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안전사례,수출식품 부적합 사례

한국 식품기업의 ‘안전한’ 알러젠 표시가 FDA에게는 ‘위험 신호’인 이유

곡산 2025. 11. 3. 07:40

한국 식품기업의 ‘안전한’ 알러젠 표시가 FDA에게는 ‘위험 신호’인 이유 

  •  이주형 전문위원
  •  승인 2025.07.15 08:44

 

이주형의 식품수출 실전노트 2. 교차오염 경고문구의 함정과 미국 진출 전략

이주형
법무법인 비트
글로벌식품산업지원실장/전문위원

한국 기업이 모르는 FDA의 시선
“이 제품은 밀, 대두, 우유, 견과류, 달걀, 새우, 게를 사용하는 시설에서 제조되어 해당 알러젠이 혼입될 수 있습니다.”

한국 식품기업들이 ‘안전을 위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이 문구를 본 FDA 실사관은 무엇을 생각할까? 놀랍게도 그들의 해석은 우리 예상과 정반대다. “우리는 7개 주요 알러젠을 통제할 능력이 없습니다”라는 자백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오랜 동안 한국 식품기업의 미국 진출을 지원하면서, 나는 이 작은 문구 하나가 얼마나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지 목격해왔다. 성공적으로 FDA 승인을 받고 미국 시장에 안착한 기업들과 예기치 못한 규제 장벽에 부딪힌 기업들의 차이는 바로 이 ‘인식의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두 개의 철학, 하나의 시장
한국과 미국의 알러젠 관리 철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 기업들은 ‘모든 가능성을 표시해서 안전하게’라는 방어적 접근을 선호한다. 제조 시설에서 여러 알러젠을 취급한다면, 혹시 모를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해 모든 알러젠을 나열하고 “혼입될 수 있다”는 주의 문구로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이다.

반면 FDA는 ‘과학적 근거 기반의 예방 중심’ 철학을 고수한다. 교차오염 가능성이 있다면 먼저 그것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고, 그래도 불가피한 경우에만 주의 문구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FDA 가이던스는 명확히 밝히고 있다: “식품 알러젠 주의 문구는 현행 우수제조관행(cGMP) 준수의 대체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진실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법적 근거와 실제 위험
이런 인식 차이가 단순한 문화적 차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실제로 여러 연방법 위반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연방식품의약품화장품법(Federal Food, Drug, and Cosmetic Act) 제403조(a)(1)항 위반 가능성이다. 이 조항은 “라벨링이 거짓이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 해당 식품을 오표시(misbranded)로 규정한다. 실제 교차오염 위험이 없거나 미미한데도 포괄적 경고를 표시하는 것은 소비자를 오도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둘째, 연방규정집(CFR) 제117편의 HARPC(Hazard Analysis and Risk-Based Preventive Controls) 규정 위반이다. 특히 21 CFR 117.135(c)(2)는 “식품 알러젠 통제에는 알러젠 교차접촉으로부터 식품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 관행, 공정이 포함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c)(1)이 물리적 교차접촉 방지를, (c)(2)가 라벨링을 다루고 있어 물리적 통제가 우선 의무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21 CFR 117.10(b)의 현행우수제조관리기준(cGMP) 위반이다. 이 조항은 “식품과 직접 접촉하는 모든 직원이 알러젠 교차접촉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 관행을 준수하도록 합리적 조치와 예방책을 취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주의 문구는 이런 물리적 통제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이 FDA의 일관된 입장이다.

실제 사례가 말하는 FDA의 철학
이론적 해석보다 더 명확한 것은 실제 FDA 경고서한 사례들이다. 

2024년 8월 플로리다주 M사에 발송된 경고서한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이 회사는 코코넛이 포함된 피나 콜라다 케이크를 만든 후 같은 장비로 코코넛이 없는 모카 케이크를 제조하면서 장비를 청소하지 않아 실제 교차오염이 발생했다. 놀라운 것은 FDA의 대응이었다. 실제 교차오염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FDA는 “may contain coconut” 같은 경고 문구 사용을 권고하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링, 시정조치, 검증이 포함되지 않은 서면 예방통제 프로그램 절차”를 지적하며 구체적인 물리적 통제 시스템 구축을 요구했다.

또 다른 사례는 2024년 9월 미시간주 K사에 발송된 두 번째 경고서한이다. 이 회사는 이미 2024년 1월 우유 미표시로 한 차례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밀, 우유, 호두를 포함한 알러젠 관리에 대한 모니터링 및 검증 절차가 부족하고, 공유 장비 및 불충분한 라벨링 관행이 알러젠 교차접촉 위험을 초래했다”는 이유로 재차 경고를 받았다. 여기서도 FDA는 경고 문구가 아닌 시스템적 해결책을 요구했다.

이 사례들이 보여주는 FDA의 일관된 메시지는 명확하다. 실제 교차오염이 발생해도 경고 문구로 면책하려 하지 말고, 근본적인 예방통제 시스템을 구축하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의 전형적 실수 패턴
컨설팅 경험을 통해 관찰한 한국 기업들의 전형적 실패 패턴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라벨링 우선 접근’이다. 실제 교차오염 위험 평가 없이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마음으로 주요 알러젠 9개를 모두 나열하는 방식이다. 한 중견 과자업체 대표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박사님, 다 써놓으면 안전하지 않나요?” 하지만 FDA는 이를 “9개 알러젠을 모두 통제할 수 없다는 자백”으로 해석한다.

