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2.24 07:54
네슬레 등 글로벌 식품 기업 전용 브랜드 론칭
국내 유업계 고단백·고섬유 제품으로 수요 창출
정교하게 영양 설계한 기능성 유제품에 기회
글로벌 비만 치료제(GLP-1 수용체 작용제) 열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식품 시장의 지형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 등 혁신적인 체중 감량 치료제가 대중화됨에 따라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품목이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적게 먹어도 필수 영양소를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소량 고영양(Nutrient-Dense)’ 트렌드가 유제품 시장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 모양새다. 단순히 체중을 감량하는 단계를 넘어, 해외에서는 약물 복용 시 발생하는 부작용을 관리하고 영양 균형을 돕는 이른바 ‘컴패니언 푸드(Companion Food)’ 카테고리가 등장했으며, 국내 유업계 역시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발맞춰 고단백·고식이섬유를 강조한 제품군을 강화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GLP-1 제제 사용자들은 뇌의 포만감 인지 능력이 높아지고 위 배출 속도가 느려지면서 임상 시험 결과 유의미한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신체적 변화는 식습관의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와, 소비자의 1회 섭취량은 줄어드는 반면 단백질과 비타민, 미네랄 등 필수 영양소가 압축된 제품에 대한 지불 의사는 높아졌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소비자들은 당류와 지방이 많은 자극적인 음식을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해졌으며, 상대적으로 담백하고 영양 밀도가 높은 요거트나 치즈 등 프리미엄 유제품을 선택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다이어트 열풍을 넘어 비만 치료제 확산과 맞물린 ‘식단의 과학화’ 수요가 시장 전면에 등장했음을 시사한다.
기존의 다이어트 식품 시장이 단순히 ‘고단백’에만 집중했다면 2026년의 시장은 더욱 정교한 솔루션을 요구하고 있다. GLP-1 복용자들은 약물의 기전상 소화 속도가 늦춰지면서 변비, 메스꺼움, 복부 팽만감 등 위장관 불편을 겪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고단백 식단만을 고집할 경우 장내 소화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식이섬유’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근손실 방지를 위한 고품질 단백질 공급과 장 운동을 돕는 식이섬유의 조화로운 배합이 최근 유제품 시장의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재 유업계가 활용하고 있는 3대 핵심 성분은 식품공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첫째,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은 옥수수 전분 등을 가열 처리해서 얻은 수용성 식이섬유로, 식후 혈당 상승을 억제하고 배변 활동을 원활하게 돕는다. 식약처에서 ‘배변 활동 원활’ ‘식후 혈당 상승 억제’ ‘혈중 중성지질 개선’ 등 3가지 기능성을 인정한 성분이다.
둘째, 이눌린(치커리 추출물)은 대표적인 프리바이오틱스 성분으로, 물과 섞이면 겔(Gel) 형태를 띠어 지방과 유사한 크리미한 식감을 제공한다.
셋째, 가수분해(분해형) 단백질은 단백질 분자를 효소로 미리 잘게 쪼개어 소화 과정을 최소화한 성분이다. 일반적으로 가수분해 단백질은 체내 흡수 속도가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어, 소화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도 장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여주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에 유업계는 명시적인 ‘전용 카테고리’를 구축하기보다는 기존 고단백·고섬유 콘셉트 제품을 비만 치료제 확산이라는 시장 상황과 결합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매일유업은 ‘셀렉스 코어프로틴 프로’를 통해 국내 단백질 성인 영양식 시장을 개척한 노하우를 건강 관리 시장 전반으로 확장했다. 핵심은 ‘저분자 가수분해 단백질’이다. 단백질 분자를 미리 효소로 잘게 쪼개어 섭취 후 체내 소화 부담을 낮췄다. ‘매일 바이오 화이버&칼슘’ 라인업은 무색·무취의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을 적극 활용해 ‘맛있는 혈당 관리’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조준했다. 또한 매일유업은 ‘매일두유 렌틸콩’을 선보였다. 190mL 한 팩에 식물성 단백질 9g과 식이섬유 3g을 담고 당류는 1.5g으로 구성한 저당 제품으로 식단 관리 중인 이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풀무원다논은 글로벌 요거트 브랜드 1위인 다논의 기술력을 집약해 ‘액티비아 UP!’ 라인업을 강화했다. 장내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프리바이오틱스(식이섬유)를 고함량으로 배합한 ‘신바이오틱스(Synbiotics)’ 설계를 전면에 내세웠다. 특히 특허 받은 유산균 ‘비피더스 액티레귤라리스’와 고기능성 식이섬유를 최적의 비율로 배합해 다이어트 과정에서 겪기 쉬운 저하된 장 운동 능력을 보완하고 규칙적인 배변 활동을 돕는 데 주력하고 있다.
