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시사

농심 조금 더 혼나도 된다.(펌)

곡산 2008. 7. 11. 10:31

외국에 살고 있지만 뉴스를 통해서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졸속 협상으로 인한 국민들의 분노와 촛불 시위소식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한국의 대표적인 식품회사인 농심이 조선일보와 관련한 구설수에 말려서 국민들의 반감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오늘 다음 블로거 뉴스에서 농심의 컨설턴트의 의견을 통해 나름대로 농심이 나름대로 억울한 처지에 있음을 호소하는 장문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이미 읽으셨겠지만 간단히 정리를 하자면 너무나 우직하고 순진한 농심의 경영진이 세련되지 못하게 쥐머리 새우깡 파동이나 조선일보 광고 사태 등을 처리하면서 잘못한 것 이상으로 욕을 먹고 있는 현실이 답답하다는 내용입니다.

농심보다 더 억울한 쪽은 삼양

저는 글을 읽으면서 이미 농심을 싫어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실이고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농심을 위해서 컨설팅을 해주는 입장에서도 그래도 괜찮은 기업인 농심을 생각해보면 답답함이 많을 것으로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심이 지나치게 억울해 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1989년 검찰은 삼양식품 등 5개사가 식품으로 사용할 수 없는 공업용 쇠기름을 사용하여 음식을 만들어 판 죄목으로 대표이사 등을 구속하였습니다. 국민적 충격은 대단했고 당연히 한때 업계 1위로 40%대를 달리던 삼양라면의 점유율은 10%이하로 떨어졌고(일설에는 5%로 떨어졌다고도 하더군요) 후발 기업인 농심은 이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단숨에 60%대로 점유율이 급상승했습니다. (지금도 농심은 65%대, 삼양은 15%정도라고 합니다.) 저도 당시에는 삼양식품과 같은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기업의 상품인 공업용 기름으로 만들었다는 삼양라면을 평생 먹어온 사실이 역겹고 분하게 느껴져 그 이후로는 삼양라면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사실 어딜 가나 농심라면만 눈에 띄어서 삼양라면을 살려고 해도 살수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거나 한국 사회를 온통 흔들었던 이 충격적인 사건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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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식품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약 10년만인 삼양식품은 1997년 대법원에서 공업용 우지파동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게 됩니다. 처음에 삼양식품이 고발당했을 때와는 달리 아주 조용히 보도가 되었기 때문에 저도 모르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주간조선(지금은 위클리조선이라고 이름이 바뀌었습니다.)이라는 잡지에서 사건의 전말을 읽고서야 판결이 지나고 조금 후에 이 판결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기사를 읽기 시작할 때는 제 마음속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무죄판결을 받고도 시장에서는 복권되지 못한 삼양

분명히 공업용 쇠기름을 쓴 것은 사실인데 도대체 무엇에 대해서 무죄라는 말인가 하는 의구심 말이죠. 그런데 일단 놀라왔던 사실은 삼양이 돈을 아끼려고 쇠기름으로 라면을 튀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억하는 주간조선의 당시 보도내용에 따르면 국제시세가 농심이 사용하는 식물성기름이라는 팜유보다 삼양이 사용했던 쇠기름이 더 비쌌다고 합니다.(이상하게도 농심의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에서는 팜유가 더 비쌌다는 설명이 있어서 확인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굳이 삼양이 값이 더 비싼 기름을 쓴 이유는 맛과 건강을 생각해서 그랬다는 것인데 당연히 식물성 기름이 동물성 기름보다 건강에 좋을 것으로 아는 우리의 상식에 분명히 반하는 내용이라 약간의 설명이 필요합니다.

식물성 기름에도 콩기름, 옥수수기름, 카놀라유, 올리브유 등 여러 종류가 있고 동물성 기름에도 쇠기름, 돼지기름(비계), 생선 오일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름(혹은 지방) 성분이 우리 몸에 좋고 나쁘고를 판별하는 기준중의 하나가 바로 동맥경화를 잘 일으키는 포화지방산의 함량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식물성 기름이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많고 동물성 기름에 포화지방산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식물성 기름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식물성 기름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우지보다도 몸에 안좋은 팜유

농심이 당시 라면을 튀기는데 사용했던 팜유라는 것은 순수한 식물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말 최악의 기름입니다. 아래 표에서 보시면 대부분의 식물성 기름은 포화지방산이 낮으므로 몸에 좋은데 동물성 지방은 상대적으로 포화지방산 함량이 높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습니다. 그런데 표의 아랫부분을 보시면서 쇠기름과 코코넛오일, 팜유 등을 비교하면 놀랍게도 팜유와 같은 오일은 거의 불포화지방산이 없이 포화지방산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포화지방산의 비율이 동물성 기름보다 훨씬 높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건강에는 그다지 좋지 못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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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농심도 검찰이 조사하기 몇 달 전만해도 똑같이 쇠기름을 쓰다가 (이 보도에서 나온튀김기름 변경의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농심 측은 맛의 차별화를 위해 바꾸었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팜유로 바꾸어서 이 사건을 피해갔다고 합니다. 공업용이라고 언론에서 표현된 삼양이 사용했다는 쇠기름은 어감에서 풍기듯이 기계를 돌리는 데 사용되는 그런 공업용이 아니고 정제되지 않은 기름은 식용으로 분류되지 않는 데서 나온 표현이며 삼양 측은 총 16단계로 구분되는 쇠기름에서 미국에서 일반적으로 식용으로 분류되는 1단계의 기름보다는 질이 낮지만 정제해서 식용이 가능하고 인체에도 무해하다는 2-3단계의 기름을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양식품이 사용한 기름은 공업용도 아니며 인체에 해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는 점에서 대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결국 팜유라는 것은 값도 싸고 몸에도 덜 좋은데 그보다는 나은 기름을 쓴 삼양이 지금까지도 시장 점유율 65대 15라는 징벌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삼양으로서는 참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처럼 보입니다. 다만 삼양라면의 점유율이 떨어진 것은 단지 이 사건 때문만이 아니고 농심에서 나온 신라면과 같은 히트상품들에 삼양라면 자체가 밀린 것도 있고 농심의 창의적 마케팅(88올림픽 스폰서 등)도 영향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삼양의 점유율하락을 이 사건 하나로만 해석하는 것도 무리일 수 있습니다.

