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2일 (토) 14:24 조선일보
500만원짜리 '명품 한과' 안 팔려도 내놓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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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과(韓菓)의 1세트 가격이 500만원. 도대체 이 엄청난 가격은 어떻게 책정된 것일까? 추석을 맞아 고급 화각함에 담긴 한과 세트 2개가 서울의 한 백화점 진열장에 놓였다. 담양한과 ‘예인’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한과는 무형문화재 제29호 화각장 보유자 한춘섭 선생이 황소뿔로 만들었다는 화각함에 담겨 있다. 그 안에 4단으로 갖가지 종류의 한과가 개별 포장됐다. 내용물은 인삼정과를 비롯해 국내산 유기농 원료를 사용한 고가 한과다. 여기에 밤, 대추, 호박으로 꽃을 수놓고, 아기자기하게 한과를 말아 금가루를 뿌려 모양을 냈다.
그렇지만 한과가 500만원? 해당 업체에서는 “철저히 수공업으로 만든 장인의 작품”이라는 입장이지만, 보통의 한과 세트는 10만원 전후에서 판매될 뿐이다. 일반 업체의 최고급 한과 세트라고 해도 500만원의 1/10인 50만원을 넘지 않는다.
이 상품을 진열, 판매하고 있는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500만원이란 가격의 상당 부분은 함 값이다. 한과 담당자 전일호 과장은 “무형문화재가 만든 ‘작품’ 함을 사용했기 때문에 함 가격만 400만원에 달한다”며 “판매가 아닌 홍보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2세트 한정으로 나오게 된 상품”이라고 말했다. 50만원의 고급 한과 세트와 비교할 때, 함 값을 제외한 100만원 수준의 한과 가격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작품’ 함에는 인삼정과, 우엉정과를 비롯, 검정쌀, 찹쌀, 곡물가루, 과일류, 채소류, 견과류, 꽃류 등으로 만든 강정과 약과가 담겼다. 양(量)만으로 따지면, 10만원 미만의 한과 세트보다 2~3배 많지만, 50만원 세트와는 비슷한 수준이다.
왜 이렇게 특별한 함으로 한과를 포장하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한과 매출의 60~70%는 설날과 추석과 같은 명절에 이뤄진다. 백화점에서는 명절 때면 대여섯 곳의 한과 매장이 운영되지만, 평소에는 한두 곳에 불과하다. 그만큼 명절 때면 한과를 홍보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해당 업체들도 명절 대목 장사를 위해 1년 동안 매장을 지킨다. 평소 매출도 일본인 관광객을 비롯해 외국 관광객들에게 판매되는 게 대부분이라 명절 장사는 그만큼 중요하다.
백화점 측에서도 “올해 500만원 한과 2세트를 내놓은 것은 추석 한과에 대한 고가 마케팅의 일환”이라며 “작년에도 중요무형문화재 53호 채상(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채색한 상자) 기능보유자가 만든 채상에 한과를 담은 200만원짜리 한과 5세트를 출시했지만, 팔리지는 않았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만 해도 한과는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던 과자였다. 그러나 지금은 강정, 약과 등 비교적 간편하고 쉽게 만들 수 있는 몇 가지만 전해지며, 판매도 전문 한과 업체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과거 수백 종에 이르던 한과는 그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현재는 유밀과인 약과와 유과인 강정, 산자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명품 한과’. 선물 세트용으로 설날과 추석을 겨냥해 만들어진 최고가 명품 한과가 새롭게 출현한 것이다. 종갓집 며느리들이 모여 만들던 한과는 1980년대에 들어 서서히 한과 전문 생산업체의 대량 생산으로 탈바꿈해왔다. 이와 함께 전문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만들어진 차별화된 고급 한과가 시장에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식류, 정과류, 숙실과류 등 다양한 형태의 현대적인 새로운 한과가 개발되었으며, 인삼을 이용한 인삼정과 등 고급 한과가 나타났다. 이 시기, 한과 시장은 전국 140여개 업체, 2000억원 대의 시장을 형성했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임효진씨는 “어느새 전통의 과자인 한과는 명절 때만 찾는 고가품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한과 시장은 이후 20여년 동안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평소 백화점 진열장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고급 한과는 높은 가격 때문에 선뜻 구입하기 어렵다. 소비자들은 그나마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면서 품질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대형 마트에서 중저가 한과를 구입한다.
그래서 백화점은 명절이 되면 고급 한과 판매에 주력한다. 30만~50만원의 고가 한과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수백만 원짜리 전시용 한과를 진열해 주목도를 높인다. 또, 고급 한과일수록 제조 과정이 번거로운데다가 대부분이 전문 수공에 의존하기 때문에 가격은 정하기 나름이다. 표준 조리법이 확립되지 않아 재료의 종류, 배합, 만드는 사람의 솜씨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는 점도 고가 마케팅 전략을 가능하게 한다.
값싼 한과는 중국산 원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국산이냐, 수입산이냐에 따라 가격 차가 나타난다. 깨엿강정에 들어가는 국산 참깨는 중국산 참깨보다 3배 이상 비싸다. 그래서 겉면에는 ‘전통한과’라고 적혀있지만 알고 보면 재료는 중국산인 한과도 적지 않다. 작년 추석을 앞두고 실시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단속에서도 중국산 유과를 전통 한과인 양 속여 판매한 업체 7곳이 적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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