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서영 기자
- 승인 2024.02.05 07:52
드레싱·스프레드 등 서양 식문화 맞는 제품으로 접근
외국인에 먹는 방법·새로운 양식 요리 가능성 알려 줘야
장류, 벤처 정신 가져야…영세 기업 돌파형 혁신 필요
안전성 등 장류 산업 현안, 조합 중심 업계 의견 조율을
‘장류 현안과 미래’ 노변청담 토론회
“전 세계에서 고추장 등 한국 장류가 영양학적 측면에서 드높은 위상을 펼치고 있습니다. 소스의 영역으로 보폭을 넓혀 소비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합니다. 단 우리 정통성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해외 소비자도 쉽게 수용할 가능하도록 변화가 이뤄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빵에 발라먹는 버터를 고추장이 대체할 수 있는 연구개발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합니다.”
서구화된 식단과 젊은 세대의 외면으로 국내 장류산업이 갈수록 침체기를 겪고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K-푸드’ 붐이 일고 있는 만큼 우리 장류도 이에 편승해 세계인의 식탁으로 침투해야 한다는 식품업계 원로들의 의견이 제기됐다.
특히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간편식 비중이 늘며 식품산업 반도체로 불리는 소스산업 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추세에 맞춰 소비 니즈에 부합하는 장류의 색다른 변신이 필요한데, 특히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우리 장류의 경우 전통성을 계승한 고유의 발효기술이 접목된 품목으로, 해외시장에서 대체하기 힘든 희소성까지 갖추고 있어 충분히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원로들의 주장이다.
지난달 30일 장류협동조합과 함께 한 노변청담 토론회에서 학계·업계 원로들은 ‘우리 장류산업 현안과 미래’를 주제로 토론하며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국내 장류 시장규모는 2010년대 중·후반 1조2000~3000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감소해 현재는 약 9900억 원 규모에 머물고 있다. 반면 수출은 2020년 8600만 달러, 2022년 9500만 달러에서 작년 1조100억 달러 규모로 매년 성장하고 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는 K-푸드 열풍이 일고 있는 지금이 장류 세계화의 적기라고 강조하며, 이를 위해서는 현지 식습관과 트렌드를 반영한 소스제품 개발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장류는 모두 소스류에 속하는 식품으로 최종적인 음식의 맛과 향을 좌우하는 열쇠다. 세계 유명 셰프들의 경우 어떤 소스를 음식에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요리 비법으로 간직하고 있을 정도로 소스는 요리에 있어 중요한 요소”라며 우리 장류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제품 개발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외국인들도 거부감없이 수용 가능한 혼합장류와 같은 새로운 변신과 보급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거부감 없는 색택의 구현, 상쾌한 향의 부여 그리고 유제품에서 오는 부드러운 맛을 유사하게 창출해 이러한 맛이 익숙한 세계인들의 구미에 맞출 필요가 있다. 향후 빵에 발라 먹는 버터를 장류 소스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재단 명예이사장은 “한국의 장류는 세계 시장에서 소스제품뿐 아니라 식물성 고기맛을 만드는 소재산업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서양의 음식문화에 적용할 수 있는 신제품을 개발해 국내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테스트와 마케팅을 시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명예이사장은 신제품의 예시로 △고추장을 이용한 핫소스·페퍼소스 △쌈장을 이용한 새로운 샐러드 드레싱 △간장을 이용한 진한 고기맛과 풍미를 내는 바비큐 소스 △굴소스류의 무침용 및 국간장 △크림치즈를 대체할 수 있는 된장 스프레드 등을 제안했다.
권대영 호서대 교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K-장류를 적극 홍보하는 방안도 요구된다. 신제품 개발도 중요하지만 장류가 무엇인지, 장류로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는지 등 알리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여기서 얻는 정보를 통해 외국인들이 원하는 방향에서 장류를 개발해야 한다. 우리 장류의 전통성과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그들에게 익숙한 맛과 용도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창모 고려대 교수는 국내 장류시장에도 ‘돌파형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의 진출이 제한된 국내 장류시장의 경우 대기업은 시판할 수 있는 제품이 한정적이지만 중소기업들이 오히려 더 맛있고 독특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독창적인 제품의 생산을 스케일 업(Scale-up)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공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타 산업에서 적용 가능한 사례를 적극적으로 배우는 장류업계인들의 벤처정신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형희 식품외식경제신문 대표는 “최근 식품·외식산업의 트렌드는 크게 ‘헬스(Health)’와 ‘웰니스(Wellness)’를 꼽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의 스타셰프들이 발효 식품에 열광하고 있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우리 장류가 외국인들이 사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기도 해 안타깝다”며 “우리 장류의 소스화, 드레싱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어떻게 유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된장이나 고추장을 분말화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이 이뤄져 해외에서 우리 장류를 먼저 찾는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장류의 기능성을 강조한 제품 개발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는 특장점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채수완 전북대 교수는 “현재 비만, 당뇨, 고혈압 등 대사질환이 만연하고 있다. 근본 원인은 결국 과다 사용에 있다. 발효과학을 토대로 개발된 우리 장류의 기능성이 곧 글로벌 트렌드인 웰니스에 부합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세계화에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용호 서울대 수의대 교수 역시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우리 장류가 다양한 질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학계를 통해 입증되고 있으며, 해외에서도 건강 효능 및 효과에 대해 기능성을 갖춘 제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며 “이러한 점을 미래의 소비자가 될 우리 아이들에게 전파하는 것도 세계화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이군호 식품음료신문 발행인은 장류산업의 현안 해결을 위해서는 조합 중심의 업계간 조율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간장 유형 통합 등 업계-소비자간 혼동 해결과 식품 안전을 위한 노력의 첫걸음은 업계간 의견 조율이다. 특히 장류의 전통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산분해 간장에 대해 ‘화학물’ ‘화학 간장’ 등 부정적 이미지를 씌우며 업계와의 상호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결코 산업에 긍정적 요인이 될 수가 없다”며 “업계간 의견을 하나로 모으고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장류조합의 구심점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현재 장류업계를 비롯한 모든 식품업계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원료 문제로 애로사항을 겪고 있다. 이럴 때 조합 차원에서 국제 원재료 가격의 급등락 현황 및 현지 물량과 가격에 대한 동향을 분석해 정보를 제공한다면 업계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조재선 경희대 명예교수는 “요즘 정부와 소비자들이 식품 물가에 주목하면서 간장과 된장 가격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하지만 장류 소비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실제 가격 또한 다른 식품에 비해 낮은 편이다. 소비하는 양은 적고 장류를 우대하는 상황도 아니면서 가격만 따지는 현 상황이 사회적으로 구조 모순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전통식품을 다루는 업체들이 뭉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윤기 장류협동조합 전무는 “식생활 변화에 따라 국내 장류 소비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상황이 이러자 장류사업자의 후계로 성장한 2세대, 3세대가 사업 계승을 꺼리고 있어 산업의 발전 가능성이 녹록치않은 실정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하루속히 장류산업 발전 및 육성에 관한 법률 등 산업을 뒷받침하는 제도적 마련이 시급하며, 조합에서도 불균형한 산업구조의 격차해소를 위해 대기업-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관계를 공고히 하며 업계 스스로 자구력을 기르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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