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제품 잔혹사 ①] ‘떴다’하면 ‘우르르 따라쟁이’…제과업계 악순환
2017-02-01 10:00
-쏟아지는 미투제품에 소비자 피로 호소
-시장 확대도 좋지만 적극적 R&D가 먼저
[헤럴드경제=김지윤 기자] 그런 애들이 꼭 있었다. 반에서 좀 ‘잘 나가는 애’가 하는 건 꼭 따라하는 친구. 다 된 밥에 숟가락 얹는 애들. 자기 스타일이 없나, 자존심도 없나 싶지만 ‘취향의 시대’다. 누군가의 탁월한 취향을 따라하기만 해도 반은 성공이다. 그래서일까. 제과업계는 유독 비슷비슷한 미투(Me-Too)제품이 범람한다. 결과는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진설명=초코파이, 몽쉘, 오예스 파이 3인방의 녹차맛 시리즈.] |
▶‘떴다’ 하면 ‘우르르’…인기도 ‘반짝’=2014년 시작된 해태제과 허니버터칩 열풍이 불 때에는 대한민국이 ‘꿀의 민족’인가 싶을 만큼 온갖 식품에 ‘허니’가 붙었고 그 갯수만 40여개에 이르기도 했다. 지난해 3월께는 오리온이 바나나 열풍의 포문을 열었다. ‘초코파이情 바나나’는 출시 3주 만에 1000만개 판매를 돌파, 그 뒤를 이어 경쟁업체들이 바나나맛 제과 상품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트렌드가 됐다. 다음은 녹차였다. 오리온이 지난해 10월 녹차 브라우니(초콜릿 케이크)를 선보인후, 11월에 내놓은 녹차맛 ‘초코파이情’은 한달 만에 낱개로 1000만개가 팔렸다. 이후 롯데제과의 ‘드림카카오 그린티’, ‘카스타드 그린티라떼’, ‘찰떡파이 녹차’, 해태제과의 ‘오예스 녹차’도 하반기에 쏟아졌다. 요즘 마트는 녹차밭이 따로 없다.
미투전략은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의 이름, 모양, 맛, 디자인 등을 모방해 편승효과를 노림으로써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마케팅전략을 말한다. 적은 투자비용으로 손쉽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고, 여러 업체간의 다양한 마케팅을 통해 시장규모를 확대시켜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긍정적인 측면을 갖는다. 하지만 무분별한 미투제품 범람은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동시에 피로도를 가속화한다.
이러한 이유로 히트 상품의 인기주기는 갈수록 짧아지는 모양새다. 1년이상 갔던 허니버터의 열풍을 이은 바나나 열풍은 3개월만에 내리막길을 걸었고 녹차의 인기도 언제 시들해질지 모른다.
반짝 인기 현상은 제과업계 뿐 아니라 식품업계 전반에서 심화되고 있다. 광고의 영향을 받던 과거와 달리 SNS를 통해 소비자들이 열풍을 주도하기 때문에 반응은 즉각적이지만, 열기가 식는 것 또한 그만큼 빠른 것도 이유로 꼽힌다.
[사진설명=단맛 열풍이 시들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마트 매대에는 허니버터 코너가 마련돼 있다.] |
▶몸 사리는 제과업계 속사정=지난해 12월 5일 발표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6년 롯데제과, 오리온, 크라운제과, 해태제과 등 제과4사의 3분기 연구개발(R&D)비용은 매출액 대비 평균 0.45%였다.
롯데제과의 연구개발비는 74억1400만원으로 전년 동기간 대비 5억400만원(13.8%)가량 올랐다. 소폭 상승했지만, 이는 매출액 대비 0.44% 수준이다.
오리온은 2015년 3분기 8억8600만원에서 이듬해 31억1800만원으로 3.5배 가량 뛰어 타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신장했다. 매출대비 비중도 0.17%에서 0.62%로 올랐다.
크라운제과는 연결기준으로 3분기 33억9800만원을 연구개발비에 투자, 전년 동기간 25억8600만원보다 31.3% 상승했다. 해태제과는 22억2200만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4% 증가했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율은 0.4%로 크라운제과와 동일하다.
제조업계 평균으로 알려진 2.6%에 비해 상당히 저조한 수치다. 이를 두고 ‘쥐꼬리 연구개발’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이에 제과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시장에 모든 맛이 나와 있는 상태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면서 “신제품을 내놓아도 유행 주기가 너무 짧아 연구개발 리스크가 크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제과업계 신제품 생존률은 불과 10%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과시장은 수년째 3조원 규모에서 답보상태를 지속하고 있다. 제과 시장은 2009년 3조5000억원까지 성장했으나 이후 꾸준히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업계는 지난해 제과시장 규모 역시 3조원대 초반을 형성하거나 3조원대가 무너졌을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황 타계를 위해서는 혁신적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R&D 투자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미투제품을 통해 단기간 매출을 높이기 위해 판촉ㆍ마케팅 비용만 늘어나는 악순환의 반복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의 흐름은 보인다. 지난달 1일 오리온은 정기인사를 통해 이승준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 글로벌 R&D를 총괄하도록 했다. 오리온 연구소장 출신인 이 부사장은 중국에서 현지 소비자들의 입맛에 특화된 맛으로 오!감자를 연 매출 2000억원이 넘는 더블 메가브랜드로 성장시켰고, 한국에서는 초코파이 바나나와 말차라떼, 스윙칩 간장치킨맛 등을 잇따라 히트시킨 제과 연구개발 전문가다. 오리온은 앞으로 R&D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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