두 번째는 ‘일반적 위생만 적용’하는 패턴이다. 미생물 위생 관리는 철저히 하면서도 알러젠 특화 조치는 소홀히 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손 세척은 하지만 알러젠 취급 전후 특별 세척 절차는 없고, 장비 청소는 하지만 알러젠 제거 효과성 검증은 하지 않는 식이다.

세 번째는 ‘교육 부족’이다. 직원들에게 “조심하세요”, “주의하세요” 수준의 일반적 교육만 하고 구체적인 알러젠 관리 절차는 교육하지 않는 경우다. FDA가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인 조치 및 예방책(reasonable measures and precautions)”인데, 이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조치를 의미한다.

실무적 해결책과 전환 전략,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단계는 현재 상태 진단이다. 자사가 사용하고 있는 알러젠 주의 문구를 모두 검토하고, 각각에 대해 실제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이 시설에서 견과류를 사용한다”고 표시했다면, 정말로 견과류 함유 제품과 무함유 제품이 같은 라인에서 제조되는지, 교차오염 가능성이 실제로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2단계는 물리적 통제 시스템 구축이다. 실제 위험이 있다면 분리, 청소, 스케줄링 등을 통해 이를 제거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알러젠 함유 제품을 제조한 후 무함유 제품을 만들 때는 검증된 청소 절차를 거쳐야 하고, 가능하다면 알러젠 함유 제품을 생산 스케줄 마지막에 배치하는 것이 좋다.

3단계는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이다. 구축된 통제 조치가 실제로 효과적인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청소 후 알러젠 잔류물 검사, 환경 모니터링, 제품 샘플링 등을 통해 교차오염이 실제로 방지되고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

4단계는 기록과 검증이다. 모든 통제 조치와 모니터링 결과를 문서화하고, 정기적으로 전체 시스템의 효과성을 재평가해야 한다. FDA는 “기록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If it's not documented, it didn't happen)”이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5단계는 필요시에만 표시하는 것이다. 이 모든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교차오염 위험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는다면, 그때서야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구체적 주의 문구를 사용할 수 있다.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
실제로 이런 접근법으로 성공한 사례가 있다. 한 대형 제과업체는 초기에 “견과류 사용 시설” 포괄 표시를 사용하다가, 미국 진출을 앞두고 전면적인 시스템 개편을 단행했다. 견과류 함유 제품과 무함유 제품의 생산 라인을 물리적으로 분리하고, 불가피하게 같은 라인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철저한 청소 절차와 검증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제품에서 알러젠 주의 문구를 제거할 수 있었고, 일부 제품에만 구체적이고 과학적 근거가 있는 표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FDA 실사를 무사히 통과했고 현재 미국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반대로 실패한 사례도 있다. 한 중견 식품업체는 기존 포괄 표시 방식을 고수하다가 FDA 실사에서 Form 483을 받았다. 실사관이 지적한 내용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귀하 시설은 교차접촉을 방지하기 위한 물리적 통제를 구현하는 대신 주로 예방적 라벨링에 의존했습니다.” 이 회사는 결국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시설을 개선해야 했고, 미국 진출 일정이 2년 가까이 지연되었다.

글로벌 트렌드와 미래 전망
이런 변화는 미국만의 트렌드가 아니다. 유럽연합도 2025년부터 알러젠 교차오염 관리 규정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 역시 과학적 근거 기반의 알러젠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개발된 VITAL(Voluntary Incidental Trace Allergen Labeling) 프로그램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VITAL 프로그램의 핵심은 알러젠 농도와 섭취량을 고려한 위험 평가다. 단순히 “혼입 가능성”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섭취 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농도인지 과학적으로 평가하여 표시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FDA도 이런 방향으로 정책을 발전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컨설팅 경험에서 얻은 교훈
수출 기업들과 함께 일하면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인식 전환의 중요성’이다. 단순히 규정을 준수하는 것을 넘어서 FDA의 철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기업들이 결국 성공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한 CEO의 말이다. “박사님, 처음에는 FDA가 까다롭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소비자를 정말로 보호하려는 거네요.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해야겠어요.” 이런 마인드셋 변화가 있어야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또 다른 교훈은 ‘전문가와의 협업 필요성’이다. 알러젠 관리는 법무, 품질관리, 생산, 연구개발 등 여러 부서가 협력해야 하는 복합적 이슈다. 특히 미국 진출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현지 규정에 정통한 전문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혼자서 인터넷 자료만 보고 준비하다가 낭패를 본 사례를 너무 많이 봤다.

FDA는 경고보다 예방을 원한다
결국 핵심은 간단하다. FDA는 ‘할 수 없다’는 고백이 아니라 ‘하고 있다’는 증명을 원한다. 한국의 ‘모든 가능성 표시’ 관행은 미국에서 통하지 않는다.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단순한 규정 준수를 넘어서 FDA의 철학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소비자 안전을 위해 실질적인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효과성을 지속적으로 검증하며, 투명하게 소통했다.

미국 시장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진입 장벽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알러젠 관리는 단순한 라벨링 이슈가 아니라 전사적 품질관리 시스템의 문제다. 지금이라도 인식을 전환하고 체계적으로 준비한다면,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혼자서는 어렵다. 전문가와 함께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인식 전환이다. FDA가 요구하는 것은 완벽한 시스템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다. 그리고 그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