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박재항] 오리온과 롯데제과가 소위 ‘초코파이 전쟁’이란 걸 벌이던 시절이 있었다. ‘전쟁’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팽팽한 싸움은 아니었다. 오리온의 시장점유율이 항상 롯데의 두 배 이상이었다. 제과산업의 1인자로서 자존심을 걸고 롯데가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했지만, 전체 전황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중반에 오리온 초코파이의 마케팅전략을 세우기 위한 작업에 참여했었다. 관련 조사를 하면서 사람들이 롯데 초코파이와 오리온 초코파이의 맛을 구분할 수 있는지 실험을 해봤다. ‘블라인드 테스트(Blind test)’라고 해서, 초코파이 포장을 뜯어 상표명을 보여주지 않고 맛을 보게 한 후, 브랜드를 맞추게 하고, 두 제품 간의 차이를 맞추는 실험이었다.
오리온 초코파이와 롯데 초코파이의 맛에 차이가 있었을까? 맛을 분별했던 사람들이 얘기한 것과 자료 조사를 통해 보면 초코파이를 구성하는 세 부분에서 모두 차이가 났다. 즉, 롯데 초코파이의 초콜릿 코팅이 오리온 초코파이보다 아주 미세하게 두텁단다. 중간의 빵 부분은 오리온 초코파이가 약간 더 찰지고 촉촉한 느낌을 준다고 했다. 가운데 마시멜로우 부분에선 눈으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손으로 늘이면 롯데가 바로 뚝 끊어지는데 비해 오리온은 끊어지지 않고 길게 늘어난다.
오리온 초코파이가 갖는 브랜드 힘은 ‘情’
그런데 이런 차이를 알고, 맛만 보고 정확하게 양사의 초코파이를 구분하는 사람의 비율은 20%가 채 되지 않는다. 맛의 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소한 소비자들의 대다수는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1+1’ 류의 공격적인 프로모션과 1위 제과기업으로서의 유통 장악력에도 불구하고 롯데가 시장점유율에서 오리온의 반도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연을 가서 청중들에게 ‘오리온 초코파이하면 뭐가 생각나세요?’하고 물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지체 없이 ‘정(情)이요’라는 대답이 나온다. 곧이어 ‘그럼 롯데 초코파이는요?’하고 물으면 머뭇거리다가 ‘짝퉁?’ ‘싸구려’와 같은 답이 산발적으로 들린다.
오리온 초코파이의 무기는 바로 롯데가 가지지 못한 ‘정’이란 감성적 가치였다. 거기에 초코파이라는 카테고리를 만든 선도자라는 역사적 자산이 뒷받침을 했다. 이는 마스터카드의 광고 슬로건처럼 ‘돈으로 살 수없는, 가격을 매길 수 없는(Money can’t buy, Priceless)’ 가치였다. 이렇듯 제품을 변형시키지 않고 광고를 통해 가치를 더해 주며 다른 제품들과 확실하게 차별화한 브랜드를 만든 대표적인 사례가 오리온 초코파이의 ‘정(情) 시리즈’다.
오리온 초코파이는 1974년 처음 출시됐다. 가격은 50원. 당시 성인들 서울 시내버스 요금이 25원이었다. 지나친 단순비교이긴 하지만 지금으로 치면 초코파이 가격은 2000원 정도였던 셈이다. 아주 고급과자였던 것이다. 목표고객도 세련됨을 추구하는 20대 여성, 즉 여대생이나 여성 전문인을 포함한 직장인이었다. 치솟는 물가를 따라 초코파이의 가격도 70년대 후반에 100원으로 오른다. 가격인상에도 불구하고 초코파이의 인기는 여전했고, 롯데를 비롯한 다른 제과사들도 비슷한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 | | ▲ '말하지 않아도'에서 '까놓고 말하자'로 광고카피를 바꾼 오리온 초코파이 새 광고 장면. |
80년대 초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이용 씨를 모델로 내세운 오리온 초코파이 CF를 보면 오리온 초코파이가 처했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광고에서는 먼저 초코파이를 먹는 상황을 보여준다. 혼자서 심심할 때, 이어 여성과 둘이 만나서, 마지막으로 어린 아이까지 등장해 셋이 모였을 때도 초코파이를 먹는다. 초코파이의 주 고객이 원래의 세련된 20대 여성에서 남녀노소 전체로 퍼졌음을 알 수 있다.
제과류 광고답게 이용 씨가 초코파이를 베어 먹고는 ‘먹어보면 달라요’하면서 마지막에 ‘꼭 오리온 초코파이’라는 말을 외친다. 시장 규모가 커졌고 경쟁이 치열해졌는데, 선발주자로서 오리온이 딱 부러지게 내세울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먹어보면’이란 말을 식품광고에서 많이 하는데, 먹어야 할 이유를 줘야 하는 게 식품광고의 목적인 경우가 많다. 이용 씨가 출연한 80년대 초의 오리온 초코파이 광고는 그 이유를, 즉 동기를 제공하지 못하면서 기업 이름만 소리 높여 외쳤다.
결정적으로 오리온 초코파이를 사야 하는 이유를 준 게 바로 1986년에 전파를 타기 시작한 ‘정’ 시리즈다.‘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란 오리온 초코파이 정 시리즈의 대표 테마송은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여러 종류의 패러디가 양산됐으며, 공중파 코미디 프로에도 등장할 정도로 인기였다. 사람들에게 오리온 초코파이에 대한 연상으로 정이 나왔다가,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이 노래가 바로 뒤를 잇는 형태다.
17년 만의 변신…‘말하지 않아도’에서 ‘까놓고 말하자’로
그런데 오리온에서 이 히트곡에 반하는 캠페인을 2012년 10월 말부터 전개하고 있다. 30초짜리 광고물을 보면 처음 귀에 익숙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란 노래가 2006년에 오리온의 담철곤 회장의 목소리로 나오고, 바로 출연자들이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멘트를 한다. 그리고 엄마를 닮지 않았다고 고민하는 딸에게 성형수술 했다고 말하는 엄마, 불교신자인데 초코파이 때문에 교회에 왔다는 군인, 아내가 요리한 음식을 못 먹겠다고 하는 남편 등등 주위에서 있을 법한 상황들을 코믹하게 보여줬다. 광고를 본 소비자들은 자신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며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오리온 초코파이뿐만 아니라 오리온그룹 전체의 고민이 읽히는 CF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브랜드 캠페인으로 정 시리즈를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치며 탈바꿈해 새롭게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지난해 오리온 초코파이는 ‘파이 로드’라는 타이틀 아래 해외에서의 인기와 역할을 부각시키며 브랜드 지평을 넓히려 했으나, 한국 소비자들과 재계에 그리 와 닿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이번 CF는 시대 트렌드를 타고 적절하게 나왔다고 보인다.
관건은 이 광고의 인기를 오리온의 ‘닥터유’와 ‘마켓오’와 같은 여전히 혁신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다른 대표 제품들과 연계시켜야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기업 차원에서 오리온그룹이 당면하고 있는 최고경영층의 신뢰도 하락이나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인 이미지와 같은 기업브랜드 관련 문제들의 해결에도 미약하나마 실마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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