 그룹의 투자하산수익률은 2위 그룹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으나 평균 PER는 80% 정도에 이르고 있었다. 또한 투하자산수익률이 낮았던 2위 그룹의 평균 PER는 6.7을 기록하여 투하자산수익률이 높은 3위 그룹의 PER 6.5에 비해서 오히려 높았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연구개발 투자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결과는 연구개발 투자에 따르는 높은 성장성에 대한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연구개발 투자가 많은 기업은 미래에도 높은 성장성과 실적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동일한 이익규모에 비해서 주가가 높게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연구개발비가 높다는 것은 경영자들의 주주중시 경영에 대한 표시로도 작용할 수 있다. 연구개발 투자는 경영자들이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한 경영보다는 장기적인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활동에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투자에 대한 발상의 전환 필요
위와 같은 결과를 통해 연구개발 투자와 성장성, 그리고 수익성 간에 선순환 관계가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연구개발 투자는 신제품 개발을 통해 기업의 성장성을 높이고 실적을 개선하는데 기여하는 한편 높은 실적은 연구개발 투자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여 장기적인 성장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한 성장성에 대한 기대는 주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대로 실적이 저조한 기업들의 경우 연구개발 투자가 부진해지면서 미래준비가 부실해지는 악순환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연구개발 투자는 불확실성이 높은 반면 성공할 경우 기업에게는 혁신과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한다. 연구개발 투자의 이러한 특징 때문에 최근 기업들이 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비중을 높이고 있는 것은 향후 장기적인 성장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 들일 수 있을 것이다.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개발 투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연구개발 투자는 당장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기업가치의 핵심이 되는 무형자산을 창출할 수 있다.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얻은 성과를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신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연구개발 투자는 설비투자를 늘리는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투자에 대한 경영자나 정책당국자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과거에 투자라고 하면 기계장치와 같은 설비투자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였으나 앞으로는 기업성장의 원천은 연구개발이며 설비투자는 연구개발을 통해 얻은 성과를 기업의 생산물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유발되는 투자라는 관점이 필요하다.
R&D 투자 활성화 환경 조성해야
기업들은 조직구조나 운영시스템을 개선하여 연구개발 활동이 활성화될 수 있는 조직문화를 형성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연구개발 투자와 함께 경영환경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여 연구개발의 성과를 실질적인 기업실적으로 연결시키는 위해 노력도 병행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는 연구인력 개발을 위한 제도 개선과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한편 기업의 연구개발에 대한 조세나 금융상의 제도적 지원과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촉진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여야 할 것이다.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 연구개발 활동이 전체 기업으로 확산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지식경제 시대의 도래로 연구개발 투자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앞으로 연구개발을 통해 창출된 무형자산이 기업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이 되고 연구개발이 유형자산에 대한 투자를 유발하면서 기업의 전체적인 투자를 활성화시키는 촉매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투자에 못지않게 눈에 보이지 않은 투자도 중요하다는 투자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