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옥 기자
- 승인 2026.06.02 11:08
종합식품기업에 걸맞는 분야별 전문가 역할 수행...자긍심 충만

식품산업에서 식품기술사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도 현실은 사뭇 다르다. 식품기술사는 식품의 개발, 생산, 품질, 안전, 법규, 공정 개선을 아우르는 최고 수준의 국가기술자격임에도 불구하고 산업 현장에서 그 정체성과 가치를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식품기업이 식품기술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매우 드물다.
K-푸드가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의 문화이자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는 지금, 식품의 맛과 스토리만큼 중요한 것은 품질과 안전, 공정과 규제 대응, 지속가능한 생산 시스템이다. 이 기반을 현장에서 설계하고 지켜내는 전문 인력이 바로 식품기술사다.
이에 푸드아이콘은 식품기술사가 실제 기업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식품산업 경쟁력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알아보고, 그 역할을 재조명하기 위한 탐방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식품기술사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고 K-푸드 산업 경쟁력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찾은 첫 번째 현장은 종합식품기업 대상(주)이다.

■ 13명의 식품기술사가 만든 ‘현장 전문성’이 곧 회사의 경쟁력

대상(주)은 국내 식품기업 가운데 식품기술사 보유 인력이 많은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곡의 대상 식품연구소에서 만난 이들은 제품개발, 생산, 품질, 식품안전, 법규 대응, 협력업체 관리 등 다양한 부문에서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들의 역할은 자격증 만큼이나 크고 무거웠다. 제품을 개발할 때는 소비자 니즈와 시장성을 반영하면서도 안전성과 유통 안정성을 설계했고, 생산 현장에서는 품목이 바뀌어도 원리를 이해하고 빠르게 적응하는 기반을 제공했다. 품질 부문에서는 클레임 원인을 신속히 파악하고, 협력업체에는 사실상 전문 컨설팅에 가까운 품질 지도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대상처럼 장류, 김치, HMR, 소스, 음료, 식초, 향신료 등 다양한 품목을 다루는 종합식품기업에서는 식품기술사의 폭넓은 지식과 현장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 특정 품목만 아는 전문가가 아니라, 식품 전반을 이해하는 통합형 전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혁신 히트상품 '고구마츄·안주야·호밍스'…'허들 테크'로 상온 장기 유통 구현

변명희 대상기술원 식품연구소 PO(Product Owner)
제품개발 부문에서 식품기술사의 역할은 소비자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대상의 히트상품인 고구마츄, 안주야, 호밍스 등은 단순한 아이디어 상품이 아니라 원료 특성과 수분활성도, 살균, 포장, 소비기한, 소비자 편의성까지 종합적으로 설계된 결과물이다.
고구마 말랭이 제품의 경우 과거에는 냉장 또는 냉동 유통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대상은 허들 테크놀로지(Huddle Technology)를 적용해 보존료 없이도 상온 6개월 유통이 가능한 혁신 제품을 구현했다.
변명희 대상기술원 식품연구소 PO(Product Owner)는 "수분활성도를 제어하고, 산소를 차단하는 포장 설계와 탈산소제, 살균 조건 등을 결합해 냉장고가 아닌 상온 매대에서 판매 가능한 원물 간식을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소비기한 연장 기술이라기보다, 소비자가 좀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을 만든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식품기술사는 이처럼 제품의 보이지 않는 구조를 설계함으로써 새로운 카테고리와 시장을 창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기능의 보유자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품질·안전·클레임 대응… 문제를 ‘빨리 찾고 정확히 해결하는’ 힘

조예슬 식품BU 식품안전센터 과장
식품기업에서 품질 이슈는 곧 신뢰의 문제다. 특히 발효식품, 김치, 장류, HMR처럼 미생물·공정·유통 조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제품군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이 중요하다.
대상 식품안전센터의 식품기술사들은 신제품 출시 전 안전성·안정성 평가를 수행하고, 유통 중 발생하는 클레임의 원인을 분석한다.
조예슬 대상 식품BU 식품안전센터 과장은 "기술사 공부를 통해 공정의 원리와 제품 특성을 폭넓게 이해하게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미생물적 이슈인지, 이화학적 변화인지, 공정이나 환경에서 비롯된 문제인지 접근 속도가 빨라졌다"고 말했다.
조 과장은 또 “예전에는 어떤 클레임이 나올 수 있는지 막막한 부분이 있었지만, 공정이 왜 그렇게 설계됐는지 이해하게 되면서 문제를 미리 예측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식품기술사의 가치는 사고가 난 뒤 수습하는 데만 있지 않고, 사고 가능성을 미리 읽고, 리스크를 줄이는 데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발언이다.
■ 법규와 현장을 잇는 통역자

