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09.09 11:50
달라진 음주 문화에 국내선 '위기', K-콘텐츠 타고 해외선 '활로' 모색
한때 ‘국민 술’ ‘서민의 술’로 불리며 한국인의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소주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각종 통계는 소주의 국내 소비량이 감소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변화의 중심에는 새로운 음주 문화를 이끄는 MZ세대와 코로나19를 거치며 달라진 사회상이 자리 잡고 있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희석식 소주의 국내 출고량은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주류 시장 전체 출고금액이 10조원에 육박하며 반등하는 듯 보였으나, 이는 주류 가격 인상과 고급 주류 소비 증가에 따른 ‘착시 효과‘였다. 실제 출고량은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5.3%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국내 희석식 소주(일반적인 녹색 병 소주)의 연간 출고량은 최근 5년간 감소 추세를 보였다. 2019년 91만kL를 넘었던 소주 출고량은 코로나19가 본격화된 2020년(87만7690kL, ▼4.1%)과 2021년(82만5958kL, ▼5.9%)에 걸쳐 연속적으로 큰 폭으로 감소했고, 2022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전년 대비 4.4% 증가하며 반등하는 모습(86만2000kL, ▲4.4%)을 보였으나 2023년(84만4250kL, ▼2.1%)에는 다시 출고량이 감소세로 돌아섰다.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2022년 3분기 825억 원이었던 ‘처음처럼’의 매출은 제로 슈거 소주 ‘새로‘가 출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2023년 4분기에는 512억 원까지 하락했다. 하이트진로는 약 65%에 달하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매출을 유지하고 있으나 2019년 출시 초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던 ‘진로이즈백’의 경우 점차 안정화 단계에 접얻르면서 일부 분기에서 소폭의 매출 감소를 보이기도 했다.
소주가 주춤하는 사이 그 빈자리는 와인, 위스키, RTD(Ready-to-Drink) 등 다양한 주종이 빠르게 채우고 있다. 특히 위스키 수입액은 2023년 1분기에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다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을 증명했다.
이러한 지각 변동의 진원지로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꼽힌다. 기성세대처럼 회식 자리에서 획일적으로 소주잔을 기울이기보다 개인의 취향에 맞는 술을 즐기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들은 하이볼, 와인, 수제맥주, 전통주 등 다채로운 주류 리스트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또한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 트렌드에 맞춰 ‘제로 슈거’ 소주를 선호하는 한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맛과 경험을 중시하며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실제로 2022년 증류식 소주 출고량은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이 급증하며 고급화 전략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혼술(혼자 마시는 술)’ ‘홈술(집에서 마시는 술)’ 문화의 확산 역시 소주 소비 패턴에 영향을 미쳤다. 더 이상 취하기 위해 마시는 ‘부어라 마셔라’ 식의 음주가 아닌, 맛과 향을 음미하는 ‘미식’의 영역으로 주류 문화가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직장 회식 문화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강압적인 음주를 동반한 단체 회식이 급격히 줄면서 회식의 상징과도 같았던 소주의 소비량도 자연스레 감소했다.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인 10명 중 6명은 회식 불참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고 답했으며, 이상적인 회식 횟수로는 ‘1년에 1~2회’라는 응답이 많았다. 술을 강요하지 않고,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소주가 설 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국내 시장의 위기와는 반대로, 소주의 해외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K-콘텐츠의 영향력 확대에 힘입어 2023년 소주 수출액은 1억 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특히 다양한 과일 맛을 가미한 ‘과일 소주’가 미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K-주류‘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시장 변화에 대해 주류업계 관계자들은 복합적인 심경을 내비치고 있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비자들은 술자리에서 무조건 취하기보다는 부담 없이 즐기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특히 20~30대 고객층에서 저도수 술이나 하이볼 같은 다양한 주종에 대한 수요가 눈에 띄게 늘고 있어 이는 단기 유행이 아닌 장기적인 소비 패턴의 변화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내 주류 시장은 외식 및 유흥업 경기 침체와 젊은 층의 음주 문화 변화가 겹치면서 단기간에 반등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도 “대신 해외에서 K-푸드 인기에 힘입어 소주의 인지도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만큼 글로벌 시장 공략의 성패가 향후 실적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론적으로 국내 소주 시장은 새로운 소비 주체인 MZ세대의 등장과 음주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국민 술’이라는 왕관의 무게를 내려놓고, 다변화하는 시장과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프리미엄화, 다양화 등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할 중대한 기로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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