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전반

[식품업계, 순환경제에 눈뜨다④] 정책과 현장이 만났다…‘민관 협력’으로 완성하는 자원순환

곡산 2026. 1. 29. 07:28
[식품업계, 순환경제에 눈뜨다④] 정책과 현장이 만났다…‘민관 협력’으로 완성하는 자원순환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6.01.28 13:00

규제 샌드박스로 뚫고 시범사업으로 입증하고…‘원팀’ 된 정부와 기업
폐플라스틱·멸균팩·식품부산물의 재탄생, 민관이 함께 만든 ‘순환의 기적’
“혼자서는 못 한다” 정책과 기술이 만나 지속가능한 생태계 꽃피우다

전 지구적 기후 위기 속에서 자원순환은 더 이상 개별 기업의 선택 과제가 아닌 산업 생태계 전체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특히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와 이를 현장에 적용하는 기업 간의 긴밀한 협력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핵심 동력이다. 한국식품산업협회가 발간한 ‘2025 식품산업 자원순환 우수사례집’의 네 번째 장인 ‘지속가능한 실천’ 편은 바로 이 지점에 주목한다.

이 파트에서는 단순한 선언이나 보여주기식 캠페인을 넘어 정부의 시범사업과 업무협약(MOU)을 통해 규제의 장벽을 낮추고 자원순환의 효율을 극대화한 민관 협력의 모범 사례들을 다룬다. 폐플라스틱을 다시 식품 용기로 사용하는 ‘보틀 투 보틀’의 안전성 검증부터 재활용 사각지대에 놓였던 멸균팩의 순환 체계 구축, 규제 샌드박스를 통한 초경량 생수 개발 그리고 버려지던 식품 부산물의 사료화까지.

정책과 산업이 맞물려 돌아갈 때 어떤 시너지가 발생하는지를 증명해 낸 4개 기업(한국 코카콜라, 매일유업, 롯데칠성음료, 현대그린푸드)의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 식품업계가 그리는 ‘지속가능한 순환 경제’의 청사진을 들여다본다.

◇ 한국 코카콜라, ‘보틀 투 보틀’의 안전성을 입증하다

폐플라스틱이 다시 코카콜라 병으로 태어나는 ‘보틀 투 보틀’ 순환 과정. 분리배출된 투명 페트병을 파쇄해 플레이크와 펠릿으로 만든 뒤 다시 식음료 용기로 재탄생시킨다. 아래 사진은 투명 음료 페트병의 자원순환을 위한 ‘원더플(ONETHEPL)’ 시즌6 협약식 모습과 재생원료 10%를 적용한 코카콜라 제품.

한국 코카콜라는 2026년 시행 예정인 폐플라스틱 재생원료 의무 사용 제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재생 보틀의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소비자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번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보틀 투 보틀(Bottle to Bottle)’ 방식이 국내에도 올바르게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 및 관련 기관과 함께 제도 운영상의 장애 요소를 사전에 점검하고 개선점을 발굴하는 데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코카콜라는 국내에서 배출된 투명 페트병을 물리적으로 재활용한 재생원료를 10% 혼합해 제품을 생산했다. 2023년 업소용 ‘코카콜라 1.25L’ 제품에 최초 적용한 데 이어,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대형 마트와 소매점으로 유통되는 1.2L 제품까지 재생 보틀 적용 범위를 확대했다. 또 글로벌 본사의 까다로운 품질 관리 기준을 적용해 국내 재생원료 공급망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그 결과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유지하면서도 기존 41g이었던 패키지 무게를 36g으로 줄여 병당 신규 플라스틱 사용량을 약 21% 감축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와 함께 국내 탄산음료 최초로 ‘씨그램’ 무라벨 제품을 출시하고, ‘코카콜라’ 고유의 병 디자인을 살린 라벨리스 제품을 선보이는 등 자원순환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병행하며 소비자의 인식 개선을 이끌어냈다.

한국 코카콜라는 앞으로도 재생원료 의무화 정책에 발맞춰 재생 보틀 제품 출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단순히 제품을 출시하는 것을 넘어 소비자들에게 ‘보틀 투 보틀’의 가치를 알리는 ‘원더플 캠페인’ 등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순환 문화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킨다는 목표다.

◇ 매일유업, 멸균팩을 다시 종이로…자원 선순환의 ‘고리’를 잇다

재활용이 어려운 멸균팩을 되살리기 위해 민관이 손을 맞잡았다. 2023년 9월 열린 ‘멸균팩 재활용을 통한 순환체계 구축 업무협약식’에는 매일유업을 비롯한 12개 제조사와 환경부, 한솔제지 등이 참여해 멸균팩 회수와 종이(백판지) 재활용 활성화에 뜻을 모았다.

매일유업은 높은 재활용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회수 체계 미비로 재활용률이 저조했던 멸균팩 문제 해결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2023년 9월 환경부 및 12개 제조사, 한솔제지 등과 함께 ‘멸균팩 재활용 순환체계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회수된 멸균팩을 고부가가치 자원인 종이(백판지)로 되살려 다시 제품 포장재로 활용하는 시범사업에 착수했다.

