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브랜드 탄생비화]'삼양라면' 꿀꿀이죽 먹던 시절 탄생···K라면 원조
등록 2020.11.15 06:00:00
삼양라면 초기 광고
= 삼양라면은 국내 최초이자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라면이다. 1963년 출시 후 57년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삼양라면은 인간을 향한 따뜻한 애정에서 비롯됐다. 삼양식품 창업자인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은 1960년대 초 남대문시장에서 '꿀꿀이 죽'을 사먹기 위해 장사진을 친 노동자들을 목격했다. 먹을 것이 없어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여 한 끼를 때우는 모습을 보고, 식량난 해결과 인간 존엄을 위한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그 묘안이 바로 라면이었다.
◇국내 최초 라면
전 회장은 1950년대 말 보험회사를 운영하며 일본에서 경영연수를 받을 때 맛본 라면을 떠올렸다. 라면의 국내 도입은 식량 자급화가 되지 않는 실정에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 일본의 묘조식품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1963년 9월15일 국내 최초로 라면을 선보였다.
일본 라면 중량은 85g이었지만,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삼양라면은 100g으로 출시했다. 꿀꿀이죽이 5원이었던 것을 감안, 삼양라면은 많은 사람들이 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10원으로 책정했다. 당시 한국 물가를 보면 커피 35원, 영화 55원, 담배 25원 수준이었다. 묘조식품 오쿠이 사장이 '라면 값을 너무 낮게 정한 것 아니냐'고 묻자, 전 회장은 '식량난이 어려운 한국에서 누구나 배부르게 먹으려면 그 정도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 반응은 냉담했다. 쌀 중심 식생활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라면을 옷감, 실, 플라스틱 등으로 오해한 경우도 있었다. 삼양식품 전 직원과 가족들은 극장이나 공원 등에서 무료시식 행사를 열어 라면을 알렸다. 1965년 정부가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정책을 실시하면서 주목 받았다. 삼양라면은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을 발휘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묘조식품 비밀 전달 받다
1963년 초 전 명예회장은 당시 한국 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라면을 도입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기계수입과 기술제휴선 확보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접촉한 라면회사는 기술지도와 관련해 까다로운 조건과 많은 금액을 요구했다. 향후 한국으로 라면 수출 가능성을 생각해 제조장치 판매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전 회장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일본 묘조식품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과 면담 약속을 잡았다. 오쿠이 사장은 패전 후 극도로 악화된 일본 경제를 일으키는 데 한국 특수가 큰 역할을 했다며 기술이전을 해줬다. 생산라인 하나만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으니 2개 라인을 설치하도록 했다. 묘조식품이 도입하는 가격 그대로 납품을 받고, 기술지원은 무료로 해줄 뿐 아니라 로얄티도 필요없다고 했다.
전 회장은 사이타마에 위치한 란잔공장에서 공장설비, 제조공정, 품질규격 등 생산과 관련된 기술을 습득했다. 다시 묘조식품 본사에 와서 계약서에 서명했다. 제2항에는 '묘조식품은 삼양식품에 한일 친선을 위해 인스턴트 라면 제조 기술을 무상 제공한다'고 명시 돼 있다.
묘조식품은 처음에 기업 비밀인 스프 배합기술을 제공하지 않으려고 했다. 오쿠이 사장은 일본에서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전 회장에게 배합표를 전달했다. 친서에는 '전 회장의 청렴결백하고 양심적인 모습을 보고, 우리의 만남을 감사하는 의미에서 원료 배합표를 전달한다'고 적혀 있었다.
◇삼양라면 포장지 변천사
최초의 삼양라면 포장지에는 닭 이미지를 사용했다. 당시 국내 식품포장기술과 포장용 자재가 미흡한 상태였다. 묘조식품이 사용하는 패키지 120만포를 수입해 사용했다. 첫 생산 이듬해인 1964년부터 닭 이미지 대신 원모양의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현재와 같은 패턴의 포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주황색 바탕에 빨간 원을 그렸고, 삼양라면 로고도 한결 다듬어진 서체를 사용했다. 이후 제조기술 발전에 따른 맛의 변화를 표기하는 정도로만 바뀌었다.
1994년 맛을 강화해 재출시하며 세로 포장을 가로 형태로 바꿨다. 원 안에는 조리된 라면 사진을 넣었다. 굴림을 준 부드러운 서체 로고를 사용하고, 테두리에 금테를 둘러 고급스러움을 표현했다. 2013년 삼양라면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 패키지를 선보였고, 2016년 6월 현재 디자인으로 확정했다. 2016년 삼양식품 설립 55주년을 기념한 한정판 패키지도 내놨다.
