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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든 국산 분유, 사업 구조 재편 박차

곡산 2025. 7. 8. 21:01
쪼그라든 국산 분유, 사업 구조 재편 박차
  •  황서영 기자
  •  승인 2025.07.08 07:55

신생아 감소…2600억으로 6년 만에 38% 축소
매일유업·남양·롯데웰푸드 등 일부 제품 단종
해외서 활로 모색…동남아·중국 시장 공략 성과
노하우 살려 고령친화식품서 성장 동력 찾아
빈 자리엔 수입산…4200여 톤 반입 25~30% 점유
 

대한민국이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으며 영유아 식품 시장의 지형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한때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책임지며 ‘귀한 대접’을 받던 국산 분유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아기 울음소리가 귀해진 현실은 분유 생산라인의 가동 중단과 기업들의 사업 전략 전면 수정이라는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분유 시장 규모는 2017년 4314억원에서 2023년 약 2672억원으로 6년 만에 38%나 쪼그라들었다. 40만 명을 웃돌던 연간 출생아 수가 23만 명 선으로 추락한 현실이 시장 축소를 가속화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분유 3사(남양유업, 매일유업, 롯데웰푸드)와 후발주자였던 LG생활건강까지 수익성 낮은 제품을 과감히 단종시키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극심한 저출산으로 국내 분유 시장이 붕괴 위기에 처하자 유업계는 제품 단종과 함께 고령친화식품으로 사업을 전환하고 해외 수출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위기의 가장 명확한 신호는 익숙했던 제품들의 잇단 단종이다. LG생활건강은 2022년 하반기 영유아 식품 전문 브랜드 ‘베비언스’의 ‘킨더밀쉬’와 ‘카브리타 산양분말분유’ 등 식품 라인 생산을 전면 중단하며 10년 만에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액상 분유 시장을 개척하며 주목받았지만 저출산의 벽을 넘지 못했다.

 

매일유업은 상대적으로 저가 라인인 ‘앱솔루트 본’의 생산을 중단했고, 롯데웰푸드 역시 대표 브랜드였던 ‘위드맘 100일’의 운영을 중단했다. 남양유업도 ‘임페리얼XO 유기농’과 ‘임페리얼XO 액상분유’ 등 일부 제품을 단종하며 쪼그라드는 시장에 대응하고 있다.

영유아식 시장 축소라는 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고령친화식품(실버 푸드)’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나섰다. 영유아식을 만들며 쌓아온, 소화가 잘되고 영양이 풍부한 식품 개발 노하우를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한 고령층 공략에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매일유업의 성인영양식 브랜드 ‘셀렉스’는 가장 성공적인 변화 사례로 꼽힌다. 근감소 예방을 위한 단백질 제품을 중심으로 고령층은 물론 건강을 생각하는 3040세대까지 사로잡았다. 남양유업은 중장년층을 위한 단백질 보충제 ‘테이크핏 케어’와 환자 영양식 ‘프레주빈’으로 케어푸드 사업 다각화를 추진 중이며, 롯데웰푸드 또한 ‘롯데헬스원’을 통해 고령층 영양보충 제품을 확대하고 있다.

 

수익성을 이유로 수많은 제품이 단종되는 흐름 속에서도 매일유업은 20년 넘게 특수 분유 생산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선천성 대사 이상 질환을 앓는 환아들을 위한 8종 10개 제품으로, 연간 생산량은 1만 개 남짓에 불과해 수익성은 전무하다. 하지만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되지 않게 한다”는 기업 철학 아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깊은 울림을 준다.

 

국내 시장의 위축과 대조적으로 국산 분유는 해외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으로의 분유 수출량은 2465톤(수출액 3067만 달러)으로 5년간 2.25배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아세안 국가 최대 수입국은 캄보디아와 베트남이다.

 

특히 캄보디아는 K-분유의 최대 수출국으로 떠올랐다. 특히 남양유업은 현지 맞춤형 제품 출시 등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캄보디아 분유 시장의 80~90%를 점유하는 기염을 토했다. 캄보디아의 한국산 조제분유 수입량은 2024년 1543톤으로 5년 전에 비해 5배 가량 증가하며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산 조제분유를 많이 수입하는 국가가 됐다. 베트남 역시 롯데웰푸드를 중심으로 국산 분유의 인기가 뜨겁다. 베트남의 한국산 조제분유 수입량은 919톤으로 2019년 대비 18% 가량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 분유의 품질과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 결과로 분석된다.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며 발전해온 기술력이 해외 시장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매일유업·남양유업 등 유업체들은 작년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분유 수입 규제가 완화되면서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산 분유의 잇단 단종으로 생긴 빈자리는 수입 분유가 빠르게 채우고 있다. 수입 분유의 시장 점유율은 약 25~3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과거 품질 논란 등으로 형성된 불신과 함께 더 안전하고 다양한 성분의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이러한 현상은 수입량 통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관세청에 따르면 조제분유 수입량은 2020년 4656톤에서 2023년 4912톤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해에는 4215톤으로 전년 대비 14.2% 감소하긴 했지만, 안전성과 다양한 성분을 중시하는 국내 소비자들이 독일, 뉴질랜드, 아일랜드, 프랑스 등 유럽산 유기농 및 프리미엄 분유를 선호하는 현상은 여전히 뚜렷하다.

저출산이라는 거대한 파도는 이처럼 대한민국 영유아 식품 시장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국산 분유의 빈자리를 수입 분유와 고령친화식이 빠르게 채워가는 지금, 우리 식탁의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업계 한 관계자는 “저출산 현상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구조적 흐름이 되면서 영유아식 시장의 양적 성장은 사실상 끝났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에 업계는 생존을 위해 영유아기뿐만 아니라 고령층의 건강까지 책임지는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헬스케어 기업’으로의 변신을 가속화할 것”이라며 “기존 영유아식 사업은 소수의 VIB(Very Important Baby)를 겨냥한 프리미엄 라인이나 특수 분유처럼 수익성 높은 틈새시장에 집중하는 형태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그리고 사업 다각화로의 전환이 향후 업계의 생존을 좌우할 핵심 전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