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 의성=김현옥 기자
- 승인 2026.06.01 15:17
노동력 30% 줄이고 생산성 20% 높여...무인방제·스마트 과수원 시대 성큼
김대현 원장 "사과산업, 사람 손 의존 구조에서 스마트 기계화 체계로 전환"

사과농사 하면 으레껏 떠오르는 풍경은 높게 자란 나무 사이에서 농민들이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가지를 치고 꽃을 솎고 열매를 수확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28일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이 공개한 경북 의성의 미래형 사과 재배 시범포장은 그 익숙한 풍경을 찾아볼 수 없어 다소 생경하기까지 했다.
대신 사람 키를 크게 넘지 않는 높이의 사과나무들이 마치 벽면처럼 일정한 평면을 이루고 있었고, 넓게 확보된 작업 공간에는 트랙터와 작업 장비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던 국내 사과농장의 풍경이 고령화와 인력난,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기계화·스마트농업 중심 체계로 전환되는 현장이었다.

김대현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은 이날 기자단 현장 브리핑에서 "사과는 연간 생산량 50만 톤, 생산액 2조 원 규모의 우리나라 대표 과수지만 가지치기와 꽃솎기, 적과, 방제, 수확까지 대부분 작업이 여전히 사람 손에 의존하고 있다"며 "고령화와 인건비 상승, 농촌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재배체계 자체를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크고 높은 나무의 시대는 "끝"
현장에서 만난 황록연 농진청 사과연구센터 재배시스템연구실장은 사과나무의 변화를 이야기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제가 어릴 적 큰아버지 댁이 사과농사를 지으셨는데 그때는 나무가 워낙 커서 나무 아래에서 그늘을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그의 말대로, 실제로 과거 사과나무는 크고 넓었다.
이후 1990년대부터 보급된 세장방추형 재배방식은 생산성을 크게 높였지만 여전히 높은 수고와 넓은 수관 때문에 작업자들이 사다리를 이용해야 했다.

햇빛이 나무 내부까지 충분히 들어가지 못해 착색 관리에 많은 노동력이 투입됐고, 꽃솎기와 적과 작업 역시 대부분 사람 손에 의존했다.
이때 농진청이 내놓은 해법은 나무의 형태 자체를 바꾸는 것이었다. 이날 현장에 조성된 과수원은 초방추형, 2축형, 다축형 등 평면형 수형으로 구성돼 있다. 가지를 일정한 면에 배치해 햇빛이 고르게 들어가도록 하고 기계가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과수원에 들어서면 기존 사과밭보다 훨씬 개방감이 느껴진다. 나무 사이로 햇빛이 깊숙이 스며들고 바람도 원활하게 흐른다. 과실 착색과 당도 향상은 물론 병해 발생 감소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구조다.
■ 노동력 30% 줄이고 생산성 20% 높여
이러한 시스템에서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경제성이다. 김대현 원예원장에 따르면 평면 수형 과수원은 기존 재배체계보다 노동력을 약 30% 줄일 수 있다. 실제 노동시간은 10a 기준 205시간에서 143시간으로 감소한 반면 생산성은 약 20%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력 부족이 심각한 농촌 현실을 감안하면 매우 의미 있는 변화다.

황록연 실장은 "평면형 수형의 가장 큰 장점은 기계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라며 "착색을 위한 노동력을 줄일 수 있고 적화와 적과 작업 역시 기계로 대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평면형 수형 재배면적은 2018년 3ha에 불과했지만 2023년 362ha, 지난해에는 1149ha까지 확대됐다. 불과 몇 년 만에 300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재배기술 보급이 아니라 국내 사과산업이 구조적 전환 단계에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수치다.

■ 국산 가지치기·꽃솎기 장비 개발…"이제 사람 대신 기계가"
현장에서는 국산 기계화 기술도 소개됐다. 농진청은 지난해 트랙터 부착형 가지치기 장치와 꽃솎기 장치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
기존에는 대부분 사람이 직접 하거나 고가의 수입장비에 의존해야 했던 작업들이다.
연구진에 따르면 가지치기 장비를 활용하면 작업시간을 25~35% 줄일 수 있고, 꽃솎기 장치는 60~70% 수준의 노동력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
올해는 적과 작업까지 기계화하는 기술 개발도 추진되고 있다. 기존 세장방추형 과수원에서는 기계가 들어갈 수 없었지만 평면형 수형에서는 트랙터 기반 작업이 가능해진다.
황 실장은 "수형 혁신과 기계화는 따로 갈 수 없는 관계"라며 "평면형 수형은 스마트 과수원을 만들기 위한 첫 번째 단추"라고 강조했다.
■ 과수원 곳곳의 센서…미래는 '무인 방제'
현장을 둘러보며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온도와 습도, 일사량, 토양 상태, 생육 정보 등을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장비들이 과수원 곳곳에 설치된 센서였다.
연구진은 이 데이터를 활용해 재배 의사결정을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무인 약제 살포 시스템과 연결된다.
농진청이 개발 중인 무인 자동약제 살포 장치는 과수원 내부에 설치된 노즐을 통해 약제를 자동으로 분사하는 방식이다. 농약 노출 위험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약제 사용량과 노동력 투입도 크게 감소시킬 수 있다.
김대현 원장은 "평면형 수형과 기계화, 데이터 기반 관리, 무인 방제 시스템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이 미래형 스마트 과수원의 모습"이라며 "기후변화 대응과 생산비 절감, 노동력 부족 해소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생산력을 높인 경북 의성의 사과 농장주
■ "기술은 좋은데 가격 부담이 문제"
현장에서 만난 농장주의 반응은 특히 인력난 해소 효과에 대한 기대가 크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요즘은 일할 사람 구하는 게 사과 생산보다 더 어렵다"며 "앞으로는 기계 없이는 농사를 짓기 힘든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국산 장비가 더 많이 개발돼야 한다"며 "유지보수와 부품 수급을 생각하면 국산화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기계 가격 부담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농장주는 "기술 자체는 매우 만족스럽지만 초기 투자비가 만만치 않다"며 "중소 농가들도 쉽게 도입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이 확대되면 보급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 사과산업의 미래는 이미 시작됐다
의성의 초여름 햇살 아래 가지런히 늘어선 평면형 사과나무들은 새로운 재배기술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고령화와 인력난,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변화 앞에서 한국 사과산업이 선택한 생존 전략이었다.
과거의 사과농업이 사다리와 사람의 경험에 의존했다면, 미래의 사과농업은 평면형 수형과 기계화, 데이터, 무인방제 기술이 결합된 스마트 과수원으로 향하고 있다.
사다리가 사라진 자리에 미래 농업의 청사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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