◇현재의 삼양라면
삼양라면은 처음 출시 당시 닭고기 육수로 만들었다. 소나 돼지를 사용해 육수를 낼 만큼 원료를 조달하기 쉽지 않았다. 일본 묘조식품 스프 배합으로 만들어진 초기 삼양라면 맛은 지금과 확연하게 차이 났다. 일본은 후추, 산초 등을 선호했고 한국인은 마늘, 고춧가루 등을 좋아했다. 전 회장은 1966년 실험실을 발족해 한국식 스프 개발에 나섰다. 연구실로 확장해 삼양라면 품질을 높이고 제품을 다양화했다. 1970년 삼양식품은 종합식품업체로 발돋움했다.
1966년 11월 240만 봉지, 1969년 월 1500만 봉지를 팔았다. 초창기 매출액 대비 무려 300배 성장했다. 1969년 국내 최초로 베트남에 150만 달러의 라면을 수출했다. 이후 60여 개국에 라면을 수출해 대한민국 라면의 우수성을 알렸다. 1972년에는 동남아 지역 등 수출액이 250만 달러를 돌파했다. 1972년 삼양라면 매출액은 141억원이다. 당시 소비자가격이 22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약 7억개가 팔린 셈이다.
삼양식품은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삼양라면을 리뉴얼했다. 1994년부터 우지가 아닌 팜유를 사용해 라면을 튀겼다. 1997년에는 삼양라면에 들어가는 햄 후레이크가 빠졌고, 2006년 정부 정책으로 나트륨 함량을 줄였다. 2016년 소비자 의견을 반영해 다시 햄 맛을 강화하고, 햄 후레이크를 추가했다.
2017년 8월 삼양라면 매운맛을 출시했다. 기존 삼양라면 순하고 깊은 국물이 특징이다. '얼큰한 매운 맛이 삼양라면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깨지 않을까' 하는 등 고민을 1년 이상 한 끝에 탄생했다. 다행히 삼양라면 매운맛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삼양라면 오리지널과 매운맛을 리뉴얼했다. 오리지널은 소고기 풍미를, 매운맛은 햄 풍미를 강화해 국물맛이 진해졌다. 특히 매운맛에는 기존에 없던 햄맛 후레이크를 추가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삼양라면은 라면의 원조이자 삼양식품을 대표하는 제품"이라며 "철저한 품질 관리, 다양한 협업 시도 등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 장수브랜드로서 명성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했다.
◇국내 최초 라면
전 회장은 1950년대 말 보험회사를 운영하며 일본에서 경영연수를 받을 때 맛본 라면을 떠올렸다. 라면의 국내 도입은 식량 자급화가 되지 않는 실정에서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 일본의 묘조식품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1963년 9월15일 국내 최초로 라면을 선보였다.
일본 라면 중량은 85g이었지만, 배고픔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삼양라면은 100g으로 출시했다. 꿀꿀이죽이 5원이었던 것을 감안, 삼양라면은 많은 사람들이 라면을 먹을 수 있도록 10원으로 책정했다. 당시 한국 물가를 보면 커피 35원, 영화 55원, 담배 25원 수준이었다. 묘조식품 오쿠이 사장이 '라면 값을 너무 낮게 정한 것 아니냐'고 묻자, 전 회장은 '식량난이 어려운 한국에서 누구나 배부르게 먹으려면 그 정도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하지만 국민 반응은 냉담했다. 쌀 중심 식생활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라면을 옷감, 실, 플라스틱 등으로 오해한 경우도 있었다. 삼양식품 전 직원과 가족들은 극장이나 공원 등에서 무료시식 행사를 열어 라면을 알렸다. 1965년 정부가 식량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 장려정책을 실시하면서 주목 받았다. 삼양라면은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장점을 발휘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묘조식품 비밀 전달 받다
1963년 초 전 명예회장은 당시 한국 내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본 라면을 도입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기계수입과 기술제휴선 확보를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접촉한 라면회사는 기술지도와 관련해 까다로운 조건과 많은 금액을 요구했다. 향후 한국으로 라면 수출 가능성을 생각해 제조장치 판매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전 회장은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일본 묘조식품 오쿠이 기요스미 사장과 면담 약속을 잡았다. 오쿠이 사장은 패전 후 극도로 악화된 일본 경제를 일으키는 데 한국 특수가 큰 역할을 했다며 기술이전을 해줬다. 생산라인 하나만으로는 타산이 맞지 않으니 2개 라인을 설치하도록 했다. 묘조식품이 도입하는 가격 그대로 납품을 받고, 기술지원은 무료로 해줄 뿐 아니라 로얄티도 필요없다고 했다.
