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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에 300억원 매각 '잭팟' 고졸 출신 '더반찬' 사장

곡산 2017. 1. 25. 13:45

동원에 300억원 매각 '잭팟' 고졸 출신 '더반찬' 사장

  • 박수호
  • 입력 : 2016.07.29 06:01

전종하 대표
▲ 전종하 대표
[재계 인사이드-58] 최근 '더반찬'이 동원그룹에 300억원(부채 이전 포함)에 매각됐다는 기사가 떴지요. 더반찬은 더블유푸드마켓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HMR(Home Meal Replacement·가정식 대체식품) 판매회사로 회원 수 20만명, 일평균 주문 2700박스, 객단가 5만원 이상, 올해 예상 매출액만 270억원에 달합니다. 요즘 동원이 인수한 후 SNS 광고를 부쩍 강화하면서 이름이 좀 더 널리 알려지고 있는데요. 정작 매각 당사자에 대한 정보는 잘 찾아볼 수 없더군요. 알아보니 더반찬의 창업주는 1988년생, 올해 우리 나이로 스물아홉인 전종하 대표였습니다. 2008년 창업 후 약 8년 만에 매각, 소위 '잭팟'을 터뜨린 겁니다. 전 대표와 만나 지난 얘기를 들어봤습니다.

 그의 학창 시절 얘기부터 흥미로웠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그는 게임중독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가 출시된 후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전종하 군은 신세계를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게임에 몰두했답니다. 게임 출시 초반부터 즐겨 하기 시작했으니 실력이 쌓이고 점점 보유 무기도 늘어났답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리니지에서 한 집단을 이끄는 성주 자리에도 올랐답니다. 성주라는 게 일종의 지휘자이자 연합군을 만들어 전쟁을 벌이고 나름 사이버상에서 다른 유저들을 적절한 직위에 앉히는 등 인사권을 행사하는 자리랍니다. 거기서 자연스레 리더십을 익히게 됐다네요.

 그 시절 또 하나 재밌는 건 주머니 사정이었습니다. 여타 또래 아이들과는 달리 그는 용돈을 안 받아도 호주머니가 늘 두둑했답니다. 리니지는 아이템 거래가 가능했는데 성주 정도까지 오르다 보니 게임 아이템 중 희소성 있는 걸 많이 보유할 수 있었답니다. 이걸 팔아서 시세차익을 남겼답니다.

 그렇게 한두 푼 모은 게 천 만원 단위가 될 정도였다네요. 그러던 중 우연히 고등학교 2학년 때 창업경진대회 광고를 접하게 됐답니다. 사이버 세계에선 군주였던 그는 이제 실제 사업가가 돼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여러 아이템을 생각하던 중 화장품을 좀 더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 화장품 자판기 아이디어를 내봤답니다. 터치스크린이 탑재돼 화장품의 소개와 설명이 나오는 자판기인데 당시 2위를 차지했다네요. 자신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 경진대회에서는 신체 정보를 기반으로 알맞은 패션 제품들을 골라 제안하는 쇼핑몰로 또 한 번 입상했답니다.

 '이거 봐라?'

 공부보다는 사업이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길로 대학은 포기하고 게임 아이템으로 번 돈을 모두 컴퓨터, MD(상품기획) 관련 학원 다니는 데 썼답니다. 사실 고교 졸업 후 창업을 준비하게 된 또 다른 배경엔 집안 사정도 한몫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나름 중산층이었지만 부모님이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큰 실패를 하면서 가세가 기울었다네요. 사실상 혼자 힘으로 세상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대학 등록금 모을 돈으로 차라리 창업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 그럼 어떤 아이템을 할까를 두고 1년 반을 고민했답니다. 창업경진대회 때 수상했던 아이템은 장기간 할 사업은 아니란 결론이었습니다. 대회에는 안 내보냈지만 비장의 아이템은 따로 있었습니다. 예전에 부모님이 야채 도소매 쪽 일을 했기에 재래 시장 갈 일이 많았던 그는 시장마다 있는 반찬 가게를 유심히 눈여겨봤답니다. 인기 있는 반찬가게는 목이 좋고 손맛이 있어 장사는 잘 됐는데 배달이 안 되고 온라인 주문은 더더욱 언감생심이었습니다. 반찬은 빨리 상할 수 있고 재고 부담이나 물류 등 추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간편하게 배달해 먹는 문화는 점점 확산되는 추세라 장기적으론 잠재력이 있는 사업이었습니다. 마침 신문에서 미국 아마존이라는 회사가 온라인 쇼핑으로 급성장한다는 걸 봤답니다. 게다가 미국, 유럽은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HMR 시장이 커진다는 걸 보니 더더욱 확신이 서더랍니다. 생전 책 한권 안 보던 그가 1년 동안 관련 서적만 60권 이상 읽었답니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2008년 7월. 마침내 청년이 된 전종하 씨는 만 20세에 온라인으로 반찬 등 HMR 제품을 판매하는 더블유푸드마켓을 창업합니다.

 "W란 단어 이면엔 월드(World), 웰메이드(Wellmade), 웰빙(Wellbeing), 위드(With) 같은 의미가 내포돼 있어요. 좋은 인재들과 함께 한국은 물론 해외까지 최고의 우리 식품을 내보내 보자 이런 개념인데요. 회사 이름은 거창한 포부와 철학이 담겨 있다 해도 서비스 이름은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적절한 단어를 찾다가 친숙한 단어인 반찬 앞에 정관사 'The'를 붙였는데 쉬운 이름이라 잘들 기억해주시더라고요."

