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전반

[기획] 쌀가공식품 발전, 발목 잡는 ‘정부양곡 이물’ 문제 해결책은 없나?(하)

곡산 2024. 1. 24. 07:29
[기획] 쌀가공식품 발전, 발목 잡는 ‘정부양곡 이물’ 문제 해결책은 없나?(하)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4.01.23 07:54

쌀가공 업계 “이물, 생존 걸린 문제…올해는 반드시 해결”
품질관리원 검사 통과한 원료곡 매년 이물 혼입 증가
시스템 점검 통해 미비한 도정 공장 정부 지원 배제를
 

정부양곡 이물 문제로 쌀가공식품업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꾸준히 반복되는 악순환이지만 갈수록 상황이 더 심각해 올해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연간 약 40만톤에 달하는 정부양곡은 대한곡물협회 회원사인 도정공장을 거쳐 쌀가공식품업체에 무작위로 공급된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의 검사를 통과한 원료곡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물 혼입건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물 혼입은 식품업체가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식약처 조사 결과에 따라 해당업체는 영업정지 등 행정 처분을 당할 수 있고 HACCP 지정도 즉시 취소된다.

 

무엇보다 이물건이 발생하게 되면 소비자 신뢰 저하로 업의 지속 여부를 위협받는 만큼 업체에서는 이러한 문제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끊임없이 곡물협회 측에 요구하고 있지만 개선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 지난 30여 년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떡볶이 제조업체의 한 대표는 “이물은 안전문제와 직결된다. 식품에서 안전 문제는 생사가 달린 심각한 사안이다.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경우 소비자 외면을 받아 산업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도정공장이나 곡물협회는 식품업체에서 과도하게 민원을 제기한다고 하지만 안전 문제인 만큼 업체가 과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전국의 정부양곡 도정공장과 보관창고 등의 시설과 관리 시스템에 대해 면밀히 점검하고, 이물질 등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시설이 낙후됐거나 미비한 도정공장에 대해 압박하고, 정부 지원 등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것.

 

정부도 지난 2021년 정부양곡 도정공장에 대한 등급제 등 개선방안을 내놓았으며, 올해부터 B등급 도정공장은 계약에서 배제시키겠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이에 따라 올해는 전체 도정공장 120여 곳 중 B등급 공장인 약 10여 곳이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물 혼입 발생은 등급의 문제와는 별개라는 것이 업계 주장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소위 말하는 S등급 도정공장의 원료곡에도 이물이 발생한다. 공장주 대부분 정부양곡에 대한 관리가 허술하다. 심지어 관리에 대한 개념 조차 없는 곳이 태반이다. 시설 문제와 별개로 공장주의 마음가짐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높은 등급을 획득해도 이물 문제는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 쌀가공업체에서 하나같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신뢰할 수 있다는 도정공장이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 모범 사례 ‘남선상사’

‘원료곡 안전’ 최우선…10억 투자 설비 전국 유일
헤어캡 착용 검출기 등으로 이물 걸러…대기업과 거래 
연류계 부착 물량보다 품질 중시…저온 저장고도 갖춰 
정부 등급제, 시설만 다뤄…위생적 결과물 혜택 주어야

품질관리팀이 양곡에 대한 품질검사를 마치면 금속검출기 등 정화 과정을 거쳐 정미에 들어간다.(사진=식품음료신문)

충북 청주 소재 남선상사가 그 주인공. 약 10억 원을 들여 2년 전 설비를 증축한 오준환 대표는 과거 식품 대기업에 원료곡을 납품하는 과정을 통해 이물 등 안전 문제를 최우선 경영방침으로 내세우고 있다.

오준환 대표(사진=식품음료신문)
 

지금도 식품대기업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오 대표는 “설비증축 후 지금까지 머리카락 한 올 나온 적 없다. 과거 식품업체 직원이 머리카락을 들고 찾아온 적이 있다. 원인을 살펴보니 공정 과정에서 직원들의 머리카락이 상상이상으로 많이 혼입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전 직원이 헤어캡을 착용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선상사는 정부양곡이 들어오면 가장 먼저 품질관리팀이 육안으로 선별하고, 상태별로 분류해 정화 과정을 거친다. 이때 싸라기 판별기, 금속검출기, 색채선별기(현미, 백미 각각 보유) 등을 통해 상당수 이물을 거르는데, 이 같은 설비를 갖춘 곳은 전국에서 남선상사가 유일하다.

일반적인 도정공장의 경우 색채선별기 1대(의무)를 보유하고 있으나 남선상사는 현미와 백미 각각의 선별을 위해 2대를 구비했다.(사진=식품음료신문)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모든 공정에 부착된 연류계다. 연류계를 공정에 도입한 곳도 전국 도정공장에서 남선상사뿐이다. 여전히 대다수 도정공장은 지난 30여 년간 이어져온 관습 그대로 수기로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정공장에서 연류계를 도입하지 않은 이유는 비용 문제도 있지만 수율 문제와 관련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현재 의무 생산량 72% 외에 나머지 물량은 도정공장의 몫으로 돌아가다보니 일부 업체에서는 물량을 늘리기 위해 싸라기 등을 다시 주워 담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물 혼입이 심각하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반면 연류계 부착 시 전 공정에 걸쳐 투명하게 수치화되다보니 물량을 임의대로 늘릴 수가 없다. 원료곡의 품질 안전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악습이 뿌리 깊게 녹아든 것이다.

모든 생산 공정에 연류계를 부착해 투명하게 수치화되고 있다. 수치화된 값은 DB로도 관리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사진=식품음료신문)
 

저온저장고를 보유한 곳도 남선상사 밖에 없다. 오 대표는 “저온저장고 도입의 발단은 화랑곡나비 등 벌레 때문이었다. 겨울철은 그나마 나은데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는 벌레와의 전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던 중 15℃ 이하에서 보관할 경우 벌레 유입을 방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저온저장고를 즉각 확보했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저온저장고를 통해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고 밝혔다. 쌀에 크랙이 발생하는 동할립 발생 비율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동할립이 발생한 쌀로 밥을 지으면 죽이 되고, 튀밥을 만들면 밥알이 깨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오 대표는 도정공장이 좋은 품질의 원료곡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양곡을 받을 때부터 꼼꼼하게 체크하고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대표는 “정부 양곡의 경우 농가에서 수확 후 허술한 보관 문제 등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원인이 분명히 발생하는데,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일례로 정부양곡에 쥐와 벌레가 가득한 상태로 공급받은 적이 있어 이 부분을 끊임없이 지적했더니 현재는 이러한 물량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상당수의 도정공장에서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 부분만 개선돼도 현재 논란이 되는 이물 등 품질 문제의 절반은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정부의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그동안 정부는 등급제 등 채찍만 휘두른 경향이 크다. 일을 꼼꼼하게 하고, 문제 발생이 없을 경우 혜택을 준다는 당근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도정공장에서는 채찍 피하기에만 급급했다”며 “특히 등급도 시설에 대한 것에만 매기고 있다. 안전하고 위생적인 결과물을 생산하는 과정이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전반적인 시스템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대표는 “현재 시스템이 회사 입장에선 효율이 크게 떨어지지만 위생 문제만큼은 확실히 개선되고 있다. 위생 부분만 해결된다면 좋은 원료가 생산된다. 이 원료로 쌀가공식품업체가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가교역할을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부양곡 입고 시 15℃ 온도 이하를 유지하는 저온저장고에서 보관 관리하고 있다.(사진=식품음료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