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전반

간장 전쟁, 보이지 않는 싸움의 본질-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438)

곡산 2026. 5. 25. 08:26

간장 전쟁, 보이지 않는 싸움의 본질-하상도의 식품 바로보기(438)

  •  하상도 교수
  •  승인 2026.05.25 08:10

같은 이름 다른 경쟁…안전·품질로 세계 시장 진출해야
전통·효율·수입산·규제 복합적 충돌…선택 기준, 가격과 브랜드로 귀결
원료·발효·풍미 등 지표 표준화하고 간장 범주 재정의 산업 기준 정립을

간장은 조용한 식품이다. 식탁 위에서는 늘 조연에 머물며 존재를 과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업의 내부로 시선을 옮기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지금 국내 간장 시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가격과 품질, 전통과 효율, 국내산과 수입산, 그리고 규제와 시장이 복합적으로 충돌하는 구조적 경쟁이 진행 중이다.

하상도 교수(중앙대 식품공학부·식품안전성)

 

이 전쟁의 출발점은 단순하다. 동일한 ‘간장’이라는 이름 아래,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제품들이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는 시간과 미생물이 빚어내는 전통 발효제품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공정 기술을 통해 단기간에 생산되는 효율 중심의 제품이 존재한다. 전자는 자연 발효라는 긴 시간을 축적하고, 후자는 과학기술로 그 풍미를 재현한다. 문제는 이 둘이 식탁 위에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물론 표시를 들여다보면 식품 유형과 원산지, 각종 인증 정보를 통해 구분은 가능하다. 그러나 대다수 소비자가 ‘간장’을 선택하는 순간, 그 정보를 충분히 해석하고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표시제도는 존재하지만, 그 정보가 소비자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달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의 기준은 가격과 브랜드로 수렴된다. 이 지점에서 경쟁의 방향은 이미 결정된다. 시간과 비용, 품질 변동성을 감수해야 하는 전통 방식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규제는 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한다. 제도는 제품 유형을 구분하고 있지만, 그 기준이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업에는 추가 비용과 부담으로 작용하고, 소비자에게는 오히려 혼란을 남긴다. 규제는 존재하지만, 경쟁의 룰을 명확히 설계하지 못한 채, 시장은 점점 가격과 브랜드 중심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수입 제품의 공세도 거세다. 원가 경쟁력을 앞세운 해외 제품은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은 원료 및 포장재 가격 상승, 가격 인하 압박, 규제 부담이라는 삼중의 구조적 압력에 직면해 있다. 특히 중소업체는 설비 투자나 품질 고도화에 대응할 여력이 제한적이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모든 참여자가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감성적 호소만으로는 산업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 시장은 결국 경쟁의 논리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첫째, ‘간장’의 범주를 재정의해야 한다. 단순한 제조방법 중심의 구분을 넘어, 최종 제품의 품질과 안전 수준, 그리고 용도에 기반한 체계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가 제품 간 차이를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둘째, 품질 경쟁의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발효 기간, 원료 구성, 풍미 특성 등 과학적 지표를 표준화하고 이를 신뢰 가능한 정보로 시장에 제공해야 한다. 발효식품의 가치는 더 이상 감각적 서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데이터로 설명되고, 검증 가능한 형태로 제시될 때 비로소 경쟁력이 된다.

 

셋째, 규제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제조 방식 중심의 관리에서 벗어나, 최종산물의 위해성 평가에 기반한 일관된 관리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디서 왔는지는 표시와 인증의 영역으로 두고, 안전과 품질관리는 최종제품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규제는 산업을 억제하는 장벽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하는 인프라여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경쟁을 내수 시장에만 가둘 수는 없다. 간장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의 대표 품목으로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제품의 정체성과 기준이 불명확한 상태에서는 국제 경쟁력 확보에도 한계가 있다. 산업 전체의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 곧 글로벌 전략의 출발점이다.

 

간장 전쟁의 본질은 단순한 시장 점유율 경쟁이 아니다. 정의되지 않은 기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규제, 그리고 준비되지 않은 산업구조가 만들어낸 복합적 충돌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하나다. 누가 더 많이 파는가가 아니라, 어떤 기준 위에서 경쟁할 것인가? 그 기준이 곧 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