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인사이트] 영 셰프 해외 키친 경험기
- 등록2020.08.01 11:14:16
열심熱心. 진부하리만큼 뜨거운 노력을 표현하는데 흔히 사용하는 단어지만 그 온도를 유지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남들보다 경험이 부족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하는 요리사가 있다. 열심, 두 글자를 되뇌며 묵묵히 버틴 영 셰프, 김영일의 이야기다.
무모한 시작
음식점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그 영향으로 조리를 전공한 두 누나. 그런 가족 사이에서 어릴 적부터 요리를 접할 기회가 많았지만 요리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건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10대 시절에는 프로그래밍, 회계 등 다방면으로 관심을 갖고 시도하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진로를 조리과로 급선회했다. 마음 한편에 늘 요리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 같다. 그렇게 막 요리를 시작했을 때 막연하게 의욕만 앞서 학과 교수님을 찾아가 요리 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요청했다.
칼질조차 제대로 못하는 실력이었지만 서점에서 요리책을 뒤져 레시피를 정리해 가자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라” 하고 허락해주셨고 요리 대회 출전팀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회를 제대로 준비하려면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만 했다.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하는 것뿐이었다.
1년간 학교 생활을 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는 멋진 곳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서울 유명 호텔에 실습 신청을 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실습 면접을 보러 찾아갔고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알아본 결과, 아르바이트생으로 호텔에서 일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꿈에 그리던 곳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하루가 멀다하고 선배들에게 혼나기 일쑤. 그때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열심히’ 하는 것이었기에 두 시간 일찍 출근해서 일을 끝낼 때까지 퇴근을 미루었다. 남들은 근무 시간에 충분히 하는 일을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가끔 원망스러웠지만 하는 수 없었다.
▲ 시드니의 출근길 풍경
그 사이, 친구들은 요리 서바이벌 대회에 출전하거나 해외로 스타주를 떠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견문을 넓히기 위해 해외여행은 다녀왔지만 해외 키친에서 일해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그런 친구들의 소식에 자극을 받아 점차 호기심과 동경이 커져갔다.
당시 근무했던 호텔에서는 가끔 해외 유명 레스토랑 셰프들과 컬래버레이션 행사를 했는데, 직접 그런 유명한 레스토랑에 가서 스타 셰프 아래에서 일해 보고 싶었다. 호주가 요리를 배우기도 좋고 비교적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취득하기도 쉽다는 정보를 듣고 곧바로 호주로 떠났다. 2013년의 일이었다. 편도 티켓을 사고 남은 돈은 고작 80만원. 그 돈을 가지고 먼저 농장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 농장 일을 마치고 나서는 부족한 영어 공부를 하며 요리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호주 요리사로서의 첫발
요리를 너무 하고 싶었지만 영어 실력과 경력이 부족하여 자격미달 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자신감도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는 용기를 내어 이력서를 30장 가까이 가지고 시드니에 있는 제이미 올리버의 레스토랑에 찾아갔다.
문 앞을 서성이자 레스토랑 매니저가 다가와서 무슨 말을 건넸는데 긴장한 탓에 알아듣지도 못하고 도망쳐버렸다. 아쉬움과 두려움 탓에 멀리 떠나지는 못하고 근처 계단에서 세 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농장에서 알고 지내던 동생의 도움으로 키친핸드(주방 보조)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단순 보조지만 열심히만 한다면 요리할 가능성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쉬지 않고 일했지만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그 시절 나를 좋게 봐준 형의 도움으로 샹그릴라 호텔의 레스토랑 <앨티튜드(ALTITUDE)>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외국에서 첫 주방 경험이 시작된 것이었다.
▲ 명실상부 시드니 최고의 레스토랑 <키>
처음에는 레스토랑의 애피타이저나 바 메뉴를 담당하는 라더(LARDER )섹션에서 일했다. 해산물을 주로 사용하는 호주 레스토랑답게 처음 접해보는 일이 많았다.