롯데푸드 파스퇴르는 기능성 발효유의 스테디셀러인 ‘쾌변’ 요구르트의 성분을 강화했다. 식사량이 줄어든 다이어터들이 흔히 호소하는 배변 고민 해결에 집중한 결과다. 이눌린 치커리 추출물과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 등 복합 식이섬유를 한 병당 7500mg 이상 고농축으로 담아내 직접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락토프리 공법을 적용해 빈속에 마셔도 속이 편안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고객층을 넓히고 있다.
일동후디스는 프리미엄 단백질 시장을 석권한 ‘하이뮨’의 브랜드 파워를 유제품 전반으로 확대했다. 주력 제품인 ‘하이뮨 프로틴 밸런스’ 음료에는 산양유 단백에 가수분해 공법을 더해 흡수율을 제공한다. 특히 ‘하이뮨 프로틴 밸런스 &(앤)바디’는 산양유단백을 비롯한 5대 단백질로 동·식물성 단백질의 비율을 6:4로 균형 있게 설계했다. 체지방 감소에 도움을 주는 가르시니아캄보지아추출물과 난소화성말토덱스트린 등을 함유해 식단 관리자의 영양 밸런스를 맞췄다.
빙그레는 대중적인 인지도를 가진 ‘요플레’ 브랜드를 통해 과채 드링킹 요거트 신제품 ‘요플레 오베지’ 2종을 내놓았다. 적게 먹는 대신 양질의 영양을 원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과일과 채소의 영양을 요거트에 담았다. 고식이섬유와 유산균의 시너지를 통해 장 건강을 관리하면서도, 다이어트 중 부족하기 쉬운 식이섬유를 맛있게 보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상큼하고 깔끔한 맛을 선호하는 최근의 다이어트 소비 트렌드를 반영해 세련된 과채 배합을 제안하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결국 2026년 유제품 시장의 승패는 ‘얼마나 많은 양을 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영양을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GLP-1 치료제가 불러온 식단의 변화는 유업계에 위기인 동시에, 고부가가치 기능성 유제품 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비만 치료제 시장의 확대는 식품 업계에 있어 단순한 다이어트 유행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며 “소비자들이 스스로 영양 성분과 흡수율을 꼼꼼히 따지기 시작한 만큼 향후 유제품 개발의 핵심은 단백질과 식이섬유의 양적 경쟁을 넘어 고도의 공학적 설계를 통한 ‘품질의 초격차’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해외 시장에서는 글로벌 식품 거물들이 GLP-1 사용자를 타깃으로 한 전용 브랜드를 론칭하며 더욱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네슬레(Nestlé)는 ‘바이탈 퍼수트(Vital Pursuit)’라는 전용 브랜드를 통해 고단백·고식이섬유 유제품과 냉동식품을 패키지로 출시했다. 다논(Danone)은 ‘Two Good’ 브랜드를 통해 당 함량은 최소화하면서도 이눌린을 활용해 크리미한 질감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초바니(Chobani)는 ‘Zero Sugar’ 라인업에 치커리 뿌리 섬유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포만감과 식감을 잡아내며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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