매일유업은 협약에 따라 회수된 멸균팩으로 생산된 재활용 백판지를 자사 제품의 포장재로 적극 도입했다. 단순히 재활용을 지원하는 차원을 넘어 실제 기업 현장에서 재생 소재를 다시 구매하고 사용하는 ‘닫힌 고리(Closed Loop)’ 형태의 순환 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2023년부터 2024년까지 매일유업이 사용한 멸균팩 재활용 백판지의 양은 약 136톤에 달한다.

이번 사업의 가장 큰 성과는 멸균팩이 단순 폐기물이 아닌 ‘고품질 재생원료’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이를 실제 산업 현장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매일유업은 재활용 단계별 참여를 통해 자원순환의 가치를 직접 확인했으며, 이러한 기업의 노력이 소비자의 인식 변화와 현장의 협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냈다.

매일유업은 향후 재활용 시장 확대에 비해 여전히 부족한 멸균팩 수거 실적을 높이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멸균팩 IoT 회수기 설치를 확대해 소비자들이 더 쉽게 멸균팩을 배출하고 재활용에 동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예정이다.

◇ 롯데칠성음료, 규제 넘어 기술로…‘초경량 생수’의 시대를 열다

질소 충전 기술로 플라스틱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인 롯데칠성음료의 ‘초경량 아이시스’. 용기 내부에 질소를 주입해 강도를 보강하는 ‘내압 형성 기술’을 적용, 기존 11.6g이었던 500ml 생수병 무게를 9.4g으로 약 19% 경량화하는 데 성공했다.

롯데칠성음료는 기존의 플라스틱 감량 방식이 한계에 도달하자 질소 충전을 통한 내압 형성 기술이라는 혁신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먹는샘물에 질소를 충전할 경우 ‘혼합음료’로 분류되는 현행 법규가 걸림돌이었다. 이에 롯데칠성음료는 환경부에 적극행정을 제안했고, 규제 개선을 위한 시범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며 초경량 생수 개발의 물꼬를 텄다.

롯데칠성음료는 시범사업을 통해 용기 내부에 질소를 충전해 강도를 보강하는 방식으로 페트병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기존 11.6g이었던 500ml 생수병을 9.4g으로 약 19% 경량화하는 데 성공했다. 또한 얇아진 용기로 인해 물을 마실 때 넘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병 중간이 잘록한 인체공학적 디자인을 적용해 소비자 편의성까지 고려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을 통해 롯데칠성음료는 2024년 10월 제품 출시 이후 1년간 약 54톤의 플라스틱 사용량을 절감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는 단순히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을 넘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산업계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친환경 기술 개발을 촉진한 민관 협력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롯데칠성음료는 현재 생산 중인 500ml 먹는샘물 제품군에서 초경량 생수의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여나갈 계획이다. 전면 적용 시 연간 약 268톤의 플라스틱 감축 효과가 예상되며, 이를 통해 생수 시장의 친환경 트렌드를 주도하고 탄소 중립 실현에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 현대그린푸드, 버려지던 식자재를 가축의 식사로…‘업사이클링’의 진화

버려지던 식품 부산물이 가축의 사료로 재탄생한다. 현대그린푸드가 참여한 ‘식품부산물 고부가가치 사료자원화 시범사업’ 업무협약식과 자원순환 프로세스. 단체급식소 등에서 위생적으로 배출·보관된 식자재 부산물을 별도 수거해 고품질의 배합 사료 원료로 활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현대그린푸드는 식품 제조 및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질의 부산물이 폐기물로 처리되는 비용과 환경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식품부산물 사료 자원화’ 시범사업에 참여했다. 특히 대형 급식소나 가공 공장에서 나오는 조리 전 채소류나 빵류 등은 영양학적으로 훌륭한 사료 원료가 될 수 있음에도 제도적 한계로 버려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번 시범사업은 유통 과정에서 상품성이 떨어진 과일·채소나 식품 공장의 규격화 과정에서 남은 식자재를 위생적으로 수거해 돼지 등 가축의 사료로 재활용하는 프로세스를 실증하는 데 중점을 뒀다. 현대그린푸드는 배출부터 보관, 수거, 자원화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선도 모델을 구축해 부산물의 사료화 가능성을 검증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대그린푸드는 연간 약 11만6000톤에 달하는 식품 부산물을 고부가가치 자원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는 폐기물 처리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사료 원료의 자급률을 높이고 축산업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그린푸드는 이번 실증 결과를 바탕으로 농식품 부산물이 순환자원으로 인정받고, 사료 원료의 허용 범위가 확대되도록 제도 개선에 적극 동참할 계획이다. 향후 식품 산업 전반에 적용 가능한 ‘표준 자원순환 모델’을 구축해 버려지는 식자재가 없는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식문화 조성에 앞장서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