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전반

[기획] 쌀가공식품 발전, 발목 잡는 ‘정부 양곡 이물’ 문제 해결책은 없나?(상)

곡산 2024. 1. 16. 08:14
[기획] 쌀가공식품 발전, 발목 잡는 ‘정부 양곡 이물’ 문제 해결책은 없나?(상)
  •  이재현 기자
  •  승인 2024.01.16 07:52

30여 년 곡물협회에 개선 요구해도 고질병은 고착
도정 공장 72% 책임 생산량 외엔 품질보다 수율에 집중
혼입된 이물 볼트서 플라스틱·벌레·유리·쥐까지 다양
이의 제기 땐 “정부 기준 통과…낮은 가격에 웬 불만?”
수출 2억 불 넘는 쌀가공식품 해외서 안전성 위협
가공용 쌀 2배 증량 계획, 이물 선결 안 되면 골칫거리
 

“정부양곡이 도정공장을 거쳐 공급받게 되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해야 할 업무가 태산인데도, 전 직원이 이물 확인 작업에 매달려 정작 업무가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최근 만난 한 쌀가공식품 업체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즉석밥, 떡볶이 등 쌀가공식품이 사상 최초 2억 달러 수출액을 넘기는 효자품목으로 등극했음에도 30여 년 이상 지속된 정부양곡 이물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오히려 이물 문제는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식품에 있어 이물 발생은 영업정지 등의 행정 처분을 당할 수 있는 생사와 관련된 가장 심각한 사안이다. 때문에 이러한 문제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개선책을 곡물협회 측에 끊임없이 요구해 왔으나 책임 회피만 할 뿐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러한 문제점을 가공용쌀 공급체계의 구조적인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정부양곡의 가공용쌀 공급체계는 도정수율인 72%의 책임 생산량을 충족하고, 남은 잔량에 대해 정부양곡 도정공장 소유로 하고 있다보니 공장주는 품질을 높이기보다는 생산을 늘리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보니 수율을 1% 이상 억지로 늘리기 위해 바닥에 떨어진 싸라기 등을 삽으로 퍼담아 양을 늘리는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정부관리양곡 가공용쌀을 공급받은 쌀가공식품 업체에서 발견된 이물들. 금속, 노끈, 플라스틱, 온도계 등 다양한 이물들이 발견되고 있다. (사진=식품음료신문)
 

혼입된 이물은 면면이 화려하다. 볼트, 너트 등 금속류부터 플라스틱, 노끈, 벌레는 물론 심지어 깨진 유리나 쥐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정부양곡 도정공장은 업체 공급 전 정부에서 요구하는 수율(약 72%) 기준에 충족한 뒤 농산물품질관리원으로부터 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전수검사가 아닌 샘플링으로 이뤄지다보니 검사가 이뤄지지 않은 원료에서 이물 발생률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여기서 구조적 허술함이 발생한다. 책임의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업체 관계자는 “이물 발생에 대한 불만을 도정업체에 전달하면 정부 품질기준을 통과한 원료이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는 식이다. 오히려 업체가 보관을 잘못했다는 핀잔만 듣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한 번은 심각한 이물 혼입건으로 도정공장에 문제를 제기했는데 회사를 방문한 업체 관계자들은 시중 쌀(밥쌀용)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급받아 사용하면서 품질을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습다는 식으로 말하더라”라고 울분을 토했다.

 

이 관계자는 원료곡을 현미로 직접 공급받아 도정공장과 직접 계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업체가 스스로 공장과 계약을 체결하면 책임 주체도 명확해지고, 도정업계간에도 경쟁 체제가 형성돼 이물 등 근본적인 문제점이 개선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자가 해당 사안을 취재하기 위해 방문한 업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월 100~150톤가량을 공급받는 논산 소재 A업체의 경우 지난 2년간 금속 등 6건의 이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가공용쌀을 공급받아 휴게소 등에서 떡류를 판매하고 있다.