당시에 주방 경험이라고는 군 입대 전 3개월, 전역 후 3개월이 전부라, 굴을 닦고 까는 기본적인 프렙조차 내겐 쉽지 않았다. 그래서 역시 나의 특기를 발휘해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며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첫날 배운 프렙을 다음 날 2시간 먼저 출근해서 다 마친 후 새로운 것을 배웠다. 그 다음 날에는 4시간 먼저 출근해 또 새로운 것을 배웠고 결국 일주일 만에 라더 섹션의 모든 프렙을 혼자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를 기특하게 봐준 헤드 셰프가 일한 지 두 달밖에 안 된 나를 페이스트리 섹션으로 이동하고 승진도 시켜줬다.
하지만 다른 레스토랑과 달리 페이스트리 섹션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페이스트리 프렙을 하고 빵을 만들다가도 서비스 때는 라더 섹션 일도 해야 했다. 그러다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섹션 이동의 기회가 찾아왔고 마침내 불 앞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핫 섹션으로 이동한 기쁨도 잠시. 호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는 한곳에서 6개월 이상 일할 수가 없었기에 직장을 옮겨야만 했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리스트에 몇 년째 등재되던 시드니 최고 레스토랑<키(QUAY)> 였다. 어떤 곳일까?
수 없이 문을 두드리다
메일로 이력서 보내기를 수차례, 시간 날 때마다 찾아가서 문을 두드려 이력서를 내길 또 여러 번, 드디어 트라이얼의 기회가 찾아왔다.
트라이얼 첫날, 첫 번째 코스를 담당하던 요리사가 말도 없이 결근하는 바람에 바로 섹션에 투입되어 일을 시작했다. 바짝 긴장한 탓에 서비스 내내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고, 콜드 섹션이었지만 땀으로 옷이 흠뻑 젖었다. 하지만 보람은 있었다. 내일부터 출근할 수 있겠느냐는 셰프의 말 한마디. 날아갈 것처럼 기뻤다.
▲ <베넬롱>이 처음 2햇을 받았을 때
이전 경력을 인정받아 운좋게도 데미 셰프(DEMI CHEF)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신입이 맡는 섹션이 아닌 핫 섹션을 담당했다. 일은 단순하지만 섬세했다. 가니시로 올라가는 허브의 개수까지 정해져 있었고, 훈제 타르타르는 신선도를 위해 주문이 들어온 후에 썰어야만 했다. 어떤 고객이 와도 요리의 퀄리티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설계된 파인 다이닝 시스템을 직접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근무 시간은 하루 15시간이 넘었지만 부족한 나는 일찍 출근했다. 하루는 청소 담당 직원보다 일찍 출근했다가 보안 시스템에 걸려 셰프에게 부족한 영어로 나의 진의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매주 4일째 되는 날에는 일하다 코피를 쏟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지만 주 4일제 근무라 버틸 수 있었다.
▲ <베넬롱>에서의 자선 행사를 준비하며
<키>에서 일한 지 3개월 후, 워킹 홀리데이 비자 기간도 3개월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당시 총괄 셰프였던 피터 길모어(PETER GILMORE) 셰프는 세컨드 레스토랑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수셰프로 일하던 롭을 헤드 셰프로 내정했다.
새로운 레스토랑의 콘셉트나 요리 방식이 내가 지향하는 스타일과 가까웠기에 나는 조심스럽게 수셰프에게 새로운 레스토랑으로 같이 가고 싶다고 말을 꺼내며 비자 상황을 설명했다. 롭은 마침 사람이 필요했다는 말과 함께 비자를 위한 스폰서십을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2년 6개월, 배움의 시간
무사히 스폰서 비자를 취득한 뒤 새로운 레스토랑<베넬롱(BENNELONG)> 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베넬롱>은 2009년 이후 ‘월드 50 베스트 레스토랑’에 줄곧 이름을 올린 <키>의 수장이자 호주 대표 셰프인 피터 길모어가 로컬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를 자신의 스타일로 선보이는 곳으로 시드니의 랜드마크 오페라하우스에 위치해 고객을 일주일에 2천 명 이상 소화할 수 있는 규모다. 이곳 역시 업무 환경은 고되었다.
주 4일 근무임에도 하루에 보통 16시간, 많게는 18시간까지 일하다 보니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요리사가 많았다. 내가 일한 2년 반 동안 2백 명 이상이 왔다가 떠나갔고 버티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셰프에게 섹션 이동을 요청했다. 나를 신뢰하던 셰프는 몇 달 단위로 섹션을 옮겨주었고, 일하는 동안 애피타이저, 생선, 가니시, 메인, 염장 및 발효 등 모든 섹션을 경험할 수 있었다.