전 회장은 사이타마에 위치한 란잔공장에서 공장설비, 제조공정, 품질규격 등 생산과 관련된 기술을 습득했다. 다시 묘조식품 본사에 와서 계약서에 서명했다. 제2항에는 '묘조식품은 삼양식품에 한일 친선을 위해 인스턴트 라면 제조 기술을 무상 제공한다'고 명시 돼 있다.
묘조식품은 처음에 기업 비밀인 스프 배합기술을 제공하지 않으려고 했다. 오쿠이 사장은 일본에서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전 회장에게 배합표를 전달했다. 친서에는 '전 회장의 청렴결백하고 양심적인 모습을 보고, 우리의 만남을 감사하는 의미에서 원료 배합표를 전달한다'고 적혀 있었다.
삼양라면 포장지 변천사
최초의 삼양라면 포장지에는 닭 이미지를 사용했다. 당시 국내 식품포장기술과 포장용 자재가 미흡한 상태였다. 묘조식품이 사용하는 패키지 120만포를 수입해 사용했다. 첫 생산 이듬해인 1964년부터 닭 이미지 대신 원모양의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다. 현재와 같은 패턴의 포장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반이다. 주황색 바탕에 빨간 원을 그렸고, 삼양라면 로고도 한결 다듬어진 서체를 사용했다. 이후 제조기술 발전에 따른 맛의 변화를 표기하는 정도로만 바뀌었다.
1994년 맛을 강화해 재출시하며 세로 포장을 가로 형태로 바꿨다. 원 안에는 조리된 라면 사진을 넣었다. 굴림을 준 부드러운 서체 로고를 사용하고, 테두리에 금테를 둘러 고급스러움을 표현했다. 2013년 삼양라면 출시 5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 패키지를 선보였고, 2016년 6월 현재 디자인으로 확정했다. 2016년 삼양식품 설립 55주년을 기념한 한정판 패키지도 내놨다.
◇현재의 삼양라면
삼양라면은 처음 출시 당시 닭고기 육수로 만들었다. 소나 돼지를 사용해 육수를 낼 만큼 원료를 조달하기 쉽지 않았다. 일본 묘조식품 스프 배합으로 만들어진 초기 삼양라면 맛은 지금과 확연하게 차이 났다. 일본은 후추, 산초 등을 선호했고 한국인은 마늘, 고춧가루 등을 좋아했다. 전 회장은 1966년 실험실을 발족해 한국식 스프 개발에 나섰다. 연구실로 확장해 삼양라면 품질을 높이고 제품을 다양화했다. 1970년 삼양식품은 종합식품업체로 발돋움했다.
1966년 11월 240만 봉지, 1969년 월 1500만 봉지를 팔았다. 초창기 매출액 대비 무려 300배 성장했다. 1969년 국내 최초로 베트남에 150만 달러의 라면을 수출했다. 이후 60여 개국에 라면을 수출해 대한민국 라면의 우수성을 알렸다. 1972년에는 동남아 지역 등 수출액이 250만 달러를 돌파했다. 1972년 삼양라면 매출액은 141억원이다. 당시 소비자가격이 22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약 7억개가 팔린 셈이다.
삼양식품은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삼양라면을 리뉴얼했다. 1994년부터 우지가 아닌 팜유를 사용해 라면을 튀겼다. 1997년에는 삼양라면에 들어가는 햄 후레이크가 빠졌고, 2006년 정부 정책으로 나트륨 함량을 줄였다. 2016년 소비자 의견을 반영해 다시 햄 맛을 강화하고, 햄 후레이크를 추가했다.
2017년 8월 삼양라면 매운맛을 출시했다. 기존 삼양라면 순하고 깊은 국물이 특징이다. '얼큰한 매운 맛이 삼양라면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깨지 않을까' 하는 등 고민을 1년 이상 한 끝에 탄생했다. 다행히 삼양라면 매운맛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삼양라면 오리지널과 매운맛을 리뉴얼했다. 오리지널은 소고기 풍미를, 매운맛은 햄 풍미를 강화해 국물맛이 진해졌다. 특히 매운맛에는 기존에 없던 햄맛 후레이크를 추가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삼양라면은 라면의 원조이자 삼양식품을 대표하는 제품"이라며 "철저한 품질 관리, 다양한 협업 시도 등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 장수브랜드로서 명성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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