 

A업체는 해당 이물 건에 대해 작년 말 곡물협회 측에 클레임을 제기하고 개선 대책으로 재발방지를 위한 공문을 요구했으나 ‘불가’ 의견을 전달받았다.

 

회사 관계자는 “곡물협회 관계자가 현장을 방문해 농관원 검사를 통과했으니 문제가 없다며, 재발방지에 대한 공문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히려 쌀은 해당 도에서 구매한 것이니 행정자치도에 가서 문제를 제기하라는 황당한 답변만 들었다”며 “보통 문제가 발생하면 개선을 위한 과정이 필요한데, 오히려 피해를 입은 업체가 부탁을 해야 하는 일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행되고 있다. 심지어 그렇게 걱정이 되면 색채선별기를 도입하라는 막무가내식이다. 원료곡을 공급받는 업체가 색채선별기까지 설비를 갖춰야 한다면 굳이 도정공장을 통해 (원료곡을) 이용할 이유가 있나”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회사는 현재 40여 명이 생산라인에 투입돼 이물 선별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원료곡 이물 문제만 해결되면 이 인원의 20%가량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회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충남 아산 소재 B업체는 도정공장으로부터 가공용쌀이 공급되면 쌀 샘플에 대한 품위분석을 실시해 합격(A)과 불합격(B)으로 등급을 나누고, B등급의 경우 자체 재도정을 거쳐 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사진=식품음료신문)
 

연 1만5000여 톤의 원료곡을 공급받아 쌀가루로 식품업체들에게 납품하고 있는 충남 아산 소재 B업체는 최근 납품한 쌀가루에 이상이 있다는 클레임을 받고 식품업체 4~5곳에서 80여 톤 전량을 수거했다. 피해 금액만 약 1억 원에 달한다.

 

회사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역추적한 결과 공급받은 원료곡에서 적조립, 흑조립 등이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문제가 된 원료곡으로 쌀가루를 만들다보니 업체 입장에선 곰팡이가 발생한 것으로 보고 회수를 요청해 전량 수거했다”며 “이러한 부분은 도정공장에서 충분히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부분인데, 수율을 높이기 위해 색채선별기 감도를 낮추다 보니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숨 쉬었다.

 

B업체는 이 일이 발생한 뒤 작년 9월부터 원료곡에 대해 품위분석을 실시하고 있지만 약 70%가량이 규격 이탈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0.5%가량 수율이 적어지는 부분을 감수하면서 규격을 이탈한 원료곡에 대해 자체 재도정을 거쳐 납품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도정공장이나 곡물협회는 처음부터 품질이 낮은 정부쌀을 저가로 공급받으면서 왜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냐는 식이다. 정부쌀은 품질이 좋지 않으니 업체가 그 부분을 감내하라는 것인데, 업체에선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장비를 구입해야 하고 이러한 비용 발생 측면은 제품값에 적용될 수밖에 없다”며 “현재 우리 쌀가공식품이 세계로 뻗어나가며 한국을 대표하는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품질 문제가 자칫 산업의 발목을 잡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불합격인 B등급으로 분류된 정부양곡 가공용쌀이 보관창고에 빼곡하게 쌓여 있다. (사진=식품음료신문)
 

이재갑 대한곡물협회 상무는 “정부양곡을 관리하는 업체는 정해진 지침에 따라 쌀을 도정하지만 수확 후 농가 보관 문제 등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협회에서도 이물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해당 도정업체에 철저한 관리를 지속적으로 당부하고 있다. 특히 성능이 우수한 색채선별기 도입을 독려해 이물 문제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며 “쌀가공식품 업체에서는 정부 규격보다 높은 기준을 통해 제공받길 원하지만 도정공장 입장에서는 업체가 요구하는 수준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변상문 농식품부 식량정책과장은 “업계의 이물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고, 클레임이 증가하는 부분에 대해 현황을 파악해 곡물협회 측과도 개선 방안을 논의 중에 있다. 업계와 도정업계간 합의점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