▲ 메뉴 개발 중인 모습
또 다른 도전을 꿈꾸다
시드니에서의 삶은 여유로웠고 일도 잘 풀려나갔지만, 한편으로 또 다른 도전을 하고 싶었다. 요리를 시작할즈음 언젠가는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 꼭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호주 영주권을 취득한 뒤 다른 나라로 가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에 셰프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비자를 준비하기로 했다. 영국 워킹홀리데이 비자 신청을 위해 일시 귀국했지만 결과는 불합격.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다. 이미 비자 결과를 기다리기 위해 두 달 동안 휴식을 취한 터라 더 이상 시간 낭비를 원치 않았기에 바로 다음 주에 떠나는 미국행 티켓을 구입했다.
컬러풀 샌프란시스코
그렇게 도착한 뉴욕. 2018년 3월 일이었다. 급하게 정한 미국행인데다 준비가 부족해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규모가 큰 파인 다이닝보다는 캐주얼하고 자유로운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에 더 관심이 있었는데, 비자를 지원해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스타주(무급 견습생)라도 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갔다. 스타주를 통해서라도 이것저것 보고 배우며 맛볼 수 있다고 마냥 행복해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일자리 찾기는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았고, 미국에서 미쉐린 스타가 가장 많다는 샌프란시스코로 발길을 돌렸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요리사를 구하는 레스토랑이 많아 비교적 쉽게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 10개가 넘는 레스토랑에서 트라이얼을 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3일간 다른 레스토랑에 출근해 새로운 것을 배웠다.
호주에서 모든 섹션을 경험해본 덕에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이 보였다. 문화적으로 다양한 도시답게 가까이에 모여 있는 레스토랑들도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주말이면 시내 모든 셰프가 장을 본다고 할 정도로 큰 규모의 파머스 마켓이 열렸다. 같은 곳에서 같은 재료를 구입해 사용해도 스타일이 저마다 달랐다. 셰프의 개성이 확연히 드러나고,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배울 점이 많아 하루하루가 마냥 즐거웠다.
▲ 샌프란시스코에서 맛본 샐러드
트라이얼을 하는 도중 마침내 마음에 드는 레스토랑을 찾아 셰프와 비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한 번도 비자를 준 적이 없지만 어떻게든 노력해보겠다는 말에 이미 비자를 받은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약속한 뒤 하루라도 빨리 일하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비자 조건과 상황이 맞지 않아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세 달 남짓한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기에 지금도 기회만 된다면 스타주를 위한 여행을 떠나고 싶다.
Epilogue
이후 한국에서 레스케이프 호텔 <라망 시크레>, <정식카페>를 거쳐 <정식당>에서 6개월 동안 수셰프로 일했다. 지금은 생각이 잘 통하는 3명의 동료와 함께 성수동에서 수제 버거 전문점 <르 프리크>를 운영하고 있다.
기존에 해오던 다이닝 레스토랑과는 다른 부분이 많아 어려운 점도 있지만 항상 새로운 경험을 원해온 터라 하루하루 즐겁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은 많다. 각자의 아이디어와 실행력, 경험을 합쳐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요리사 인생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가 크다.
▲ <키>를 찾아온 토마스 켈러 셰프와 함께
About. 김영일 쉐프
1990년생. 대학 조리과에 진학하며 처음으로 칼을 잡았고 2013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들고서 무작정 호주로 떠났다. 키친핸드로 주방 일을 하다 샹그릴라 호텔 <엘티큐드>, <키>에서 6개월씩 근무했고, 이후 피터 길모어 셰프가 새롭게 오픈한 <베넬롱>으로 옮겨 2년 반 동안 일했다.
그러던 중 새로운 나라에 대한 궁금증을 안고 2018년 3월 미국으로 떠나 3개월 동안 뉴욕과 샌프란시스코의 십수 개 레스토랑에서 트라이얼을 경험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정식당> 수셰프를 거쳐 현재 성수동에서 동료들과 <르 프리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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