말하는 장종근 식품BU 품질기획팀 차장
식품기업이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수록 법규와 규제 대응은 더욱 중요해진다. 표시 기준, 영양 정보, 기능성 표시, 수입식품 관리, 해외 제조업소 실사 등 식품기업이 마주하는 규제 환경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장종근 식품BU 품질기획팀 차장은 "식품기술사들은 법규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장에서 실제 적용 가능한 기준으로 풀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규제가 책 속에 머무르지 않고 제품 개발과 생산, 표시, 유통, 소비자 신뢰로 이어지도록 연결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장 차장은 "불합리하거나 현실과 맞지 않는 규제에 대해서는 개선 건의도 필요하다. 이때 식품기술사는 현장과 제도 사이의 언어를 모두 이해하는 전문가로서 기능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법을 아는 사람은 많지만, 식품공정과 제품 설계까지 이해하면서 규제를 해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현실에서 식품기술사들이 식품산업 현장에서 갖는 위상이 얼마나 큰 지 가늠할 수 있다.
■ 협력업체까지 끌어올리는 ‘산업 생태계의 전문가’

힘쓰고 있는 이은희 식품BU CCM3팀장
대상 식품기술사들의 역할은 회사 내부에만 머물지 않는다. OEM 협력업체 관리와 품질 지원에서도 식품기술사의 전문성은 크게 발휘된다.
대상은 다수의 협력업체와 거래하고 있으며, 이들 업체의 품질 수준은 곧 대상 제품의 신뢰와 직결된다.
식품기술사들은 협력업체 현장을 방문해 위생, 공정, 품질관리, 클레임 대응 체계를 점검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한다. 이는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최고 수준의 현장 컨설팅을 받는 것과 같다.
협력사들의 기술 수준을 향상시켜 동반성장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이은희 식품BU CCM3팀장은 "특히 중소 식품기업은 전문 인력과 시스템이 부족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기업 내 식품기술사들이 협력업체를 지도하고 함께 개선해 나가는 구조는 식품산업 전체의 품질 수준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 “기사와 기술사의 차이”… 문제 해결 넘어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
이 대목에서 이은희 팀장은 ‘기사’와 ‘기술사’의 차이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식품기술사 면접 당시 “기사는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지만, 기술사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까지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함께 도출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점을 상기하며, 그러한 철학과 소신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식품기술사의 본질을 보여주는 말이다."며 크게 공감했다. 식품기술사는 단순한 기능 인력이라거나 문제 하나를 해결하는 사람으로 치부되어서는 안되는, 문제의 구조를 읽고 재발을 막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제품 개발자이면서 품질 관리자이고, 생산 현장의 조정자이면서 법규와 시장을 연결하는 전략가로서의 식품기술사의 역할과 기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자리였다.
■ K-푸드 글로벌화, 식품기술사의 제도적 활용 필요

자격에 따른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이효 식품BU 오산공장장
K-푸드가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맛과 브랜드만으로는 부족하다. 글로벌 소비자가 요구하는 것은 일관된 품질, 안전성, 투명한 관리, 규제 대응력, 지속가능한 생산 체계다. 이 모든 요소는 현장의 기술 전문성과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식품기술사의 위상 강화는 단순히 특정 자격자의 처우 개선 문제가 아니다. 식품산업의 품질 경쟁력과 글로벌 신뢰도를 높이는 산업 전략의 문제다.
일정 규모 이상의 식품기업에 식품기술사 배치를 의무화하거나, 품질·안전 관리 체계 안에서 식품기술사의 역할을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식품기술사가 제대로 쓰임받을 때, K-푸드는 더 안전하고 더 신뢰받는 글로벌 식문화로 성장할 수 있다."고 정이효 식품BU 오산공장장은 힘주어 말했다.
■ “자격은 있지만 제도적 자리는 없다”… 식품기술사의 현실
정 공장장은 "식품기술사는 식품산업 전반을 이해하고 현장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인데도, 현재 식품기업에서 식품기술사 의무 고용이나 필수 배치 기준은 마련돼 있지 않다."며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 특정 기술자격자를 두도록 하는 다른 산업 분야와 달리, 식품 분야에서는 식품기술사의 역할이 제도적으로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식품기술사가 필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반드시 채용해야 할 이유는 약하다”는 인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식품기술사들은 제품 개발, 품질 관리, 생산 안정화, 법규 해석, 협력업체 지도 등 산업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핵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도, 자격 취득자 개인에게 돌아가는 실질적 혜택이 제한적인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번 대상(주) 탐방은 식품기술사가 기업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발휘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첫 사례다. 제품개발에서 시장을 만들고, 생산 현장에서 원리를 세우며, 품질과 안전 부문에서 리스크를 줄이고, 법규 대응과 협력업체 지원을 통해 산업 생태계를 끌어올리는 역할이 확인됐다.
식품기술사는 식품산업의 전면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제품이 안전하게 생산되고, 안정적으로 유통되며,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까지 그 뒤에는 늘 기술적 판단과 현장 경험이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설계자가 바로 식품기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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