 더불어 질 좋은 음식을 싸게 온라인에서 팔려면 원칙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답니다. 그는 '일단 직접 신선한 재료를 구하고 생산까지 해서 원가를 낮춘다. 더불어 광고를 최대한 줄이면서도 재구매율을 높일 방법을 찾는다. 주문을 쉽게 유도하기 위해 최대한 쉬운 홈페이지 구축에 초기 자금을 쏟아붓는다. 수수료를 내야 하는 백화점이나 대형 온라인몰에 입점하지 않는다'로 정했답니다.

 IT 개발 쪽은 그동안 공부한 바탕에다 개발자를 섭외해 계속 업그레이드시켰답니다. 더불어 반찬 등 식품 제조는 부모님 가게를 정리할 때 일하던 식당 직원들과 영등포 인근 생활정보지를 통해 장기적으로 일할 주부사원 위주로 진용을 갖췄습니다. 문제는 마케팅·홍보였습니다. 생소한 서비스를 알리려면 우선 체험이라도 해봐야 하는데 스타트업이다 보니 무작정 광고비를 집행하긴 어려웠습니다.

 "일단 주부, 여대생 등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 동호회 등에 무조건 가입해 사이트를 알렸어요. 이화여대 기숙사 등 여대생들이 있는 곳엔 전단지를 뿌리기도 했고요. 주문이 한두 건 들어오면 바로 배달을 가서 '여긴 빠르다'는 인식을 심어줬어요. 일부러 택배 박스 위에 '더반찬' 로고를 큼지막하게 붙여서 주변 사람도 보고 주문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시켜보니 맛있고 만족스럽다'는 입소문이 도는 데 1년 이상이 걸리더군요."

 이런 과정에서 전 대표는 여러 노하우도 얻을 수 있었답니다. 주문 내역을 살펴보니 반찬 등 가정식 식자재 주문은 보통 일주일 단위로 들어왔다네요. 그래서 아예 '7데이 세트'라 해서 일주일간 먹을 수 있는 반찬 구성을 온라인 사이트상에서 제안했다지요. 요즘 말로 큐레이션 서비스라 합니다. 이거저거 고를 거 없이 알아서 제안해주는 제철 음식이다 보니 반응이 뜨거웠답니다.

 더불어 배송 시스템도 변화를 거듭했답니다. 초반엔 전 대표가 직접 배달을 나가기도 했는데요. 그러다 주문량이 많아지기 시작했는데 어떡하면 신뢰를 가지게 할까 생각하다 '우체국 배송'을 떠올렸답니다.

 "우체국은 공공기관이니 일단 믿음이 가잖아요. 일부러 배송할 때 믿을 수 있는 우체국 전국 배송 시스템을 쓴다고 부각시켰어요. 오랜 기간 거래하는 데다 주문량이 늘어나니 우체국과도 호흡이 점점 맞아들어갔고, 이러다 보니 전날 밤에 주문하면 다음날 배송이 가능할 정도가 되더라고요. 더불어 수도권은 자체 직배송 체제를 갖춰 당일 배송도 조금씩 지켜나갔어요. 3년 이상 판매, 주문 접수, 생산, 출고를 다루다 보니 시스템이 잡히더군요. 그러다 보니 점점 재구매율이 높아졌어요. 그렇게 20만 고객 확보에 딱 7년이 걸렸어요."

 이후 전 대표는 좀 더 모험을 했습니다. 주문량이 늘어나자 아예 중소기업으로는 만만찮은 돈인 100억원을 들여 인천에 대규모 공장을 지은 겁니다.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까지 갖추고 하루에 약 300가지 아이템을 생산하는 신공장이었습니다.

 "대규모 투자였지만 자신 있었어요. 매일 300여 아이템을 당일 생산해 배송(수도권) 할 수 있는 온라인 HMR몰은 그전까지 없었으니까요."

 이런 경쟁력에 주목한 건 동원그룹이었습니다. 전 대표는 공장에 돈을 쏟아부어 처음으로 외부 투자 유치를 하려고 지난해 말부터 여러 업체와 접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동원그룹을 만났는데 더반찬의 사업 모델에 대해 너무 잘 이해하고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습니다. 슬쩍 M&A 의사도 내비쳤답니다. 전 대표는 고민 끝에 더 큰 비전 아래 회사를 잘 키워줄 수 있다면 매각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결단을 내렸답니다.

 "직장생활을 안 해 봤는데 개인적으로도 벤처기업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대기업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김재철 회장님이 선뜻 그런 기회를 주마 했던 것도 매각을 결심한 배경입니다."

 전 대표는 조만간 동원그룹에 입사해 온라인비즈니스 담당 상무로 일할 예정입니다. 외부 출신으로 20대 최연소 임원 기록이지요. 동원그룹이 그동안 온라인, O2O 사업 부문에서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못했던 부분을 전 대표가 들어가 조금씩 바꿔볼 수 있을 것이란 게 대내외 기대입니다.

 "그룹 내에서 가장 젊은 임원으로서 동원그룹이 좀 더 신선한 사고와 문화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20대에 수백억 원대 자산가가 된 벤처사업가가 대기업에선 또 어떤 행보를 보이게 될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