농심, 잘못한것 정말 없나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삼양의 불행으로 농심이 커다란 이익을 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농심은 쥐머리가 나온 새우깡, 신라면의 바퀴벌레, 짜파게티의 나방, 미역국밥의 파리 등 일련의 식품 안전성을 의심할만한 사건으로 이미 국민들로부터 실망을 사고 있는 중입니다. 따라서 이번 조선일보 광고사태라든가 농심직원의 조선일보 두둔 발언 등은 실수이든 아니든 국민들에게 인심을 잃을만한 행동을 한 결과입니다. 삼양식품의 공업용 우지파동처럼 나쁜 일은 하지도 않았는데 억울하게 모함을 당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이 농심에게 저지르지 않은 잘못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로부터 노인까지 전 국민이 믿고 즐기는 과자와 라면에서 이물질이 나온 것은 잘못된 것이 분명합니다. 농심은 지금 이미 시행하고 있는 식품안전에 대한 노력이 이미 선진국 수준인데 재수가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를 더 뛰어 넘는, 정말 놀라운 수준을 이루어서 세계 제일의 식품안전기업을 목표로 더 노력하면 어떻습니까.

보수언론의 광고주가 되어 후원을 해주는 것이 농심의 정치적 입장이라면 조선일보에 반하는 입장을 가진 국민들로부터 농심도 지탄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농심이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일입니다. 만약 블로거뉴스의 포스트처럼 농심은 정치적으로 중립인 기업인데 오해가 있다면 행동으로 철저히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성의를 보여야 합니다.

소비자들의 분노 이해하는 기업이 되길

제 개인적으로는 식품이든 무슨 상품이든 잘 만들려고 해도 어느 정도 불량이 나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지만 위에서도 말했듯이 제품 공정상 허점이 있다면 더 세밀하게 개선해야 합니다. 이런 제품으로 정신적 피해와 건강상 위해가 일어났다면 해당 소비자에게 충분한 것 이상으로 보상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가지고 회사 문을 닫으라는 식으로 몰아세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정치적으로도 다수의 대중을 고객으로 삼는 식품회사가 특정 정치적 입장을 대변함으로써 영업상의 불이익을 감수하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즉 농심의 고위 임원들은 어떤 정치적 입장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농심이라는 회사 자체의 대외적 입장은 중립일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고 이제 농심은 국민의 지지를 다시 얻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농심측에서는 혹시 그 동안 시장점유율을 잃으면 어떻게 할까 하고 걱정이 많을 줄로 압니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 벌어진 이상 농심이 시장점유율을 어느 정도 잃어야 정상입니다. 아무리 실수라고 한들 과자에 쥐머리가 들어간 회사가 시장점유율을 잃지 않는 것이 정상이겠습니까? 또한 요즘처럼 민감한 정국에서 정치적 편향성을 의심받는 기업이 반대되는 입장의 국민으로 인해 점유율을 잃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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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홈페이지 공지사항 캡쳐 사진


농심의 성공을 바라지만 지금은 자숙할 때

저는 개인적으로 농심을 좋아합니다. 일단 농부의 마음이라는 뜻의 회사명이 좋고 예전에 ‘의좋은 형제’의 그림이 나왔던 농심라면의 봉지 디자인도 너무나 좋아했었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아실지 모르겠는데 농심라면은 미국에도 공장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미국인들이 신라면을 박스 채 사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뿌듯한 적도 있었고 다른 과자를 먹지 않는 제가 먹는 유일한 과자도 새우깡입니다. 미국에는 흔한 일본 새우깡도 몇 번 먹어봤는데 농심 새우깡만은 못하더군요. 우리나라 대표기업인 농심이 어떤 이유로든 문닫는 것은 상상도 하기도 하기 싫습니다. 외국에서 살아보니 우리제품을 외국인들에게 파는 기업은 다 애국자처럼 보이고 특히 농심과 같이 우리 식품을 외국인에 알리려고 노력하는 기업에는 더더욱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농심의 번영과 성공을 기원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농심이 잘못한 상황이고 조금은 혼나도 됩니다. 농심 임직원 여러분들은 현재의 상황이 억울하다면 자신들이 반사적인 이익을 보았던 삼양의 몰락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경우처럼 잘못을 저지르고 욕을 먹는 것이 억울한 일인지 삼양처럼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욕을 먹는 것이 억울한 일인지 말이죠. 아마 조금은 마음에 위로가 되실 것입니다. 지금은 억울하다고 항변할 때가 아니라 자숙할 때입니다.